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나는 꼼수다’처럼 얘기해도 되지 않을까요?"
이렇게 운을 뗀 이승환(46)의 얘기는 꽤 위험 수위를 넘나들었다. 물론 20여 년간 노래한 그가 변화를 거듭한 음악 환경에서 체감한 혹독한 자아비판이 대부분이었다.
1일 강동구 성내동 드림팩토리 사무실에서 만난 그는 "지난해 낸 10집을 비롯해 10년째 음반으로는 내리막길이다", "몇만 명 규모의 올림픽주경기장에서 공연한 내가 2천600석짜리 올림픽홀에서 3일간 공연하는데 티켓이 아직 다 안 팔렸다" 등 쏟아내는 말마다 쓴웃음을 짓게 했다.
"오히려 고도의 겸손한 포장술 아니냐"고 되묻자 "이게 있는 그대로의 현실이다"고 강조했다.
"얼마 전 한 행사에서 씨스타가 공연하고 무대에 올랐는데 관객의 10분의 9가 빠져나가더군요. 가끔 행사에서 대표곡 ‘덩크슛’을 불렀는데 사람들이 잘 모르면 ‘다음 곡은 뭘 하지’ 고민하게 돼요. 하지만 상처는 안 받아요. 제가 감수할 문제니까요."
그러나 이승환은 국내 대중음악계에서 비중있는 자리를 차지하는 싱어송라이터다.
1989년 1집 ‘B.C 603’으로 데뷔해 ‘텅 빈 마음’ ‘기다린 날도 지워진 날도’ ‘덩크 슛’ ‘세상에 뿌려진 사랑만큼’ ‘천일동안’ 등의 히트곡을 내며 1천만 장이 넘는 음반을 팔았다. 이 과정에서 발라드와 록을 넘나들며 ‘언더’와 ‘오버’에서 모두 환영받았다.
공연계에서도 의미 있는 걸음을 뗐다. 공연 산업이 걸음마 단계이던 1990년대 초부터 직접 연출하고 기획한 무대로 도전하며 국내 공연 시장 규모를 성장시켰다.
최근 세계적인 음향기기 업체인 독일 ‘제나이저’는 한·중·일의 대표적인 공연형 뮤지션 각 한 명씩을 뽑아 1천만원 대의 마이크를 증정했는데 이승환이 선정되기도 했다.
공연에 대한 자부심 하나로 버틴 그는 좌절을 겪은 시기도 있었다고 털어놨다.
"지난해 이화여대 대강당에서 공연했는데 잘 안 됐어요. 여자 친구 생기면 공연 하지 않을 거라고 공연장 대관도 안 했다가 부랴부랴 열었거든요. 그때 충격받아서 공연을 하지 않으리라 마음먹었죠. 이후 토이 푸들과 요스셔테리아를 키우며 ‘강아지 교육’에만 전념했어요. 그런데 올해 소극장 투어를 하면서 활력을 되찾았죠. 역시 제게 필요한 건 무대였어요."
의지를 되살린 그가 다시 오를 공연은 다음 달 23-25일 올림픽공원 올림픽홀에서 여는 ‘공연지신(公演之神)’이다. 제목에서 강한 자신감마저 느껴진다.
"하하하. 공연 스태프가 붙여준 제목이죠. 다행히 인터넷에서 욕을 안 먹던데요. 요즘 여기저기 ‘신(神)’이란 단어를 많이 붙여 유머러스하게 받아들이나 봐요. 공연의 신이 하는 공연이니 수익이 안 남더라도 투자를 많이 해야겠죠."
이번 공연은 ‘들을 거리’와 ‘볼거리’를 조화시켜 화려하게 꾸민다.
그는 공연장 전체를 도는 360도 와이어 액션을 선보인다면서 거대한 뭔가가 등장하는 쇼적인 연출이 세 부분, 소극장 공연처럼 디테일을 살린 어쿠스틱한 무대도 더해진다고 소개했다. 밴드와 팀워크도 좋고 음향팀도 8년간 함께 한 스태프여서 사운드도 자신있다고 밝혔다.
레퍼토리는 당연히 히트곡이라며 웃었다.
"사람들이 록으로 달리면 힘들어하고 노래 편곡을 많이 하면 싫어해요. 이번엔 철저한 영업 마인드로 히트곡을 총 망라합니다. 제가 한동안 중급자용으로 공연했는데 이번엔 공연 입문용인 셈이죠. 지방에서도 공연하고 싶은데 요청을 안 하나 봐요. 잘 안 잡히네요. 하하."
사실 TV에 소홀하며 자신을 스스로 고립시켰던 그가 최근 MBC TV ‘위대한 탄생 2’에 멘토로 등장하고 몇몇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한 것도 공연 때문이다.
"이렇게까지 했는데 공연이 잘 안 되면 어떡하죠? 껄껄. 하지만 ‘위대한 탄생 2’의 경우 섭외가 왔을 때 제가 잊힌 인물이 아니란 반가움이 컸어요. 덥석 하겠다고 하니 제작진이 놀라더군요."
최근 그의 ‘멘티’로 뽑힌 최정훈, 한다성, 에릭남, 홍동균과 일본 오키나와로 전지훈련을 다녀온 그는 "인디 뮤지션들은 완성된 음악을 하지만 ‘위대한 탄생 2’ 출연진은 아마추어의 풋풋함이 있다"며 "눈물까지 흘리는 멘티들의 열정, 절실함을 통해 ‘내가 이렇게 절실하게 음악한 적이 있나’라고 되묻게 됐다"고 말했다.
멘티들에 대한 그의 애정도 남다르다. 이들의 보컬, 안무, 기타 등의 수업과 피부과, 스타일링 비용까지 사비로 낼 정도다.
2008년까지 더 클래식, 정지찬, 이소은 등의 후배 양성에 힘썼으니 멘티들을 자신의 기획사로 영입할 생각도 있을 터. 그러나 그는 "지금의 삶이 너무 평화로워 절대 노(no)"란다.
또 우후죽순 생겨난 오디션 프로그램에 대한 ‘쓴소리’도 빼놓지 않았다.
"’슈퍼스타K 3’에 이은 ‘위대한 탄생 2’가 ‘인재 풀’의 마지막 수혜자일 것 같아요. 각종 대형 기획사와 방송사의 오디션이 많아 수영장의 물이 마르듯 이제 역량 있는 재목들은 거의 다 나오지 않았을까요. 이미 ‘슈퍼스타K 3’와 ‘위대한 탄생 2’에도 해외파 출연진이 많잖아요."
올해를 멘토 역할과 공연으로 마감하는 그는 내년을 보낼 구체적인 계획은 아직 없다.
최근 ‘플랫(flat)한 삶’을 살았기에 풀어낼 이야기가 없으니 억지로 음반을 낼 생각도, 연애는 하고 싶지만 가정을 다시 꾸릴 마음도 없다.
그러나 ‘공연의 신’답게 공연에 대한 꿈은 조심스레 꺼냈다.
"제겐 공연이 자부심이니 공연장 규모도 중요해요. 2007년 올림픽주경기장 공연 때 비가 와서 LED가 모두 꺼지고 제대로 된 연출을 선보이지 못해 아쉬웠죠. 다시 올림픽주경기장에 서고 싶어요. 그 무대에 가는 걸 목표로 꾸준히 뭔가를 해야겠죠."
(서울=연합뉴스) 이은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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