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싶어 한국을 방문하는 마이클 로빈슨(가운데)씨가 지난해 졸업식에서 가족과 함께 찍은 사진.
학업 운동 탁월 대학졸업
“한국 가서 뿌리 찾고싶어 의사 돼 입양아 도울 것”
“이번 여행을 통해 한국인의 피가 흐른다는 것을 다시 확인하고 싶습니다”
갓난아기 때 미국 백인 가정에 입양됐던 한인 청년이 자신의 뿌리를 찾기 위해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위티어 칼리지를 졸업한 마이클 로빈슨(22)씨로 그는 출생 직후 찾아온 장애를 극복한 인간승리의 주역이다.
로빈슨은 1988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당시 의사는 로빈슨이 손가락 2개가 없으며 남은 2개 역시 완전하지 않고 그의 오른발도 100% 정상이 아닐 것이라고 밝혔다. 그 때문이었을까. 로빈슨의 생부모는 그에게 ‘권유호’라는 이름만을 남겨둔 채 떠났다. 갓난아기 ‘유호’는 한국의 홀트 아동 복지회로 옮겨졌다. 혼자 자라던 ‘유호’는 미국 베터니 크리스찬 아동 복지회를 통해 미국인 양부모 도날드(67)∙캐롤라인 로빈슨(62)을 만났고 생후 2개월 만에 ‘권유호’는 ‘마이클 로빈슨’이 됐다.
어린 로빈슨에게 미국 땅은 결코 행복하지만은 않았다. 해군에서 근무했던 양아버지를 따라 이곳저곳을 돌아야 했다. 유년기를 이탈리아에서 보냈고, 미국에 돌아와서도 사우스캐롤라이나, 워싱턴, 콜로라도 등을 거쳐 캘리포니아에 정착하기까지 떠돌아야 했다. 또, 철없던 어린 시절 학교 급우들에게 놀림도 많이 받았다.
로빈슨은 “어린 시절엔 왜 영어식 성을 쓰느냐는 질문을 받고 놀림 받는 것이 잦아 화도 많이 났었다”고 말했다. 신체적 장애도 부담이었다. 그러나 로빈슨은 이 모든 어려움을 극복해냈다. “어느 순간 남들의 수군거림이 전혀 신경 쓰이지 않았다”는 로빈슨은 위티어 칼리지 축구팀과 육상팀에서 활약했다. 로빈슨이 정상인만큼 다리를 쓰지 못할 것이라던 의사들의 진단이 무색해지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로빈슨은 공부와 체육 모두 우수한 성적으로 지난 2010년 졸업했다.
이번에 로빈슨이 한국을 찾는 이유는 한국어를 배우고 한국인으로서 정체성을 찾고 싶어서다. 로빈슨은 “한국행을 통해 한국인의 피가 흐른다는 것을 다시 확인하고 싶다”라고 강조했다. 또 그는 훌륭한 의사가 되어 자신과 같은 입양아들을 위한 멋진 의술을 베풀고 싶다고 밝혔다. 이번 한국 체류 기간 로빈슨은 자신의 입양을 도왔던 소아과 의사들을 만나고 입양을 돕는 소아과 의사들 밑에서 의학의 기초를 배워갈 예정이다.
자신과 같이 로빈슨 가에 입양된 누나 알렉시(31), 형 매튜(29)와 미군 육군 대위로 복무 중인 티모시(27)등 3명의 입양 형제가 있는 로빈슨은 “어린 시절의 좋은 기억들을 다시 베풀고 싶다”며 이번 한국행에 기대감을 내비쳤다.
<허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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