리콴유와 박정희와 김일성은 동시대인이다. 리콴유는 1923년, 박정희는 1917년, 김일성은 1912년 태어났다. 모두 가난한 나라에서 태어나 자기 힘으로 권력의 정상에 오른 것도 같고 장기 집권을 하며 각 나라에 자기 흔적을 강하게 남긴 것이나 그 자식들이 다시 권력의 정상에 오른 것도 같다.
그러나 같은 점은 거기까지다. 리콴유는 26년간 싱가포르 총리로 재직하며 자원이라고는 천혜의 항만뿐이던 최빈국을 아시아에서 가장 부유하며 깨끗하고 청렴한 도시국가로 만들었다. 1965년 말레이시아에서 독립했을 당시 싱가포르의 1인당 GDP는 400달러였으나 작년은 5만6,000달러로 아시아에서 1위, 세계 전체로도 8위를 기록했다. 국가 경쟁력은 세계 2위, 청렴도는 세계 5위다.
1959년 그가 35살의 나이로 자치정부 총리로 집권했을 때 싱가포르는 가난과 게으름, 마약 사범과 공산주의자들의 준동으로 위태로웠다. 그런 상태에서 1965년 말레이시아에서 떨어져 나오자 많은 사람들은 나라의 번영은 고사하고 존속 여부를 의심했다.
그러나 그는 캠브리지 대학 출신답지 않은 무자비한 철권통치로 공산주의자들과 마약사범을 쓸어내고 국가 질서를 확립했다. 그는 그 대신 폭넓은 경제적 자유와 재산권을 보장하고 교육에 대한 집중적 투자로 인적 자원을 개발했다. 양질의 노동력과 시장 친화적 환경을 갖춘 싱가포르로 세계 투자가들은 몰리기 시작했고 그 결과 연중 푹푹 찌는 열대 우림 속의 항구가 아시아 금융의 중심지로 우뚝 서게 됐다.
첫눈에 들어오는 싱가포르의 특징은 깨끗함이다. 도시 어디에도 낙서 한 줄, 휴지 한 장 찾아보기 힘들다. 그도 그럴 것이 벽에 낙서하다 걸리면 지금도 태형에 처해진다. 클린턴 재임 시절 철없는 미국인 하나가 싱가포르가 미국인줄 알고 흰 벽에 마음껏 그림을 그리다 잡혀 곤장 형에 처해지게 됐다. 미국 정부의 호소에도 불구, 이 철부지 청년은 실컷 볼기를 맞고 강제 추방됐다.
월남계 호주인이 마약을 갖고 들어왔다 잡혔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호주 정부의 선처 요구에도 불구하고 이 청년은 교수형에 처해졌다. 싱가포르에 마약을 가지고 들어오다 걸리면 기본적으로 사형이다. 단 판매 목적이 아니라 개인적으로 사용하려 한 것임을 입증하면 무기로 감형될 수 있다. 이같은 엄격한 법집행은 지나친 면이 있지만 이곳을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도시의 하나로 만들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박정희도 수출 주도형 경제 정책으로 최빈국 수준의 한국을 세계 10대 무역 강국으로 키우는 초석을 놨다. 지금 한국을 먹여 살리는 삼성과 현대, 포스코 등이 모두 그의 집권 시절 큰 기업이다. 그러나 그는 친일과 5.16 쿠데타, 유신, 인권 유린 등 수많은 범죄를 저지르기도 했다.
최악은 김일성이다. 리콴유와 비슷한 33살의 나이에 소련의 군화 발에 묻어 들어와 북한의 절대 권력자가 된 그는 6.25를 일으켜 수백만 동족을 살해했을 뿐 아니라 3대를 이어가는 수령 독재의 기틀을 닦고 경제적 자유를 박탈함으로써 북한을 세계 최빈국으로 만드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세 사람 일생의 궤적은 한 나라의 운명은 그 나라가 어떤 정치 지도자를 만나느냐에 따라 결정된다는 것을 한 줌 의심의 여지없이 보여주고 있다. 리콴유 같은 지도자를 가질 수 있었다는 것은 싱가포르 인들의 복이다. 등소평과 시진핑 등도 그의 조언을 종종 구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 리콴유가 지난 주말 91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작은 나라에서 태어났지만 결코 작지 않은 족적을 남긴 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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