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라틴계 선수들 “영어가 밥 먹여줘요”
▶ 코치-선수들, 투수-포수 사이에 의사소통 돼야 경기에 지장 없어, 구단마다 어학훈련에 막대한 투자, 일부 코치들은 스패니시 배우기도
ESL 교사인 캐롤 갭이 애리조나주 스캇츠데일에 있는 자이언츠 마이너리거들을 위한 어학원에서 구스타보 카브레라의 영어 발음을 교정해 주고 있다.
경기를 시작하기 전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덕아웃은 선수들끼리 주고받는 농담으로 늘 떠들썩하다. 우스갯소리와 너스레는 팽팽하게 감긴 선수들의 긴장을 풀어주는 특효약이다. 이런 종류의 입담이라면 헥터 산체스도 빠지지 않는다. 베네수엘라 태생인 그는 ‘실전 영어’를 제법 능숙하게 구사한다. 수인 산체스는 얼마 전 덕아웃에서 팀의 선발투수인 팀 린스컴을 화제 삼아 농담을 풀어놓았다. “린스컴의 공을 받을 때마다 글러브에서 뽀얗게 먼지가 피어올라. 정말 죽을 맛이야. 한두 개 받고 그만 둘 수도 없고. 오늘도 뻔하지. 먹고살기 정말 힘들어.” 얼핏 푸념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짝패인 린스컴의 총알투를 치켜 세워주는 말이다. 그는 미국인들이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관용구를 자연스럽게 입에 올린다. 이 모두가 마이너리그 시절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가 라틴 출신 선수들을 위해 제공하는 영어 클래스를 열심히 수강한 덕분이다.
2009년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마이너리그에서 프로선수 생활을 시작한 그는 구단 측이 영어가 서툰 라틴계 선수들을 위해 애리조나주 스캇츠데일에 설립한 훈련원에서 어학강습을 받았다.
구단의 미래를 이끌어갈 라틴계 선수들은 그곳에서 기초적인 영어와 수표 쓰는 법, 우편물 발송방법 등을 배운다. 학습 프로그램 중에는 간단한 전화통화 훈련도 포함되어 있다.
경기력과 보조를 맞춰 빠른 속도로 성장한 산체스의 영어실력은 중남미 출신 선수들 가운데 최상위권에 속한다.
2012년 마이너리그를 졸업하고 빅리그로 들어선 그는 지난 6월25일 린스컴과 ‘노히트 노런’을 합작했다. 투수와의 완벽한 소통이 전제되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제 그는 2012년 내셔널 리그 최우수 선수상을 수상한 팀의 간판 포수 버스터 포지의 확실한 백업으로 자리를 굳혔다.
미국의 30개 메이저리그 구단은 예외 없이 라틴계 선수들을 위한 어학 훈련원을 운영하고 있다. 베네수엘라를 비롯한 중남미 국가에서 각 구단으로 스카웃된 선수들은 일단 훈련원에서 영어를 익힌다.
점점 늘어나는 라틴계 선수들과의 원활한 의사소통을 위해 스패니시를 배우기 원하는 선수나 감독, 코치들도 이곳에 등록이 가능하다.
영어를 배우는 외국 선수와 스패니시를 배우는 코칭 스태프가 늘어나면서 언어장벽으로 인한 ‘불통’의 답답함은 크게 가셨다.
이제 메이저리그 소속팀 감독들은 통역사의 도움을 빌리지 않고 직접 투수교체 지시를 내린다. 어학원을 거친 선수들은 웬만한 지시사항은 통역의 도움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물론 감독들은 해외 영입 선수에게 마이너리그 행을 통보하거나 타격 자세, 투구 폼과 같은 기술적 사안들을 설명할 때에는 통역사를 내세운다.
스패니시 실력이 아직 초보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한 텍사스 레인저스의 매니저 론 워싱턴은 이럴 때마다 통역 담당자에게 자신의 표현을 가감 없이 그대로 전달할 것을 요구한다.
감독의 표현법은 특정 효과를 겨냥한 것이기 때문에 그대로 전달하지 않을 경우 강조하고자 하는 내용이 왜곡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통역사가 중간에서 ‘재해석’이라도 하게 되면 자칫 아귀가 안 맞거나 하나마나한 ‘헛소리’가 되어버리고 만다.
뿐만 아니다. 샌디에고 파드레스의 매니저 버드 블랙은 “TV 등 대중매체와 소셜미디어 등이 메이저리거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추적하기 때문에 선수들의 대중 노출도는 한 세대 전과는 전혀 다르다”며 “해외 출생 선수들에게도 이제 영어구사 능력은 필수”라고 강조했다.
구단들은 중남미 선수들의 영어 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다.
한 예로 산체스가 소속된 자이언츠는 지난 15년간 325명의 라틴계 선수들에게 어학훈련 코스를 제공했다. 2010년 이후 4년간 스패니시를 습득한 빅리거들의 수만도 200여명에 달한다.
구단이 쏟아 붓는 지원금의 규모가 지난 10년 사이에 400%나 증가했다는 사실만 보아도 구단이 선수들의 영어교습에 들이는 공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케 한다.
산체스는 포수로서 투수들과의 원활한 소통이 필요했기에 영어공부에 열을 올렸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메이저리그로 편입된 후 경기를 전후해 투수들과 항상 스카이프로 영상대화를 나누었다. 자신이 리드해야 하는 투수들의 특성과 성향을 확실하게 꿰차고 있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단지 팀 내 포지션을 지키기 위해 영어를 배운 것만은 아니었다. “외국생활에 따르는 도전을 이겨내려면 무엇보다 언어 능력부터 갖춰야 한다”는 깨우침이 그의 등을 떠밀었다.
‘빅리거’의 큰 꿈을 꾸는 자이언츠 팀의 마이너리거들은 그들의 영어 강사인 캐롤 갭의 지시에 절대복종한다. 그녀는 학생 선수들에게 감독 이상으로 존경받는 존재다.
캐롤이 이끄는 교실 분위기는 초등학교를 연상시킨다. 산만한 덩치를 지닌 선수들은 쉬운 질문이 나오면 마치 어린아이처럼 들떠 차례를 무시한 채 한꺼번에 대답을 쏟아낸다. 반면 답변하기 까다로운 질문에는 슬쩍 고개를 숙여 캐롤의 눈을 피하려 든다. 잔뜩 긴장해 발가락을 꼼지락거리는 ‘소심한’ 선수들도 적지 않다. 그러다 칭찬이라도 받으면 캐롤과 주먹마주치기를 하며 의기양양하게 홈런 세리머니를 펼치곤 한다.
미국에 처음 건너왔을 때 영어라곤 단 한마디도 못했던 자이언츠의 구원전문 투수 산티아고 카시야는 이제는 트레이너와 ‘영어 반 스페인어 반’으로 필요한 의사를 교환한다. 둘 다 어학원을 거쳤지만 아직 단일 언어를 통한 완전한 소통은 불가능하다.
미국에서 잠시 고등학교를 다닌 탓에 ‘영어가 되는’ 시애틀 마리너스의 2루수 로빈슨 캐노는 스패니시 기본 교습을 받은 동료 선수들을 상대로 기관총 쏘듯 모국어를 ‘발사’하는 것이 큰 낙이다. 하지만 그 역시 영어가 막힐 때가 있다. 미국 밥을 먹은 지 십수년이 지났지만 그에게 “영어는 여전히 쉽지 않은 외국어”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