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행기가 빌딩으로… 오 마이 갓!”
▶ “공중자살 테러 공격 가능성” 간과
#9.11테러 재구성
9.11테러 재구성테러리스트들 공중서 본토 공격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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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객기로 공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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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적 충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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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객기 납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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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종사 위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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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종실력도 갖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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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내외 훈련
#예견된 사건이었을까
9.11 테러와 같은 고도의 동시다발적 테러을 일으키기 위해서는 적어도 4년의 준비기간과 100여명의 준비요원이 필요하다.
이런 점에서 매년 300억달러의 예산을 사용해 각종 통신과 이메일을 감청하고 암호를 해독하고 인공위성을 이용해 자동차 번호판까지 식별해 내는 미 정보기관들이 테러리스트들이 미국에서 활개치고, 자금을 조달하고 수 없이 많은 교신을 주고받았는 데도 이를 인지하지 못한 것은 납득하기 힘들다는 게 전문가들의 주장이다.
충분히 예견할 수 있는 사건이었다는 것이다. 징후는 곳곳에서 포착됐다. 9.11테러 몇 달 전인 그해 2월 미 국가안보국(NSA)은 테러리스트들의 비밀암호를 해독했다고 발표했으며 6월 독일 정보부는 미국 측에 “중동의 테러분자들이 민간 항공기를 납치해 그 항공기를 무기로 사용해 미국의 상징물을 파괴할 것”이라고 주의를 주기도 했다.
6월에는 연방수사국(FBI) 요원이 애리조나 비행학교에 많은 중동인들이 조종훈련을 받고 있으며 오사마 빈 라덴이나 테러리스트와 관련이 있을지 모른다고 보고했다.
#FBI 한 달 전 보고
마침내 조지 W. 부시 대통령도 테러 발생 36일 전인 2001년 8월6일 FBI로부터 알카에다 공격 가능성에 대한 상세한 보고를 받았다.
‘빈 라덴 미국 내부 공격 계획’이라 명명된 보고서에는 ▲FBI가 당시 비행기 납치를 포함한 수상한 활동 70건을 포착ㆍ조사 중이며 ▲알카에다가 뉴욕 연방빌딩에 대한 하이재킹이나 다른 유형의 공격을 준비하고 있으며 ▲알카에다가 미국 내 활동을 도울 수 있는 조직원을 미국 내에서 갖고 있다는 내용 등을 골자로 하고 있다. 하지만 미 정보기관들은 이 같은 오사마 빈 라덴의 공격 가능성을 알고도 이를 막기 위한 아무런 대책도 마련하지 않았다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당시 미 정보기관들은 조직화 측면에서 완벽하지 않았으며 테러에 대비하는 종합적인 플랜도 없었기 때문이다.
#항공기 납치되다
2001년 9월11일 오전 7시59분, 92명의 승객을 태운 아메리칸 항공 AA11편이 보스턴 로건 공항을 출발해 LA로 향해 날아올랐다.
하지만 비행기는 공항을 이륙한 지 몇 분이 못돼 항로를 이탈했다. 이 시각 관제센터에는 긴급 전화벨이 울렸다. 경력 13년의 AA11편 승무원 에미 스위니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녀의 말은 좀 빠른 편이었지만 침착했다.
“제 말을 잘 들으세요. 비행기가 납치됐어요. 승무원 2명은 칼에 찔렸고, 승객 1명도 목을 찔렸어요. 바닥에는 피가 흥건해요.”
같은 시간 또 다른 승무원 베티 옹도 노스캐롤라이나 예약센터에 항공기 납치 사실을 신속하게 알렸다.
관제센터는 그녀들로 인해 상황을 파악했다. 납치범은 5명이었다. 이중 4명의 신원도 확인됐다. 스위니가 납치범들의 좌석번호까지 알려줬기 때문이다. 납치범들은 노란 리번을 묶은 폭탄을 들고 조종실로 뛰어들었고, 그 과정에서 승객과 승무원에게 칼을 휘둘렀던 것이다. 기내는 순식간에 납치범들에게 장악됐다. 얼마 후 승무원들은 부상자들에게 산소호흡을 시켰다.
이 와중에도 두 여 승무원은 대담하게 계속 전화 연락을 했다.
“비행기가 갑자기 급강하하고 있어요.” 잠시 후 스위니가 바라본 창밖의 풍경이 전화로 흘러나왔다. “물이 보여요. 빌딩들도 보여요. 빌딩들도…”
기내는 조용했다. 승객들의 비명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옹은 죽음을 예감한 듯 나직하게 말했다. “우리를 위해 기도해 주세요…”
“비행기가 아주 낮게 날고 있어요.” 곧 이어 스위니는 깊은 숨을 들이키며 말했다. “오 마이 갓.” 직후 전화는 끊겼다.
수화기를 계속 붙잡고 있던 지상의 요원은 동료들에게 방금 비행기 한대가 세계
무역센터 노스 타워에 충돌했다고 소리쳤다. AA11편에 탄 승객 81명, 승무원 11명 등 92명은 그렇게 이승과 영원한 작별을 고했다.
AA11편의 충돌에 이어 65명을 실은 보스턴 발 LA행 유나이티드 UA175편이 세계무역센터 사우스 타워를 들이받았으며, 워싱턴에서 LA로 떠났던 64명이 탄 아메리칸 항공 A77편도 워싱턴의 펜타곤으로 곤두박질쳤다. 뉴저지에서 샌프란시스코로 향하던 45명이 탑승한 유나이티드 항공 UA93편은 피츠버그 동남쪽에 추락했다.
#부시 초등학교 방문
세계무역센터가 공격받고 있던 시각 부시 대통령은 플로리다의 한 초등학교를 방문 중이었다. 부시 대통령이 막 교실로 들어가기 전, 세계무역센터 노스타워에 충돌한 것을 보고받았다.
대통령은 “날씨가 나쁜가, 아니면 조종사한테 엄청나게 이상한 일이 일어났나”라며 참모들한테 뉴욕시를 지원하라고 했다. 뭐든 필요한 것은 다 지원하라는 말을 덧붙이며 부시는 이내 교실로 들어갔다.
교실에는 학생들이 책을 읽고 있었고 부시 대통령은 수업을 골똘히 듣고 있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앤드루 카드 백악관 비서실장은 부시 뒤로 다가서 특유의 매사추세츠 액센트로 귀에 대고 말했다. “또 다른 비행기가 두 번째 타워에 충돌했습니다. 미국이 공격받고 있습니다.”
보고를 들은 부시는 떨리는 마음을 진정시키며 이내 ‘평정심을 찾겠다’고 결심했다. 그는 바로 로라 여사와 두 딸이 어디 있는지를 확인했다.
#‘그 날’세계 무역센터
2001년 9월11일 오전 8시46분. 뉴욕 세계무역센터 안에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1만4,000여명의 사람들이 출근해 업무를 시작했다. 어떤 사람들은 전망 좋은 식당에서 아침식사를 즐기고 있었다. 하지만 일상의 평화도 잠시, 여객기 한 대가 110층 규모 노스타워 건물의 94~99층 사이에 충돌했다.
건물은 순식간에 화염에 휩싸였다. 세계 경제의 중심부이자 미국의 상징이 순식간에 공포의 도가니로 변하는 순간이었다. 그로부터 정확히 16분28초 뒤인 9시2분59초. 또 다른 여객기 한 대가 사우스타워 77~85층 사이를 비집고 들어왔다.
여객기가 세계무역센터 건물에 돌진하면서 빌딩 안은 아비규환이었다. 특히 건물 상층부에 갇힌 1,100여명은 가족과 연인의 울부짖으며 출구를 찾아 필사적으로 달리고 몸부림쳤다. 하지만 건물의 전기는 이내 끊어졌고 수돗물마저 나오지 않았다. 엘리베이터도 일부가 한동안 움직이다가 멈춰버렸다.
비행기가 충돌한 부분에서는 불이 활활 타오르고 연기가 가득 찼다. 연기와 불길을 피하기 위해 사람들은 창문을 향해 쏜살같이 달렸으며 마치 낙엽처럼 뛰어내렸다. 어떤 사람은 엘리베이터에 탔다 문이 찌그러지며 꼼짝없이 갇혀버리기도 했다.
불바다가 된 복도를 건너 건물 더미에 막힌 계단을 찾아내려갔지만 비행기 충돌의 충격으로 사실상 두 동강이 난 노스타워를 탈출하기란 불가능했다. 일부는 헬기로 구조되기를 바라고 옥상으로 달려가기도 했으나 짙은 연기가 둘러싸 헬기가 접근할 수 없었다. 옥상을 통해 탈출할 수도 있다는 믿음이 부서지는 순간이었다.
두 건물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던 시간은 노스타워가 102분, 사우스 타워가 57분이었다. 결국 비행기 충돌 지점 아래층(노스타워 94~99층, 사우스타워 77~85층)에 있던 1만2,000여명은 건물을 빠져나와 목숨을 건졌지만 상층부의 1,500명은 대부분 사망했다. 항공기와 충돌 당시 600명도 현장에서 즉사했으며 구조대원 412명도 희생됐다.
#아비규환… 구조 혼란
‘세계 최고의 재난구조 시스템’을 자랑하는 미국이었지만 뾰족한 수는 없었다. 건물의 비상시 대피 구조가 엉망이었던 것도 삶과 죽음을 갈랐다. 건물을 지을 때 더 많은 렌트 수입을 올리기 위해 엘리베이터 수를 크게 줄였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110층이나 되는 고층 건물의 대피환경이 6층짜리나 다름없었다.
계단은 불과 200~300명이 3~4층을 움직일 수 있는 정도였지만 9.11 테러 당일 이 계단으로 1만2,000여명이 대피해야만 했다. 30년 전 민간업자들이 항공기와의 충돌을 경고했을 때 건물주인 뉴욕항만청은 안전하다고 자신하기까지 했다.
경찰의 초기 대응도 문제였다. 1차 충돌 이후 제5 세계무역센터 내 항만청 소속 경찰서에는 구조문의가 빗발쳤지만 경찰관들은 대부분 그들에게 그 자리에 있을 것을 권했다. 사우스타워에서는 자리를 떠나지 말라는 방송 때문에 더 많은 희생을 치러야 했다.
경찰이 대피 명령을 내린 것은 사우스타워가 붕괴하기 시작한 지 13분 뒤인 10시12분이었다. 경찰과 소방대원들은 합동훈련을 해 본적도 없었을 뿐 더러 주파수마저 달라 무전교신도 불가능했다. 경찰 헬기가 다급하게 건물붕괴 경고를 했을 때도 소방관 200여명은 건물 안에 남아 있다가 숨졌다.
<이해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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