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고향 마산시의 중심에 위치한 아름다운 무학산(舞鶴山)의 중턱에 나의 모교인 M 고교가 옥포의 명량해협처럼 마산만의 굴곡진 좁은 해안선을 따라 진해만을 굽어보며 자리하고 있다. 봄이 되면 학교 주변에는 팔십년 전의 선배들이 심어 놓은 수백그루의 벚꽃 나무가 숲을 이루어 학교주위를 온통 분홍색 함박 벚꽃 눈에 뒤덮었다.
가을이 되면 학교 뒤 무학산 중턱 자락을 따라 나 있는 조그만 개울 양쪽 길가에 코스모스며 야생화와 흰색, 분홍색, 보라색의 키 큰 들국화가 바람에 흔들리며 장관을 이루었다. 미국에 살면서 꽃을 좋아하는 나는 바람 따라 흔들리며 청량한 아름다움을 주었던 그 들국화의 아름다움을 잊을 수가 없다.
지난해 가을 워싱턴 근교를 떠나 세난도의 루레이 동굴이 있는 시골길을 가다보니, 산들바람에 흔들리며 넓은 들판을 뒤덮고 있는 오색찬란한 코스모스와 들국화들을 만나게 됐다. 나는 차에서 내려 넋을 잃고 한참동안 들국화를 바라보며 짜릿한 고향의 정취 속에 빠져들었다.
나는 이 들국화를 구하기로 마음먹고 집 근처 여러 곳의 화원을 찾아다니다가 드디어 바라던 들국화 꽃을 찾았다. 흰색과 보라색 들국화 몇 그루를 사서 집 꽃밭에 심고 정성을 다해 가꾸었다. 9월이 되어 수많은 들국화가 활짝 피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몸통은 가는데 큰 키 때문에 수많은 꽃들을 떠받치기에 힘이 부친 나머지 예쁜 들국화들이 사방으로 땅에 드러누워 버렸다. 꽃들을 일으켜 세워 둥그런 철망을 쳐서 그 안에 꽃들이 쓰러지지 않게 해놓았지만, 갈색의 철망과 꽃 색깔이 조화를 이루지 못해 못내 아쉬움을 가지고 올해로 넘어 왔다.
이른 봄이 되었다. 어린 들국화들이 땅을 비집고 새순을 내며 가녀린 모습을 드러내 보였다. 시뻘겋게 녹이 슨 보기 싫은 철망 대신 대체할 방법이 없을까하고 식물백과사전도 들추어 보고, 화원의 전문가에게 자문을 구해 보았으나 신통한 해답을 얻을 수가 없었다.
그러던 차에 나의 교우 한분이 쑥을 추천했다. 쑥은 이른 봄에는 연한 잎으로 쑥떡이며 쑥국에 쓰여 우리들의 입맛을 돋우어주지만, 가을에는 대나무처럼 곧게 자라는 성질을 이용하여 들국화 사이에 심어놓으면, 철망 없이도 들국화들을 받쳐준다는 것이다. 또한 자연미를 살려 조화롭게 아름다운 꽃들을 피울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나는 즉시 뒤뜰 담 넘어 공터에서 자라고 있는 쑥을 옮겨서 꽃밭 앞쪽에는 쓰러지지 않는 노랑 국화를 심고, 맨 뒤쪽의 하얀색 들국화 앞 중간의 빈 공간에 쑥을 심어 놓았다. 노랑 국화와 들국화들이 올 9월 중순부터 화려하게 피기 시작했다. 쑥 덕분에 앞, 뒤쪽의 국화들이 쑥과 서로 엉켜서 조화로움을 보여줬다.
그런데 쑥이 수명이 다하여 허옇게 변하며 시들기 시작했다. 주위 분들은 쑥을 뽑아서 버리라고 한다. 그러나 분골쇄신하여 나를 위해 아름다운 국화꽃들을 피우게 해주었는데, 그냥 내다버리자니 쑥을 토사구팽 하는 것 같아 마음이 무거워진다.
나는 화원에서 한해살이인 오색의 국화꽃들을 사와서, 쑥을 집 뒤의 울타리 너머에 있는 공터에 땅을 파서 잘 묻어주고, 떠나간 쑥의 빈자리에 국화들을 심었다. 내년 봄에 쑥이 다시 살아나면 나는 쑥을 정성껏 가꾸어 가을 들국화와 함께 아름다운 국화꽃밭을 만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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