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저녁 7시45분에 하는 시트콤일 따름입니다."
대부분의 연출자는 자신의 작품에 대한 기대를 당부하는데 시트콤의 귀재 김병욱 PD는 달랐다.
그는 8일 오후 논현동 임피리얼 팰리스 호텔에서 열린 ‘하이킥! 짧은 다리의 역습’ 제작발표회에서 "너무 큰 기대를 말아달라"며 이같이 말했다.
앞서 2편의 ‘하이킥’ 시리즈가 큰 성공을 거두면서 ‘하이킥! 짧은 다리의 역습’에 쏠리는 대중과 언론의 관심은 뜨겁다. 치열했던 오디션 경쟁과 줄 잇는 광고 제의로 ‘하이킥 광풍’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방송가 안팎의 기대를 반영한 만큼 시즌 3의 제작비는 시즌 2보다 배 이상 늘어났다. 시청률에 대한 기대도 크다. ‘거침없이 하이킥’과 ‘지붕뚫고 하이킥’은 각각 24.2%와 27.6%의 최고 시청률을 기록했다.
김병욱 PD는 부담감을 감추지 않았다.
"저희 집 가훈이 남들에게 폐를 끼치지 말자인데 출연자들은 이 작품 선택으로 기회비용이 발생했는데 결과가 좋아야겠다는 부담이 많이 있습니다. 그게 꼭 시청률은 아니에요. 저희는 사회적으로 큰 획을 그을만한 작품이 아니에요. 소박하게 저녁 먹으면서 부담 없이 즐기는 작품입니다. 그런 본분을 잊지 말아야겠다는 마음으로 제작하고 있습니다."
이번 ‘하이킥’은 패자들의 역습을 전면에 내세웠다. 빚에 쫓겨 친척집에 얹혀사는 가정이 등장하고 학자금 대출로 취업 전부터 수천만원의 빚을 진 취업 준비생이 나온다.
김병욱 PD는 "몰락한 사람들이 희망을 찾아서 도전하고 시련을 겪는 과정을 코미디로 그렸다"며 "그렇다고 우리가 희망에 찬 성공담을 다루는 것은 아니다. 이런 사람들이 작게라도 어떤 것을 이루는 희망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지 보편적인 희망을 이야기하지는 않는다"고 설명했다.
앞선 ‘하이킥’ 시리즈의 우울한 결말에 대해 죄송하다고 사과한 그는 "이번에는 초반 소동을 많이 넣어서 다이내믹해 보이려고 노력했다. ‘지붕킥’보다 좀 더 코미디를 많이 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김 PD는 전작들에서 이순재, 신구 등 장년층 배우들과 아역 캐릭터를 활용한 코미디를 많이 구사했으나 이번에는 배역의 연령대가 10대 후반에서 30~40대에 몰려 있다.
김 PD는 "많이 하다보면 더 많이 만들수도 있지만 자기복제 같은 느낌이 들어서 이번에는 뺐다"고 밝혔다.
"캐릭터가 중간 나이대에 몰려 있다보니 에피소드를 만들기가 제한적이긴 한데 예전에 3대 구조가 현실적인 것은 아니어서 코미디를 가능하면 양보하고 현실적인 것으로 바꿔야겠다는 생각을 했었어요. 그런 캐릭터의 원형을 반복하지 않아야겠다 한거죠."
’하이킥’ 시리즈는 작품마다 극중 배경이 되는 장소에 특별한 장치나 공간을 설치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거침없이 하이킥’은 집의 층과 층 사이를 연결하는 봉, ‘지붕뚫고 하이킥’은 방과 방 사이에 뚫린 구멍이었다. ‘하이킥! 짧은 다리의 역습’에는 급기야 집과 집을 잇는 땅굴이 등장한다.
김 PD는 "예전부터 땅굴을 하고 싶었는데 돈이 없어서 못했다"며 "이번에는 제작비를 예전보다 좀 주셔서 할 수 있게 됐다"고 비화를 밝혔다.
"봉이나 구멍은 철학적인 뜻이 있는 게 아니고 몸개그를 좀 넣을 수 있을 것 같아서 한 거에요. 땅굴은 나중에 출연자 마음 속에 상징적인 의미가 있는 공간이었으면 합니다. 처음에는 빚쟁이에 쫓겨서 도망가는 공간이지만 나중에 두 집을 이어주는 실크로드가 될 수도 있어요. 누군가에는 사랑을 가져다주는 공간이지만 또 다른 사람에게는 마음의 감옥일 수도 있습니다. 이 공간의 변화가 주제와 결부되게 하고자 합니다."
그의 시트콤에는 연기자들이 실명으로 등장한다. 이번 작품도 예외는 아니다. 출연자들은 가족으로 설정된 경우 성만 바꿀 뿐 실명을 쓴다.
"실명을 쓰면 연기자들이 열심히 하는 효과가 있습니다. 실제로 내 이름을 더럽히고 싶지는 않잖아요. (웃음) 더 열심히 하라는 뜻에서 실명을 쓰게 합니다. 또 제가 다큐를 좋아하는데 극을 가장 실제에 가깝게 만들고 싶다는 욕심이 있어요. 제가 본 (배우의) 이미지가 캐릭터에 들어가 있기도 해요."
’하이킥! 짧은 다리의 역습’의 캐스팅 경쟁은 치열하기로 유명했다. ‘하이킥’ 시리즈가 숱한 스타들을 배출했기에 ‘하이킥 로또’라는 말이 생길 정도였다.
윤계상은 안내상, 윤유선과 함께 일찌감치 ‘하이킥’에 캐스팅된 배우 중 한 명이었다. 그는 드라마 ‘최고의 사랑’에 앞서 ‘하이킥’에 캐스팅됐다.
김병욱 PD는 "계상 씨하고 처음에 술 마시면서 인간 자체에 반했다"며 "배역이 있어서 하자고 요청한 게 아니라 술을 먹다가 어떤 캐릭터든 만들어보자고 약속하고 캐릭터를 만들었다. 계상 씨는 자기가 뭘 할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최고의 사랑’을 찍었다"고 밝혔다.
김 PD는 "욕심에 이 사람 저 사람 데려 오고 싶다보니 사실 소화가 안 되고 있다"며 "출연진 15명이 다 떴으면 좋겠다"며 웃었다.
주 1회인 외국 시트콤과 달리 주 5일 시트콤을 제작하다보니 제작 스케줄은 빠듯하기 그지없다. ‘하이킥! 짧은 다리의 역습’은 방송 전부터 밤샘 촬영이 이뤄지고 있다.
김 PD는 이런 제작 현실에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일일시트콤이 진작 실패를 해서 누구나 포기해야 할 장르라 생각했으면 포기가 됐을텐데 성공한 사례가 있으니까 방송국에서 계속 편성을 주는데 만드는 사람 입장에서 엄청나게 말도 안 되는 상황입니다. 시간과 끊임없이 싸워야 합니다. 게다가 이야기를 생각하는 건 오래 걸리는 일인데 일주일에 10개(회당 2개)를 생각해야 하니까 무리한 작업입니다. 일일시트콤답게 처음부터 페이스 조절을 해야하는데 초반에 엄청나게 일을 많이 벌여나서 걱정이 많습니다. 우선 완주하는 게 목표입니다. 그런데 완주를 할 수 있을까요.(웃음)"
(서울=연합뉴스) 고현실 기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