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브픽션’ 여주인공 이희진 역
공효진은 미모로 한 세대를 풍미하는 절세미녀형 배우는 아니다. 큰 키에 마른 몸, 작고 귀여운 얼굴은 분명 ‘축복’이지만.
그러나 연기에 방점을 두고 보면 그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관객들에게 다가온다.
’미쓰 홍당무’(2006)에서는 순수하면서도 격렬한 감정을, ‘소와 함께 여행하는 법’(2010)에서는 쿨한 여성의 심리를 절제된 방식으로 표현했다.
작년 ‘최고의 사랑’으로 브라운관을 평정했던 공효진이 2년 만에 영화계로 돌아왔다. 하정우와 호흡을 맞춘 전계수 감독의 ‘러브픽션’을 통해서다.
그는 ‘러브픽션’에서 도발적인 영화사 직원 희진 역을 맡았다. 소설 한 권밖에 내지 못한 무명작가 주월(하정우 분)과 사랑에 빠지는 캐릭터다.
영화 개봉을 앞둔 22일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공효진을 만나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최고의 사랑’에 들어가기 전에 매니저가 ‘골 때리는 시나리오가 있다’고 했어요. 하정우 씨가 영화사에 직접 제안한 시나리오였죠. 광고를 찍다가 정우 오빠를 만났는데 호흡이 잘 맞고, 웃겨서 좋았어요. 하정우 씨가 나오고 시나리오도 재밌어서 선택하게 됐죠."
영화에서 희진은 미궁의 인물이다. 겨드랑이털을 기르기도 하고 좋은 사진을 찍기 위해서 남자와의 잠자리도 마다하지 않는다. 여러 여배우가 이 희진 역을 검토했지만 선뜻 역할을 맡겠다고 나선 배우는 없었다고 한다. 겨드랑이털을 그대로 붙이고 나와야 한다는 이유가 거절의 주된 이유였다.
"제가 원래 평범한 역할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 성격이에요. 겨드랑이털을 붙이고 나온다고 해서 꺼릴 이유가 없었죠. 다만, 시나리오에 등장한 희진만큼 제가 연기를 잘했는지 여부는 항상 고민했어요."
’삼거리 극장’으로 주목받았던 전계수 감독과의 작업은 일사천리였다. 테이크를 몇 번 안가고 단박에 오케이(OK)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그러나 너무 쉽게 일이 진행됨에 따라 불안감이 스멀스멀 치밀어오르기도 했다.
"요구 사항도 별로 없었고, 테이크도 많이 안 갔어요. 감독님은 첫 테이크에 드러나는 배우의 에너지를 믿는 분이셨죠. 배우들을 맞춰주시기도 하지만 어떤 때는 누구와도 타협하지 않는 고집이 있는 분이셨어요. 가끔 ‘이렇게 찍어도 될까’ ‘한 번 더 가야 하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감독님을 믿고 촬영에 들어갔습니다."(웃음)
전계수 감독의 이런 스타일은 그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고 말한 ‘미쓰 홍당무’의 이경미 감독과는 상반됐다.
"이경미 감독님은 사람을 괴롭히는 스타일이었어요. 참 가지가지 요구한다고 생각할 때가 잦았죠. 일테면 ‘싸우는데 웃어봐요’ 이런 식으로 요구했어요. 그게 말이 되냐고 생각하면서도 감독의 요구니까 따랐죠. 그런데 막상 결과물을 보니 희한한 표정이 나오는 거예요. 그때, 때로는 제걸 밀고 나가는 것보다 주변 말을 경청할 필요가 있다고 느꼈습니다. ‘아 세상에 내가 모른 것도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많구나. 조금 더 문을 열고, 받아들이고 자유롭게 유연하게 움직여야겠다’고 생각했죠."
’미쓰 홍당무’에서 이경미 감독이 그랬듯, ‘러브픽션’에서는 하정우가 그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그는 매사에 생각의 꼬리를 이어가는 하정우를 보면서 "귀찮다고 생각을 미루지 말자, 좀 더 지적인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자"고 결심했다고 한다.
"정우 오빠는 원래가 생각을 쉬지 않고 하는 타입이에요. 일에 대한 추진력도 있고요. ‘왜 여자가 주인공인 영화가 없을까’라고 불만을 토로하면 정우 오빠는 ‘앉아서만 중얼거리지 말고, 남자 배우도 캐스팅하고 네가 나서서 하라’고 충고했죠. 저는 주로 신비주의에 묻혀 살아왔는데, 정우 오빠를 보면서 좀 변해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웃음)
"사실 그동안 생각의 먼지들이 제 머릿속에서 부유했어요. 생각이 둥둥 떠다녔죠. 그러면서도 어렸을 적부터 해온 생각의 한계가 저를 잡고 있었습니다. 요즘 생각의 한계를, 생각의 껍질을 깨려고 노력 중입니다."
그는 ‘가족의 탄생’(2006), ‘M’(2007), ‘미쓰 홍당무’(2008), ‘소와 함께 여행하는 법’(2010), ‘러브픽션’(2012)까지 주로 작은 영화에 출연해왔다. 흥행 면에서 큰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 대신 큰 성공을 거둔 드라마는 여럿 있다.
"사실 블록버스터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제 성향으로 감당할 수 없는 상업적인 가벼움을 가끔 참을 수 없어요. 저랑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아요. 못마땅해하면서 촬영하기도 싫고요. 아무리 영화가 흥행해도 넓은 관점에서 그런 영화에 출연하는 건 제게 큰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습니다. 블록버스터는 저랑 맞지 않아요."
그는 "그동안에는 내게 딱 맞는 작품을 기다려왔다. 그건 바보 같은 생각이었다. 앞으로는 내가 직접 찾아나설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음번에는 여자가 주인공인 여자를 찍고 싶어요. 사실 남자 주인공과 나눠 먹는 거 싫어해요. 많은 장르에 도전할 겁니다."(웃음)
(서울=연합뉴스) 송광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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