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성시경(32)은 스스로 아날로그의 마지막 세대라고 여긴다.
지난해 5월 제대해 3년 만에 발표하는 7집 ‘처음’도 고민을 거듭하다 이 소신대로 밀어붙인 음반이다.
싱글, 미니음반이 대세인 시장에서 12곡이 담긴 정규 음반을 택했고, 컴퓨터로 사운드를 찍어내는 시대에 리얼 악기 연주자들과 녹음했다. 음반에 참여한 작사, 작곡가 라인업도 고(故)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를 쓴 강승원을 비롯해 싱어송라이터 윤상과 작사가 박창학 등 ‘옛 명곡’의 주역들이다.
아니나 다를까.
지난 6일 여의도의 한 카페에서 연합뉴스와 인터뷰한 그는 "난 옛날 사람이니까"란 전제부터 깔았다.
"미니음반의 유혹도 받았죠. 하지만 저마저 그 방법을 택하면 아날로그 세대의 마지막 끈을 자르는 느낌이 들었어요. 그런데 만들다 보니 정규 음반을 내는 게 이제 사치더군요. 제가 (팬이 많은) 비, 소녀시대도 아니고 음반 5만장이 팔려야 2억원이 남는데 이미 녹음실을 ‘풀(full)’로 썼고 리얼 악기 녹음도 많이 했고 뮤직비디오에도 1억원을 들였으니. 사람들이 공들인 음반인 걸 좀 알아줬으면 좋겠어요. 자선사업이면 안되는데. 하하."
정규 음반을 택한 만큼 그 안에 채울 음악에 대한 고민이 컸다. 게다가 그는 군대로 2년을 보냈기에 고민의 종지부를 찍는데도 1년여가 또 걸렸다.
그는 "군대 2년보다 그다음이 문제더라"며 "변화가 빠른 가요계에서 그간 난 멈췄고 세상은 흘러갔다. ‘아이돌 가수가 대세인데 날 좋아할까’ ‘후배들과 음악 프로그램에 나갈 수 있을까’ 등 여러 생각이 들더라"며 웃었다.
"대중 가수로서 ‘핫(hot)’하고 싶은 게 당연한 욕심이잖아요. 하지만 억지 노력을 해서 이상하게 변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어요. 후배들이 절 ‘선배님’ ‘아저씨’라 생각해도 사람들이 절 자기 색깔 있는 가수로 봐주면 될 것 같았죠. ‘내 걸’ 열심히 해서 ‘내 색깔’을 내기로 했죠."
2000년 데뷔 때처럼 다시 시작한다는 마음에 음반 제목을 ‘처음’이라 붙였다.
그러나 변화는 있다. 이번 음반은 그가 나아갈 음악 행보의 전환점인 듯 보인다. 직접 프로듀서로 나섰고 총 12트랙 중 자작곡 5곡을 담아 싱어송라이터로서의 걸음을 뗐다.
자작곡인 타이틀곡 ‘난 좋아’는 후렴구로 시작되는 요즘 히트곡 공식에서 벗어나 도입부에 피아노와 바이올린 전주가 낮게 깔렸다. 멜로디가 물 흐르듯 전개되는 편안한 발라드다.
"이 곡의 작곡가, 프로듀서, 가수였으니 여러 역할 사이에서 갈등도 많았죠. ‘후렴구가 도입부에 나와야 하나’ ‘멜로디가 쉬워야 하나’ 등등. 그런데 전 ‘트렌드 메이커’였던 적도 없고, 실험적인 서태지와아이들도 아니니 멜로디가 잘 들리는 제 스타일의 곡으로 완성했어요. 최근 김연우 형에게도 곡을 줬는데 앞으로 다른 가수들과도 많이 작업해보고 싶어요."
음반 재킷 크레딧에서 눈에 띄는 이름은 ‘처음’과 ‘태양계’를 작곡한 강승원이다.
"형님 집에 갔더니 십수년 동안 수십 곡을 써둔 일기장 같은 노트가 있는 거예요. 정말 좋은 곡을 쓰고도 소개하지 못한 진짜 아티스트를 위해 제가 중간 다리 역할을 하고 싶었죠. 요즘 친구들에게도 가사에 내러티브가 있는 ‘진짜’가 있단 걸 들려주고 싶었어요."
1990년대 명콤비인 윤상과 박창학이 만든 ‘아니면서’를 부른 것도 가수로서 무척 뜻깊은 기회였다. 음반 작업 내내 정신적 지주가 돼 준 윤상과는 술잔도 참 많이 기울였다고 한다.
"형과는 멜로디를 쓰는 사람의 고민, 요즘 음악의 문제점, ‘뻔한 듯 뻔하지 않고, 어려운 듯 쉬워야 하는’ 곡쟁이의 스트레스, 여자, 결혼, 술, 인생 등 많은 얘기를 나눴죠. 하하."
옛 정서와 마인드가 맞닿은 그에게 음악이 무한 카피되고, 초스피드로 소비되는 요즘 음악계는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일맥상통하듯 그는 TV보다 라디오를 좋아한다. 자신이 진행 중인 MBC 라디오 ‘FM 음악도시 성시경입니다’에 대한 애착도 당연히 크다.
그는 "누군가는 라디오를 듣고 사연도 보내야 하지 않을까"라며 "음악계처럼 환경도 변화의 속도만큼 빠르게 파괴되지 않나. 이를 막으려면 TV를 끄고 라디오를 듣고 편지를 쓰려는 소극적인 노력부터 해야 한다. 음악계든, 환경이든 이러한 노력이 모이면 탄성한계를 넘어가려는 용수철을 잡을 수 있지 않을까"라고 했다.
그럼에도 그는 요즘 TV에 모습을 비추기 시작했다. KBS 2TV ‘유희열의 스케치북’ 코너 진행, KBS 2TV ‘해피선데이-1박2일’ 게스트, 엠넷 ‘슈퍼스타K 3’ 심사위원 등 다방면의 노출이다.
그는 "난 방송인인데 가수가 아니라 가수인데 방송인"이라며 "사람들이 꽤 재미있어 해 ‘팔려나갈 팔자구나’라고 생각한다. 하하. 음반을 내고 노래를 들려주겠다는 명분이 있으니 신인 가수처럼 최선을 다해보려 한다"며 웃었다.
최선을 다하겠다는 의지는 외모 변화에서도 느껴진다. 체중 감량으로 턱선이 꽤 날렵해졌다.
"확실한 건 투실투실하면 노래가 덜 들린다는 거예요. 제가 2PM을 이기는 ‘몸짱’이 되겠다는 게 아니라 음반을 내는 가수의 자세인거죠. 저녁에 술을 줄이고 집이 있는 반포와 라디오 하는 여의도까지 뛰어다녔어요. 사실 10㎏을 뺀 걸로 알려졌는데 5㎏ 정도 빠졌어요. 술을 좋아하고 대식가여서 무척 힘들더군요."
그래서 물었다. 가요계 소문난 ‘주당’인 성시경에게 술이란.
"웬수죠. 하하. 카드명세서에 술값만 즐비할 정도로 오로지 술만 먹었죠. 하지만 가끔은 술 먹을 시간에 연애도 하고 공부도 하고 ‘식스팩’도 만들 걸 후회도 돼요. 그런데 그게 저예요. 이제 슬슬 몸도 힘들어지니 술도 좀 줄이고 여행도 다니려구요. 물론 아직도 술자리에서 누군가 도발하면 의욕이 생기는 건 젊다는 거겠죠?"
지난 공연 때 무대에서 외로움을 토로했던 만큼 제 짝도 찾을 나이가 됐다.
그는 "자연스러운 게 좋은데 여자를 만날 기회가 없어 쉽지 않다"며 "이상형도 딱히 없다. 좋은 사람이면 느낌도 좋다. 열심히 살 거니까 생길 것 같다. 그런데 생겨도 공개 안할 것이다. 어쩌면 지금 만나고 있을 수도 있지 않겠나"라고 안경 너머로 웃어 보였다.
(서울=연합뉴스) 이은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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