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비아 반군이 23일 무아마르 카다피 지도자 진영의 핵심 거점인 바브 알-아지지야 요새를 장악한 것을 끝으로 사실상 마침표를 찍은 리비아 시민혁명은 거리시위에서 출발, 내전, 국제전으로 비화된 한편의 대서사극이었다.
올초부터 전 아랍권을 휩쓸고간 민주화 바람은 리비아를 피해가지 않았다.
튀니지에 이어 이집트의 독재정권이 무너진 직후인 2월15일 동부 해안에 위치한 리비아 제2의 도시 벵가지에서 발생한 시위가 출발점이 됐다. 1996년 아부 살림 교도소에서 발생한 정부군의 학살 사건 때 희생된 재소자들의 유족이 자신들의 변호사인 페티 타르벨이 유언비어 유포혐의로 체포되자 경찰서로 몰려가 석방을 요구한 것이다.
리비아 경찰은 타르벨 변호사를 석방했지만 주변 두 나라에서 시민들이 독재정권을 무너뜨렸다는 소식을 접한 리비아인들은 곧바로 반 카다피 투쟁 양상으로 돌변했다. 1969년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이후 의회 제도와 헌법을 폐기한 채 42년째 리비아를 철권통치해온 카다피를 몰아내기 위한 투쟁으로 변화한 것이다.
카다피 정권은 이제껏 해온 방식대로 시위를 유혈진압했다. 지네 엘-아비디네 벤 알리(튀니지)와 호스니 무바라크(이집트)의 허무한 몰락을 지켜본 카다피는 경찰과 친위 민병대를 앞세워 시위대에 실탄을 발사, 사망자는 수십명 단위에서 수백명으로 급증해 나갔다.
분노한 시민들은 결국 총을 들었다. 사태의 성격이 단순한 시위에서 내전으로 변모한 분기점이었다.
2월 하순 카다피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약한 동부 벵가지를 `해방구’로 만든 시민들은 트리폴리의 카다피 정권에 맞선 무력 투쟁을 전개했다. 시위 개시 일주일 만인 2월22일 TV에 등장한 카다피가 정부군에 대대적인 시위대 진압을 지시하면서 진압 작전에는 박격포와 헬리콥터까지 동원됐다.
반 카다피 세력은 3월5일 자신들의 대표기구인 과도 국가위원회를 설립한 것을 계기로 조직적인 카다피 정권 전복 투쟁을 전개했다. 이들은 자신들이 리비아 국민의 합법적인 대표라고 주장하면서 카다피 정권의 심장부인 트리폴리를 향해 진격해 나갔다.
이때부터 리비아 상황을 `시위’가 아닌 `전투’로, 참가자를 `시위대’가 아닌 `반군’으로 부르는 이들이 대세를 이뤘다.
그러나 40년 이상 철옹성을 구축해온 카다피는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3월9일 반정부 시위대 배후에 국제테러조직 알-카에다가 있다고 주장하더니 압도적인 무력을 앞세워 반군 거점인 동부 벵가지로의 대대적인 반격을 전개한 것이다.
급기야 3월16일 카다피의 아들이자 리비아 정부의 2인자인 세이프 알-이슬람은 반란이 48시간 내에 진압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반 카다피 세력으로선 궤멸 위기였다.
반군의 희생이 눈덩이처럼 불어가고, 벵가지에서 최후의 대규모 학살이 빚어질 위험이 높아지자 국제사회의 움직임도 급속히 빨라졌다.
카다피 군대가 반군 거점인 벵가지의 턱밑까지 진격한 다음날인 3월17일 유엔 안보리는 리비아 상공에 비행금지구역을 설정하는 것을 골자로 한 결의안을 채택했다.
이어 3월19일 프랑스와 영국이 주축이 되고, 미국이 가세한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연합군이 `오디세이의 새벽’이라는 작전명 아래 리비아 공습에 나서면서 사태는 내전에서 국제전으로 또 한번 변화했다.
이후 반군-나토군과 카다피군 간의 전투는 한동안 소모전 형태로 전개되다 6월말 반군 쪽으로 전세가 기울기 시작했다.
국제사회에서 과도국가위원회를 합법 정부로 인정하는 국가들이 늘어나면서 반군에게 `실탄’이 공급되고, 서방의 공습으로 인해 카다피 측은 전투기와 장갑차 등 핵심 전투역량을 대부분 상실하면서 전선의 교착 상태가 깨진 것이다.
특히 영국과 프랑스는 특수부대 요원들을 리비아 영토 안에 투입, 반군을 훈련·무장시켰고, 미국은 이달 중순부터 공중 정찰과 공습 출동 빈도를 획기적으로 높이면서 반군의 트리폴리 진격에 날개를 달아줬다.
반군이 트리폴리를 향해 진격해오자 카다피 친위부대는 지난 15일 스커드 미사일까지 동원하며 저항했지만 전세를 역전시키기엔 역부족이었다.
반군은 나토군의 공습 지원 속에 20일부터 트리폴리 함락을 위한 최후의 작전(작전명 인어의 새벽)을 전개했다. 결국 카다피 요새인 알-아지지야가 반군에 함락되면서 전쟁은 시민의 승리로 마무리됐다.
비록 반군의 알-아지지야 점령에도 불구, 카다피의 행방은 파악되지 않았지만 그는 이미 독재자에서 도망자로 전락한 처지이다. 카다피는 중동 `재스민 혁명’이 몰아낸 세번째 독재자로 기록에 오른 셈이다.
(카이로=연합뉴스) 한상용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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