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라운드 제로를 가다
▶ 인근 한인상권 현재와 전망
전쟁터를 방불케 했던 그라운드 제로 인근의 한인 비즈니스 업체들은 10년 전 테러의 직격탄을 맞았다. 처참하게 쓰러진 월드 트레이드센터처럼 이들도 어렵게 일구어낸 삶의 터전이 하루아침에 무너지는 모습을 망연히 지켜봐야 했다. 이후 10년 간 로어맨해턴의 한인상권도 많은 변화를 겪었다. 문을 닫고 떠난 사람들을 대신해 새로운 업소들이 들어섰고 ‘제2의 부흥기’를 맞고 있는 이 지역에서 새로운 희망을 찾고 있다.
10년간 델리·세탁·네일 등 한인업소 30% 수준 위축
거주민·유동인구 증가로 2009년부터 상권 활기 되찾아
치솟는 렌트·대형 소매체인점 앞다퉈 진출
“지역 활성화돼도 한인 소상인 힘들 것” 시름은 여전
■ 2년 전부터 본격적인 활기
9.11 테러와 그 이후 장기간 지속된 로어맨해턴의 침체는 이 지역 한인 비즈니스에 치명적인 타격을 안겼다. 길게는 두 달 가까이 통행이 금지된 지역의 업소들은 영업을 하지 못했던 기간의 손해를 고스란히 떠안아야 했고 가까스로 문을 연 후에도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폐업한 경우가 적지 않았다.
운 좋게 많은 보상금을 받은 업주들은 다른 곳으로 이동해 사업을 차렸다. 결국 한때 이 지역에 번성했던 선물, 잡화점과 액세서리 업소는 2001년 이후 자취를 감췄고 델리와 세탁소, 네일 업종도 수적으로 30% 수준으로 크게 위축됐다.
남아 있는 업종뿐 아니라 9.11 이후 새로운 가능성을 노리고 진출한 업소들도 지지부진한 재건사업과 대규모 교통센터의 공사 중단으로 인한 어수선한 분위기로 영업에 장기적인 차질을 입었다. 2000년대 중반 이후 회복기를 맞았지만 또 다시 금융위기라는 초대형 악재를 만나 주춤했다.
로어맨해턴 상권에 활기가 돌아온 것은 월스트릿이 다시 기력을 찾기 시작하고 풀턴 트랜짓 공사가 재개된 2009년 상반기부터다. 당시 현장에서 만난 카페 토다의 제프 윤 사장은 “눈에 띄게 매상이 늘지는 않지만 분명히 좋아지고 있다”며 “중요한 건 지역 업주들 모두 상황이 호전될 것이라는 낙관을 갖고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해 인근에 또 다른 매장을 열었던 그는 지역의 미래에 대해 이처럼 자신감을 나타냈었다.
테러 10주년을 앞둔 시점에서 다시 찾은 로어맨해턴은 윤 사장의 희망처럼 2년 동안 훨씬 활기차고 안정된 모습으로 변모했다. 관광객의 발걸음이 늘어나고 주민의 수가 증가하면서 상인들의 자신감도 커졌다. “이제는 계속 좋아지는 일만 남았다”는 분위기가 팽배했다.
그러나 낙관적인 시각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20년 이상 장사하며 지역의 변천사를 온몸으로 겪었던 일부 업주들은 새롭게 바뀌고 있는 로어맨해턴에서 한인 소상인들이 계속 생존할 수 있을지 불안감을 갖고 있었다.
■ 좋아지는 일만 남았다
지역과 한인 비즈니스의 전망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풀턴 와인 앤 리커’ 업주 정모씨는 대답 대신 업소 바로 맞은편에 들어선 2동의 새 빌딩을 가리켰다.
몇 년 전만 해도 오래된 사무실 빌딩이었던 풀턴 스트릿 선상의 이 건물들은 2년여의 공사를 거쳐 1층엔 각종 식당과 소매점, 2층부터는 콘도가 들어선 주상복합 빌딩으로 변모했다. 정씨는 “이전에는 금융회사 직원들과 관광객이던 고객층에 지역 거주자가 포함되었다는 의미”라며 “대부분 고소득층인 이들이 단골이 된다면 얼마나 영업에 도움이 많겠느냐”고 기대감을 나타냈다.
인근 한인 업소인 ‘젬 스토리’와 ‘솔루션 뷰티’‘토마토 델리’ 관계자들도 비슷한 반응이었다.
금융위기 직후에 잠시 위기를 맞았지만 여전히 밀려오는 관광객 손님들과 증가하는 거주자들이 비즈니스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는데 큰 도움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상인들의 말처럼 큰 폭으로 늘어나는 로어맨해턴 고소득 주민들은 이 지역 비즈니스에 커다란 혜택이다. 지역 비즈니스연합체인 ‘다운타운 얼라이언스’가 8월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이 지역은 최근 몇 년간 맨해턴에서 가장 인구 유입이 많은 지역으로, 2010년 거주인구가 5만6,000명을 넘어 10년 전 2만4,000명보다 무려 3만명 이상 증가했다. 2008년 700만명으로 추산되던 유동인구 역시 2010년에는 900만명으로 급증했다.
12개 전철노선이 만나는 풀턴 트랜짓 센터가 완공되고 새로운 월드 트레이드센터 7개 동의 공사가 마무리되면 유동인구는 다시 급증할 것이다.
주변 비즈니스 환경도 갈수록 호전되고 있다. 한인 업소를 포함 풀턴 스트릿 선상의 소매점 입구들을 답답하게 가로막고 있던 공사 현장들이 차츰 정리되고 있다. 2주 전에는 새로운 전철역 입구가 개통되어 행인들의 통행을 한결 편하게 한다.
■ 오히려 더 힘들어질 수 있다
그라운드 제로 북쪽의 리드 스트릿 선상 VIP 네일의 오혜숙씨는 공사가 한창인 월드 트레이드센터 현장을 가리키며 “근방에 그 많던 한인 델리가 지금은 거의 남지 않았다”고 아쉬워했다. 높이 올라가고 있는 고층 빌딩들도 오씨에게는 마냥 희망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세입자들이 다 들어차기엔 아직 멀었다”며 “세금도 뛰고 렌트도 오르고 예전보다 장사하는 게 너무 빡빡해졌다”며 한숨을 쉬었다. 나중은 모르지만 당장 몇 년을 버티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인근에 2개밖에 남지 않은 한인 네일업소들의 가장 큰 우려는 중국인 업소들과의 가격경쟁이다. 인근 7개 블락에 있는 네일 업소 10여개 중 대부분인 중국계가 저가공세를 펼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엔 중국 마사지 업소도 등장했다.
챔버와 그리니치 스트릿 코너에서 20년간 어린이 의류점을 운영해 온 ‘코스 키즈’(Koh’s Kids)의 그레이스 고 사장도 지역 발전이 꼭 비즈니스에 도움이 될지 확신을 못하고 있었다. 고씨에 따르면 9.11 이전만 해도 이곳은 ‘맨해턴의 시골’이라고 불릴 정도로 커뮤니티의 친밀감이 넘쳤다. 한인 델리와 세탁소가 여러 곳이었고 작가와 예술가들이 많았다.
그 이후 개발붐이 불고 건물과 주택가격이 뛰면서 많은 주민이 떠나갔다. 현재는 7,000~1만달러 렌트의 고급 콘도들이 생겨 부유층 신규주민이 늘고 있다.
고씨는 “단골들이 여전히 있고 오히려 인구가 늘다보니 비즈니스가 어렵진 않다”며 “문제는 소비자층이 변하면서 분위기가 계속 바뀌고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홀푸드가 생기면서 한인 델리들이 타격을 입은 것을 봤기 때문에 새로 들어설 대형 소매업체와 패션 매장들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우려가 되는 것이다.
■ 그래도 희망에 건다
불안감을 갖고 있는 상인들의 의견은 “분명히 로어맨해턴은 발전할 것이지만 한인 소상인들에게 그 혜택이 고스란히 돌아올 것인가?”로 모아진다.
청과와 델리, 잡화 등 대표적인 한인 업종들을 위축시킨 중요한 요인이 대형 소매체인점의 증가에 있기 때문이다. 극히 일부를 제외하곤 여전히 ‘맘앤팝’ 규모인 이들 업소들에 영업 지역이 대형화되는 것은 반드시 반길 수만은 없는 일이다.
실제로 당장 렌트가 치솟고 있다. 지난해 3월 이후 브로드웨이 인근의 상업용 렌트는 36%나 올라 스퀘어피트당 184달러를 기록하고 있다. 맨해턴에서 가장 가파른 오름세다. 로어맨해턴 전체의 렌트 상승률도 여타 지역에 비해 두배 이상 높다.
2014년 새로운 월드 트레이드센터가 완공되면 36만 스퀘어피트 규모의 몰이 들어서게 되지만 인근 상업용 건물의 렌트를 낮추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예상하고 있다.
이미 대형 소매업체들의 진입 경쟁도 치열하다. ‘커시먼 앤 웨이크필드사’가 옛 JP 모건 체이스 본사 건물을 대형 백화점으로 개발하고 있고 센추리 21이 확장계획을 발표했다. 메이시스와 블루밍데일도 진출을 노리고 있다는 소식이다. 이런 변화들이 한인 업소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두고 봐야 할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희망적인 미래에 더 무게를 두고 싶어 한다. 일말의 불안감을 떨치지 못하면서도 그레이스 고 사장의 마지막 말은 이 지역 모든 상인들의 희망을 집약해서 나타낸다.
“워낙 사람이 많이 다니는 곳이잖아요. 우선 유럽에서 온 관광객들은 전부 그라운드 제로를 보러 와요. 20년 장사한 내가 봐도 주위가 너무 빨리 발전하고 있어요. 새옹지마라는 말도 있지만 오히려 테러 전보다 좋아질 수 있습니다.”
<박원영·최희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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