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 잡화상
▶ 장 소 현 <극작가, 시인>
2013년 새해도 시(詩)처럼 아름다운 나날이었으면 좋겠다.
어쩌다 서울에 갈 때마다 한국은 ‘시의 나라’라는 느낌에 잠시나마 기분이 좋아지곤 한다. 자랑스럽고, 무척 부럽기도 하다. 야, 한국 사람들 시를 굉장히 사랑하는구나!
유명한 광화문 글판에 좋은 시 구절이 큼지막하게 쓰여 있고, 지하철 스크린 도어나 엘리베이터에도 멋진 시가 적혀 있고, 오줌 누러 화장실에 들어가도 아름다운 시를 만나게 된다.
어디 그뿐인가, 일간신문에는 날마다 새로운 시가 친절한 해설과 함께 실리고, 곳곳에 시인을 기리는 시비(詩碑)가 세워져 있다. 여러 시인의 시비가 무더기로 세워져 있는 곳도 적지 않다. 무슨 시비가 이렇게 많으냐는 시비가 생길 정도다. 시인의 생가를 복원해 놓은 곳도 많다.
한국처럼 시집이 잘 팔리고, 시인이 대접 받는 나라도 달리 없다고 한다. ‘국민시인’이라는 말이 다른 나라에도 있는지 모르겠는데, 한국에는 ‘국민시인’으로 모심 받는 이가 한두 명이 아니다. 걸핏하면 ‘국민시인’이다. 덕분에 자칭타칭 시인도 무지막지(?)하게 많다고 한다. 이런 식으로 가면 머지않아 ‘전 국민의 시인화’가 이루어질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글자 그대로 한국은 ‘시의 나라’다.
이렇게 생활 속에 시가 스며들어 있으니, 자연히 시를 사랑하게 되는 것 아닌가… 이 시들은 답답하고 짜증스러운 삶에 시원한 생수 역할을 해주고, 잠시나마 착한 마음을 열어준다. 너무 허겁지겁 뛰지 말고, 차근차근 걸으라고 다독이며 촉촉한 물기를 더해준다.
이에 비해 우리 미주 이민사회는 어떤가? 유감스럽게도 팍팍한 사막이요, 살벌한 황무지다.
시가 붙어 있으면 딱 좋을 것 같은 자리를 그악스러운 광고나 지저분한 낙서가 차지하고 있다. 사막이니까 더 촉촉한 시가 필요할 것 같은데 현실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
물론 우리 동네에 시인이 없어서 그런 것은 아니다. 미주 한인문학의 연륜도 이제 제법 오래 되었고, 시인의 숫자도 엄청나게(?) 많아 발표되는 시도 많고, 시집도 활발하게 발간되고 있다. 물론 속사정을 보면, 대부분의 시집이 자비출판이고, 출판기념회에서 동업자나 아는 사람들끼리 나눠가질 뿐 서점에서는 거의 팔리지 않는 것이 안타까운 현실이지만, 그 중에는 빼어난 시도 적지 않다.
이렇게 양적으로 눈부시게 성장했으니, 이제는 뭔가 이정표 같은 것을 세워야할 때라는 생각이 든다. 가령 미주 한인사회에도 시비가 몇 개는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절로 드는 것이다. 예를 들어, 엘에이 한인타운의 상징이라는 ‘다울정’ 경내에 고원 시인 같은 작가의 아름다운 시를 새긴 시비가 세워진다면 매우 상징적이고 자랑스러울 텐데…
아니면, 몫 좋은 자리의 건물 주인이 벽면을 제공해, 아담한 글판을 만들어 아름다운 시를 걸어놓는다면 얼마나 좋을까… 사람들 왕래가 많은 샤핑센터나 식당 같은 곳 구석구석에 시가 걸려 있다면 참 멋있을 텐데…
꿈이 너무 야무진가? 어디선가 볼멘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다. “미친 놈, 시가 밥 먹여 주냐!”
나는 자신 있게 대답한다. “물론이죠! 혹시 시가 밥은 못돼도, 비타민 같은 존재임은 분명합니다. 시를 사랑하면 세상이 밝게 열립니다. 시를 사랑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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