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쟁 희생되는 아들 향한 부정
고통·암울 이미지 감동적 열창
며느리 역의 포플라브스카야
절규하는 장면 등 강한 호소력
슬픔과 좌절, 사랑과 애원, 분노와 절망, 그리고 죽음의 종말이 장렬하게 펼쳐진다. 아버지도 울고, 아들도 울고, 며느리도 울며 정의를 호소하지만 결국 불의가 판을 치는 세상에서 그들이 이르는 곳은 절망의 끝, 천국에서나 누명을 벗고 행복한 삶을 되찾을 것을 기약하며 스러져간다.
지난 15일 LA 오페라가 초연한 베르디 오페라 ‘포스카리 가의 두 사람’(Two Foscari)은 권선징악의 플롯을 따르지 않는, 드물게 악이 이기는 블랙 드라마다. 그러나 그 비탄이 얼마나 처연하고 절실한지, 베르디 음악이 굽이굽이 얼마나 수려한지, 플라시도 도밍고를 비롯한 주역 가수들의 혼신을 다한 열창이 어찌나 감동적인지, 공연 내내 고통과 어둠이 주는 아름다움 속에서 유영했던 오페라였다.
생애 140번째 역을 맡은 플라시도 도밍고는 바리톤으로서 완벽하게 노래했다. 무력한 총독 아버지 역에 완전히 몰입한 그는 원숙한 카리스마와 무대 장악력으로 공연을 빛내며 청중으로부터 수없는 환호를 받았다.
며느리 루크레치아 역의 소프라노 마리나 포플라브스카야의 강렬한 공연 역시 찬사가 부족할 만큼 대단했다. 남편을 살려달라고 시아버지에게 울며불며 매달리는 그녀의 노래와 연기는 보는 사람마저 눈물을 흘릴 만큼 강한 호소력으로 공연을 압도했으며, 베르디 특유의 서정적인 아리아들을 화려하면서 정열적으로 노래했다.
‘투 포스카리’는 베르디의 초기작으로, 거의 공연되지 않아 오페라 팬들조차 생소한 작품이다. 미국서 공연된 마지막 무대가 40여년 전 시카고에서였다고 하니 얼마나 푸대접을 받는지 알 수 있겠다.
중세 이탈리아의 실존인물을 그린 바이런의 희곡을 바탕으로 무자비한 정치적 음모와 경쟁 속에 희생되는 총독과 아들의 이야기를 그린 오페라로, 너무 어둡고 암울하고 비극적이어서 인기가 없는 지도 모른다. LA 오페라가 지난 봄 초연한 ‘시몬 보카네그라’와 함께 강렬한 부정을 다룬 선 굵은 남성 오페라인데 ‘시몬 보카네그라’가 딸에 대한 부정을 노래했다면, ‘투 포스카리’는 아들에 대한 격정적 부정을 표출한 작품이다. 두 오페라 모두 바리톤이 주역이고, 총독 신분으로도 극복할 수 없는 비극적 상황을 다루었다는 점 또한 공통적이다.
이 오페라에서 참으로 감탄할 것은 아름다운 음악으로, 작은 오케스트라 편성으로 극도의 효과를 낸 정말 좋은 연주였다. 경탄할 만한 서곡으로부터 때에 따라서 솔로 악기들이 노래하듯 들려주는 연주는 마치 사람 목소리처럼 감정을 표현하면서 듣는 이의 마음을 터치하는 것이었다. 베르디 음악은 참으로 사람의 마음을 다룰 줄 안다.
이 공연은 LA 오페라의 새 프로덕션인데 3막 전체를 음울하고 어둡게 연출했다. 철제 구조물로 표현한 베니스의 다리와 야코포의 감옥이 인상적이고, 그에 대비되는 의상도 아름다웠다.
‘투 포스카리’는 9월20일, 23일, 29일, 10월7일, 9일 공연이 남아 있다.
한편 LA 오페라는 9월22일부터 10월14일까지 모차르트의 ‘돈 조반니’를 공연한다.
<글 정숙희 기자·사진 장지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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