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로 가치 하락으로 불안한 부자들 ‘런던 부동산 안전하다’ 경쟁적 투자
▶ 부촌 호화 아파트 없어서 못 팔아
런던 부촌의 부동산 중개인 루퍼트 데 포지스가 매물로 나온 한 아파트 안에 서있다. 침실 두 개인 이 아파트의 가격은 무려 300만 파운드가 넘는다.
영국은 경기가 나쁘지만 런던 부촌의 부동산 중개인인 루퍼트 데 포지스의 사업은 지금 번창일로이다. 예를 들어 사우스 켄싱턴의 고급 맨션 안에 있는 아파트가 현재 매물로 나와 있지만 몇 주 내에 외국인 구매자가 있을 것으로 그는 기대한다. 수위가 상주하는 이 맨션의 1,530 평방피트(140 평방미터)짜리 아파트의 가격은 325만 파운드, 무려 500만 달러이다.
그의 고객 중에는 최근에만 해도 인근에 있는 750만 파운드 짜리 아파트를 두 채나 한꺼번에 사들인 사람이 있었다. 고객은 어떻게 해서든 유로존에서 현금을 빼내 안전한 곳으로 옮기려는 투자자, 이 경우 이탈리아인이었다.
이탈리아, 그리스, 스페인 등 유로를 쓰는 유럽연합 국가들의 부유층은 요즘 초조하다. 유로가 급락해 앉아서 돈을 잃게 생겼기 때문이다. 그래서 유로 대신 다른 화폐로 거래되는 실물자산 쪽으로 돈을 옮기려고 혈안이 되어 있다. 파운드를 쓰는 런던의 고급 아파트가 인기를 끄는 이유이다.
“투자자들의 관심은 유럽의 정치와 밀접하게 연관이 되어있다”고 데 포지스는 말한다. 나이트 프랭크 부동산 회사의 파트너인 그는 부동산 업계에서 일한지 23년이 되었지만 요즘처럼 바쁜 때가 없었다고 말한다.
그러잖아도 심각한 유로 존의 재정적 위기를 더욱 심화시키는 요인 중의 하나가 바로 현금 해외 유출이다. 스페인 중앙은행에 의하면 지난 3월 662억 유로가 해외로 빠져나가, 관련 기록이 시작된 1990년 이후 최대 액수를 세웠다.
런던의 고가 부동산은 오래 전부터 외국 부유층에게 매력적인 투자대상이 되어 왔다. 러시아의 루블, 중국의 위안화, 사우디의 리얄 할 것 없이 돈이 몰려든다. 하지만 최근에는 유럽 대륙에서 점점 많은 구매자들이 런던 부동산 사재기에 나서고 있다. 유럽 연합으로 소속 27개국 내 자산 이동이 자유로운 덕분에 부자들은 국경을 넘나들며 샤핑하기가 쉬워졌다. 그리고 이들을 부추기는 것이 런던의 외국인 투자자 전문 부동산 중개인들이다.
그렇다고 재정위기가 심각한 지역에서만 돈을 런던으로 빼돌리는 것이 아니다. 프랑스의 투자가들 역시 켄싱턴, 첼시 같은 곳에서 안전 투자대상을 찾고 있다고 데 포지스는 말한다. 은행과 국채가 유로존에서 탄탄한 곳으로 꼽히는 독일에서도 구매자들이 런던으로 모여들고 있다.
나이트 프랭크 측 자료에 의하면 런던의 대표적 부촌에서 대부분의 아파트 구매자는 외국인이고 그중 절반 이상은 유로존 출신이다. 유로 부채위기가 파국적으로 끝날 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안전자산을 찾으려는 심리를 부채질하면서 지난 2년 런던의 노른자위 부동산 가격이 상승했다고 관련 보고서는 분석했다.
일대 격변을 겪고 있는 유로존 지역에서는 장기적으로 화폐 단일화가 깨어지고 가치가 하락한 새로운 화폐가 적용되면서 자산 가치가 폭락할 사태에 대한 걱정이 깊다.
하지만 단기적으로 봐도 유로의 가치는 달러와 파운드 대비 지난 2년 사이 최저점에 와 있고 아직 바닥이 보이지 않는다. 사실상 평가절하가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유로존 구매자들로 인해 켄싱톤, 첼시 등 런던 부촌의 주택가격은 계속 상승, 사상 처음으로 평균 가격이 100만 파운드를 넘어섰다. 지난 4월 가격 상승률은 3.6%. 반면 잉글랜드와 웨일즈의 전반적 주택가는 같은 기간 0.3% 하락, 평균 가격이 16만417 파운드에 불과하다.
나이츠브리지, 켄싱턴, 첼시 같은 부촌은 영국의 나머지 지역과 점점 딴 세상으로 멀어지는 가운데, 런던 중심부의 고급 부동산은 영국 전체의 평균 부동산 보다 가격이 6배나 된다고 관련 부동산 컨설팅 보고서는 밝힌다. 차이가 이처럼 벌어진 것은 사상 처음이라고 보고서는 지적한다.
런던 부촌 아파트 가격은 금융시장 붕괴 이전인 2007년 호황기 정점 때의 수준을 훨씬 넘어서고 있으며, 영국의 다른 지역 주택 시장과는 대조적으로 온갖 변수와 가격 약세의 영향을 전혀 받고 있지 않다고 보고서는 전한다.
한편 이 보고서는 경고를 담고 있기도 하다. 유로가 붕괴하면 파운드가 너무 강세이고 세계 부동산 가격이 폭락할 경우 런던의 가격 상승세가 급격하게 역전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으로서 유로존 부자들에게 런던의 고가 부동산을 사들이는 것 보다 안전한 투자 는 없는 것으로 보인다.
아파트를 사서 그냥 갖고 있건 임대를 하건 대부분 투자자들은 천장이 높은 단층, 수위가 있고 발코니나 테라스가 있는 아파트를 원한다고 데 포지스는 말한다. 바르셀로나나 파리 혹은 밀라노에서 익숙한 구조이기 때문이다.
런던에 있는 부동산회사, 런던 이그제큐티브는 그리스 태생 가족이 20년 전에 세운 회사이다. 그 가족의 일원으로 회사 디렉터인 조지 버디스는 그리스 사람들의 부동산 매입 관심이 최고조에 달했던 때가 2010년이었다고 말한다. 당시 그 회사에서는 한달에 10여건의 매매를 성사시켰다.
이제는 매매 성사 건수가 한달에 5건 정도라고 그는 말한다. 그리고 투자 결과 그의 그리스인 고객들은 지난 2년 간 돈을 벌고 있고 그 수익은 고스란히 영국에 보관되고 있다고 그는 말한다.
그리고 그 보다는 덜 부자인 그리스인들은 역시 고급 주택가에서 50만 파운드 이하의 아파트를 사들이는데, 대개 임대를 목적으로 한다.
한편 오는 17일 선거 결과 그리스가 유로를 떠나야 할 경우 런던 중심부에서 수천만 파운드에 달하는 저택 5채를 사달라는 지시를 받고 있다고 그는 말한다. 국가 채무불이행 사태가 발생하면 돈이 국외로 썰물처럼 빠져나가면서 심각한 사회적 혼란이 일어날 것을 고객들은 두려워한다는 것이다.
“(고객들이) 그리스의 집을 폐쇄하겠지요. 돈은 이미 유로 존 밖으로 내보낸 상태이니까요.”
<뉴욕 타임스 - 본보 특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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