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현·박상연 작가 "세종대왕 천재성 다빈치 뛰어넘어"
시청률은 20%대였지만 체감 온도는 그 몇 배 이상이었다.
시청자들은 밀도 있게 호응했고, 이 작품이 ‘명품 사극’이라는 데 이견은 없었다.
어쩌면 스토리와 영상 모두 TV드라마가 안주(?)해도 될 선을 불필요하게 훌쩍 넘어섰다고도 할 수 있다. 그만큼 빼어났고 다방면에서 쏟아부은 에너지가 넘쳤다.
이제 종영까지 2회 남았다.
SBS 팩션사극 ‘뿌리깊은 나무’의 김영현-박상연 작가 콤비를 19일 여의도의 작업실에서 만났다.
전작인 MBC ‘선덕여왕’의 빅히트에 이어 또다시 안방극장을 뒤흔든 이들은 "솔직히 전작이 워낙 잘돼 이번에는 시청률이 20%에 그치면 망한 것 아니냐는 말까지 들었다"면서 "하지만 내용이 어려웠던 것에 비해 이만하면 잘 됐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작업하면서 즐거웠고 보람됐다"고 입을 모았다.
둘은 ‘뿌리깊은 나무’에 대해 "세종과 백성의 멜로드라마"라고 정의했고, "알면 알수록 세종대왕은 엄청나게 위대한 인물이며 그의 천재성은 레오나르도 다빈치에 비할 게 아니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왜 ‘뿌리깊은 나무’를 선택했나.
▲2008년 원작소설을 읽으면서 한글 창제 이면의 이야기를 그린 그 발상이 신선하게 다가왔고 재미가 있었다. 또 그전부터 세종대왕의 이야기를 하고 싶어하던 차였던 데다 글자에 관한 이야기라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김영현)
난 지금까지도 원작을 읽지 않았다. 김영현 작가로부터 내용을 전해듣는데 바로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드라마에서 ‘이렇게 하면 되겠다’는 상상이 마구 피어났다.(박상연)
--한글 창제 찬반을 그리면서 철학적, 사상적 논쟁이 많아 내용이 어렵다는 평가를 받았다.
▲한 회라도 놓치면 따라잡기 어렵다는 말이 많았는데 확실히 처음부터 보지 않은 시청자가 중간에 유입되기는 어려웠던 것 같다. 하지만 작품을 선택하는 데 있어 대중적으로 얼마나 성공하느냐보다는 작가로서 내가 재미있느냐는 점이 더 중요한 것 같다. 덕분에 1부부터 8부까지 정말 신이 나서 술술 썼다. 글자에 우리가 어떻게 접근해야 하느냐에 대해서도 김영현 작가와 정말 많은 토론을 했는데 그것도 재미있었다. (박상연)
그래서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라는 대중적 코드를 초반에 넣었던 것이다. 태종과 세종, 강채윤과 그 아버지의 이야기가 그렇다. 하지만 그런 장치가 아니어도 대중적으로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 봤다.(김영현)
--글자는 무엇인가.
▲대사에도 나왔듯 글자는 무기다. 세종도 정기준도 글자가 무기이자 권력이라고 생각했다. 다만 그 강력한 무기에 대한 견해가 갈렸을 뿐이다. 마치 프로메테우스의 불처럼.(박상연)
--하지만 한글 창제를 반대하는 정기준의 논리는 태생적으로 세종의 논리에 밀릴 수밖에 없다.
▲우리도 그렇게 생각한다.(웃음) 그래도 나름대로 정기준의 논리에도 힘을 실었다. 지금 이 사회가 악플 등 글자로 인한 폐해가 많기에 정기준의 논리도 시청자에게 어느 정도 먹힐 것이라 생각했다. 소양있는 자가 글을 써야 한다는 점, 글자를 알게 된 백성이 종국엔 자신들의 지도자를 직접 뽑으려고 할 텐데 그 때문에 발생할 무책임한 결과 즉 대의민주주의의 한계 등에 대해 짚었다. 나름대로 현시대에 유의미한 이슈를 정기준을 통해 던지려고 했다.(박상연)
하지만 시청자가 너무 빠르게 세종에게 빠져들었고 그에 대한 어마어마한 존경심에 더해 한석규 씨의 명연기가 어우러지면서 정기준의 논리는 약해질 수밖에 없었다. 무엇보다 우리가 이미 한글을 쓰고 있고, ‘세종대왕이 나쁘다’고 표현하는 것조차 한글로 해야 하기 때문에 태생적으로 정기준이 밀릴 수밖에 없었다.(웃음) 그래서 세종이 스스로 ‘내가 잘하는 것인지’ 자기 검증을 하고 갈등하는 것을 부각시키게 됐다.(김영현)
--드라마에서는 시도하지 않았던 ‘끝장 토론’도 펼쳐졌다.
▲세종과 정기준이 토론하는 신이 20분에 걸쳐 방송됐는데 솔직히 우리가 간이 부었었다.(웃음) 만약 신인작가의 대본이었다면 방송사로부터 미쳤다고 욕먹었을 텐데 다행히 전작이 성공해 이번에 대본대로 찍었다. 또 ‘선덕여왕’ 29부에서 미실과 덕만공주의 논쟁을 6분에 걸쳐 방송했는데, 그때도 모험이다 생각했지만 시청률 그래프를 보니 그 장면에서 엄청나게 올라갔더라. 거기서 용기를 얻었다.(박상연)
’선덕여왕’ 때부터 어려운 이야기를 펼칠 때는 등장인물 간의 갈등을 강조하는 방법을 썼다. 싸우는 장면을 첨예하게 부각해서 이들의 논쟁이 마치 칼날 위에서 대결하는 것처럼 보이게 하면 설사 토론 내용을 몰라도 지금 심각하게 싸우고 있다는 것은 시청자가 알 것이라고 생각했다. 모두가 집중해서 논쟁장면을 보는 게 아녀서 극성을 부각해 갈등을 강조하려고 했다. 그럼에도 이번 20분짜리 토론이 어떤 반응을 낳을까 불안했는데 다행히 시청률이 올랐다. 세종과 정기준의 첫 대면이자 대결이라는 점이 관심을 모았던 것 같다.(김영현)
--세종이 ‘우라질’ ‘빌어먹을’ 등의 욕을 내뱉는 게 인상적이었다.
▲그간 사극에서 세종대왕이 잘 안 다뤄진 것은 너무 위대했고 그래서 그 시대가 너무 태평성대였기 때문이었더라. 갈등구조가 없는 것이다. 하지만 대사에도 나왔듯 세상이 태평성대라고 왕까지 태평한 것은 아니다. 임금의 마음은 지옥이었을 것이다. 게다가 세종은 너무 많은 분야에서 업적을 남긴 분이라 스트레스가 엄청났을 것이고 그래서 여자(왕비)와 고기, 욕으로 풀었을 것이다. 특히 잠을 거의 안 자고 모든 분야에서 잘하려는 강박증이 심한 사람이라 그런 이가 폭력이 아닌 다음에는 욕으로 스트레스를 풀 것으로 생각해 극에서는 좀더 적극적으로 욕을 넣었다.(김영현)
솔직히 왕이 욕하는 게 어떤 느낌일지 우리도 궁금했는데 한석규 씨가 구사하는 것을 보고 ‘딱이다’는 생각이 들었다.(웃음, 박상연)
--세종대왕은 어떤 인물이라고 생각하나.
▲한마디로 인간이 아니다. 실제로 그런 분이 존재했다는 게 믿어지지 않고 경외심이 든다.(박상연)
조선 전기는 지금보다 훨씬 깨끗한 이상적인 사회였다. 사대부, 지도층은 청렴결백했고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이 높았던 때였다. 세종은 그런 사대부와의 대결에서 밀리지 않으려고 스스로 채찍질을 열심히 하고 소양을 키웠던 것 같다. 글자 외에 다방면에 관심이 많았고 위대한 업적을 남긴 분긴 분인데, 궁금한 점은 왜 마지막에 그 많은 분야 중 글자로 관심이 귀결됐느냐는 것이다. 그 점은 우리도 정말 궁금하다. 조선은 기록의 나라인데 세종대왕은 한글만은 비밀리에 만들었다. 왜 그랬을까가. 여러 일을 하다 마지막에는 언어학자로서 글자에 꽂힌 것은 아닐까도 싶었는데 드라마에서는 백성을 위해 그런 선택을 했다고 그렸다. 그런 점에서 ‘뿌리깊은 나무’는 세종과 백성의 멜로드라마다. 세종은 한글을 만들면서 끊임없이 ‘내가 저들(백성)을 사랑하는 것인지’, 그래서 글자를 만들어주려는 것인지 자신의 진심에 대해 고민했던 것이라고 그렸다.(김영현)
--이번 작업을 통해 한글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을 하게 됐나.
▲드라마 준비하면서 훈민정음 해례본을 처음으로 꼼꼼히 읽어봤는데 굉장히 고심해서 한글을 만든 게 분명했고 다른 나라 글자보다 훌륭하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나도 글을 쓰면서 자부심이 느껴졌고 시청소감 중 ‘한글에 자부심을 갖게 됐다’는 반응이 가장 기분 좋았다. 우리 선조 중에 먼 미래를 내다보고 완벽하게 일을 해낸 분이 있다는 것이 자랑스럽다.(김영현)
그간 공기처럼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던 한글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됐다. 한글의 의미를 내가 글로 파고들었다는 것이 너무나 의미 있는 작업이었다. 한자는 5만 자이지만 한글은 고작 24자에 모든 뜻과 소리를 담아내는 문자다. 엄청난 것이다. (박상연)
(서울=연합뉴스) 윤고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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