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퀸스의 리지우드 돈육점을 운영하는 조넬 피치오아네(오른쪽). 루마니아계 세르비아 출신인 그의 아버지 코르넬(왼쪽)이 1977년 시작한 정육점을 물려받은 것이다. (아래)중국계 켈리 챙(오른쪽)은 법대를 중퇴하고 가업인 중국 식당을 운영하고 있다. 왼쪽은 리처드 데일리 전 시카고 시장과 함께 선 아버지 에릭 챙.
뉴욕에서 자란 제이슨 왕은 2-3년 전 세인트루이스의 워싱턴 대학에서 비즈니스 전공으로 졸업했다. 그리고 지금은 이스트 빌리지의 중국 음식점, 시안 페이머스 푸즈에서 주 6시간씩 일을 하며 식당 경영주로서의 커리어를 쌓아가고 있다. 이민 1세 부모의 생계 수단이었던 식당을 그는 멋진 기업으로 키우려는 야심에 차있다.
민족 고유의 맛에 현대적 감각 접목
생계수단이던 가업 기업화에 성공
시안 페이머스 푸즈는 지난 2006년 그의 아버지 데이빗 시가 퀸즈, 플러싱의 작은 지하공간에서 시작한 식당이다. 데이빗은 중국식당 주방에서 10년간 일을 하다가 자기 식당을 열어 잘 알려지지 않은 고향 음식을 내놓았다.
음식점 소문은 오래지 않아 입에서 입으로 퍼져나갔다. 음식 사이트 블로거와 방문자들이 그의 신비로운 소스에 대해 입을 모아 칭찬을 한 탓이다. 8살 때 이민 온 제이슨은 새로 찾아오는 손님들을 위해 아버지의 메뉴를 영어로 번역했다.
이제 시안 페이머스 푸즈는 5개의 지점을 갖춘 큰 식당 체인이 되었다. 그중 3개는 맨해탄에 위치해있다. 마케팅을 전공한 23살의 제이슨은 지난해부터 풀타임으로 식당에 관여하면서 사업 확장의 큰 계획들을 가지고 있다. 이들 부자는 새로 지점을 세울 지역들을 물색하는 한편으로 브루클린, 이스트 윌리엄스버그에 중앙 배급소를 설립하고 있다. 각 식당들에 보낼 식 재료를 관리할 곳이다.
그러나 고객을 다양하게 늘린다고 해서 중국 시안지방의 토속적 메뉴를 없앨 생각은 없다. 그 지방음식 특유의 정통성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식당 브랜드의 핵심 중 하나라는 사실을 제이슨은 알고 있기 때문이다.
“전통 음식 그대로를 유지할 생각입니다. 그 때문에 손님들이 찾아오는 것이니까요. 계산대의 영어 못하는 직원들도 그대로 둘 생각입니다. 그게 더 진짜 같아 보이니까요.”
플러싱 지하에 있던 식당을 이스트 빌리지로 옮기고 그 외 여러 곳으로 확장한 데는 2세로서 문화와 코드를 쉽게 넘나드는 제이슨의 역할이 크다. 1세 자영업자들, 특히 식당주인들의 야심 찬 2세 자녀들이 제이슨과 비슷한 일을 하고 있다. 소수인종 식당들에 뭔가 진짜를 찾아 헤매는 대중들이 찾아들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 2세는 부모가 창업한 식당이나 식품점 주변에서 성장했다. 부모 세대 때 식당은 동족 커뮤니티에 고향의 맛을 제공하는 일을 했다. 여기서 영어는 선택일 뿐이고, 마케팅은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고, 혁신 같은 건 필요 없었다. 주류사회 음식 문화와는 멀리 떨어져 있었다.
그러나 이제 주류 음식문화는 예전 같지 않다. 음식 블로거나 TV 호스트들이 숨은 맛의 보물들을 찾기 위해 구석구석을 쑤시고 다니면서 구멍가게 같은 식당들에 갑자기 전혀 새로운 손님들이 몰려들고, 때로는 전국적 유명 식당이 되기도 한다. 이런 추세에 편승해 미국에서 교육받은 2세들은 부모의 사업체를 물려받아 원래의 맛과 질을 유지하면서 보다 다양한 고객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메뉴는 전혀 바꾸지 않으면서 현대적 비즈니스 모델을 적용하기도 하고, 옛날 조리법에 퓨전 메뉴를 추가하기도 한다.
퀸즈에서 2개의 정육점을 운영하는 조넬 피치오아네는 이민 2세이자 2세대 정육점 주인이다. 그의 아버지 오르넬 피치오아네는 세르비아에서 온 루마니아인으로 10년 전 은퇴하기 전까지 이들 두 가게를 운영했다.
“아들이 대학에 갔어도 나는 언제나 마음속으로 아들이 돌아와 가게를 맡아줬으면 했다”고 그는 말한다.
41세의 아들 조넬은 아버지가 하던 방식 그대로 훈제 살라미를 만들고 파프리카 섞은 햄을 만든다. 그리고 옛날 손님들이 찾아오면 유창한 루마니아어나 세르비아어로 대화를 나눈다. 봄이면 루마니아의 전통적 부활절 양고기 요리를 만들어 판다.
조넬이 어려서 배운 기술이 최근 들어 상당히 인기 있는 상품이 되었다. 그래서 그는 이 기술들을 새롭게 응용한다. 치즈버거 소시지도 만들고 헤이즐넛 살라미도 만든다.
차이나타운의 90년 된 딤섬 식당인 놈와 티 팔러도 비슷한 변화를 겪고 있다. 지난해 삼촌으로부터 경영을 물려받은 새 주인 윌슨 탱 역시 균형감각을 유지하면서 부분적 현대화를 시도하고 있다. 예를 들어 아몬드 쿠키나 에그롤 같은 옛날 메뉴를 유지하면서 보다 현대적 딤섬 요리들을 추가하는 식으로 메뉴를 개선했다. 32세의 윌슨은 “나는 전형적인 2세대 아시안 아메리칸’이라고 말한다. 부모의 바람대로 공부 열심히 해 월스트릿에 진출했지만 결국은 식당으로 돌아왔다.
사회학자인 리사 선희 박 박사는 한인과 중국계 자영업자들의 자녀들을 인터뷰해 2005년 책을 발간했다. 식당 등 비즈니스를 한 부모들의 이야기를 하면서 그들 중 상당수가 부끄러워했다. 자녀들은 그런 천한 직업들로부터 가능한 한 멀어지려고 애를 쓰며 살아왔다.
그런데 최근 특히 식품업계에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식당업과 음식 문화가 전문화되어 가고 있다. 전에는 없던 지위 같은 것, 신분상승효과 같은 느낌이 있다”고 박 박사는 말한다.
시카고의 켈리 챙(33)은 법대에 재학 중 자기 부모의 작은 식당이 음식 사이트에서 상당히 인기라는 사실을 알고 놀랐다.. 그래서 켈리는 그 사이트의 단골들과 친구가 되고 결국 법대를 중퇴한 후 형제들과 힘을 합쳐 식당 운영에 나섰다. 그의 부모가 1987년부터 운영해온 식당이었다.
2년 전 켈리는 식당을 부근의 보다 멋진 공간으로 옮겼다. 이제 식당에는 보다 다양한 손님들과 함께 수십년 된 옛날 손님들도 여전히 찾아오고 있다. 1970년대 이민온 그의 아버지 에릭 챙은 요즘도 거의 매일 식당에 와서 주방을 둘러보고 뭔가 잘못되면 지적을 하기도 하고 소리를 지르기도 한다.
그렇게 큰 소리 나고 기름 연기 자욱하고 지저분한 테이블에 하루 종일 일을 해야 하는 고된 노동에서 자녀들은 멀어지기를 바라는 게 1세 부모들의 마음인데 그 자녀들은 오히려 다시 돌아오고 있다.
<뉴욕 타임스 - 본사 특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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