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의 손녀가 매년 수백만 달러에 이르는 할아버지의 유산을 한 푼도 물려받지 못한 채 상속권을 놓고 소송을 벌이다 가난 속에 쓸쓸히 사망한 것으로 뒤늦게 알려졌다.
20일(현지시각) 뉴욕타임스와 ABC 방송 등 외신에 따르면 아인슈타인의 장남 한스 알베르트의 양녀 이블린이 지난 13일 캘리포니아주 올버니 자택에서 70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이블린은 말년에 할아버지가 가족들에게 한 푼도 남기지 않았다고 공개적으로 불만을 토로하면서 자신이 ‘넝마주이’ 노숙자로 살기도 했다고 자조했다.
아인슈타인은 서류 7만5천건과 그밖에 자신의 물품을 예루살렘 히브리대학에 남기고 1955년 세상을 떠났다.
작년 포브스 보도에 따르면 아인슈타인의 얼굴과 이름, 지적재산 등으로 벌어들이는 돈은 연간 1천만 달러로 추산된다. 유고 후 이보다 더 많은 돈을 버는 명사는 마이클 잭슨 등 전 세계적으로 7명에 불과하다.
하지만 모든 수익은 법적으로 히브리대학에 귀속된다.
아인슈타인은 생전에 아들들과 관계가 좋지 못했다.
이블린의 아버지 한스 알베르트는 아인슈타인이 스위스에서 대학시절에 만난 첫 부인 밀레바 마리치와 사이에 태어난 장남이다.
아인슈타인은 1919년 마리치와 이혼하고 사촌 엘자와 재혼한 뒤 1933년 미국 이민 길에 올랐다.
프린스턴역사학회 큐레이터인 에일린 K. 모랄레스는 "당시 이미 저명한 과학자가 된 아인슈타인은 아들들의 결혼에도 불참하는 등 가족과 거리를 두고, 관심을 갖지도 않았다"고 말했다.
한스 알베르트는 나중에 캘리포니아로 이주해 그곳에서 이블린을 길렀다.
이블린은 5개국어를 구사하고 버클리에서 중세문학을 전공한 재원이었지만 여러 직업을 전전하며 순탄치 않은 삶을 살았다.
그는 전설 속의 원인 ‘빅풋’ 연구에 헌신했던 괴짜 교수 그로버 크란츠와 13년간 결혼생활을 유지했으나 이혼 후 삶이 극도로 궁핍해져 노숙자 생활을 하며 쓰레기통을 뒤지기도 했다.
이블린은 지난해 유산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기 위해 히브리대학과 소송을 시작했다.
당시 CNN 방송에 출연한 이블린은 "너무 화가 난다"며 "히브리대학 측이 믿기 어려우리만치 가족들에게 지독하게 대했다"고 말했다.
이블린은 사망 직전까지 회고록을 집필 중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2000년 마이클 패터니티가 쓴 아인슈타인 관련 서적에서 이블린은 "아인슈타인의 가족으로 사는 것은 쉽지 않다"며 "버클리에 다닐 때 내 곁에 있던 남자들이 나를 좋아한 것인지 아니면 내 이름 때문에 그랬는지 모르겠다"고 고백했다.
(서울=연합뉴스) 하채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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