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본예산 의결될 때까지 준예산 자동편성
미국, 의회의 예산 의결없는 한 정부기능 `스톱’
"의회에서 여야간에 합의가 이뤄지지 않는다고 정부 기능이 정지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미국에서 의회의 예산안 협상이 계속 결렬되면서 연방정부 폐쇄의 위기가 고조되는 것을 두고 최근 이같이 논평했다.
의회가 예산안을 제때 의결하지 않는다고 정부가 폐쇄되는 사태가 발생할 수 있는 곳은 주요 선진국 가운데서는 미국이 유일하다.
한국의 국회도 법정시한내에 예산안을 처리하지 못해 의원들이 몸싸움까지 해가며 늑장 처리하는 것이 다반사지만 예산의 지연처리 때문에 정부가 폐쇄되지는 않는다.
한국의 경우 정부가 제출한 예산안을 회계연도 개시 30일 이전까지 국회가 의결해야 하며, 새 회계연도가 개시될 때까지 예산안이 의결되지 않으면 자동으로 준예산을 집행할 수 있다.
준예산은 본예산이 의결될 때까지 정부가 전(前) 회계연도의 예산에 준해 집행하는 잠정예산이다. 다만 준예산은 정부기관 시설의 유지.운영비, 법률에 의거한 지출의무 이행을 위한 경비, 이미 승인된 사업에 투입되는 계속사업 예산 등에 한해 지출 가능하다.
한국과 달리 미국에는 새 회계연도가 개시될 때까지 예산안이 처리되지 않으면 자동으로 준예산을 집행하도록 하는 제도가 없다.
이 때문에 예산안이 제때 통과되지 않으면 연방정부가 폐쇄될 수 있다.
다만 정부폐쇄 사태를 막기 위해 의회가 특정기간에 한해서만 운용되는 잠정예산 집행 법안을 처리해 본예산 통과 때까지 정부 기능이 유지될 수 있도록 한다.
이번에 쟁점이 된 2011회계연도는 작년 10월에 시작돼 올해 9월말로 끝난다.
이미 미국의 2011회계연도가 절반이나 지났지만 여태까지 예산안이 의회를 통과하지 못해 잠정예산에 의존해 정부가 겨우 연명해온 것이다.
의회는 예산안 법안을 처리하지 못한 채 2011회계연도가 시작되는 상황이 닥치자 서둘러 잠정예산을 통과시켰으며 지금까지 총 6차에 걸쳐 잠정예산 법안을 의결했다.
1∼4차 잠정예산법은 전 회계연도 예산에 준해 같은 규모로 예산이 집행되도록 했으나 올해 3월초 2주짜리 잠정예산(5차)을 통과시킬 때는 지출규모를 40억달러 삭감하고, 3월 중순 처리된 3주짜리 잠정예산(6차)에는 60억달러를 삭감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6차 잠정예산은 이달 8일 자정까지만 운용되도록 규정돼 있어 그 이전에 예산안이 처리되지 않고 별도의 잠정예산안도 통과되지 않으면 연방정부가 폐쇄되는 상황으로 이어질 수 있었다.
이처럼 본예산이건 잠정예산이건 의회의 예산의결이 없으면 정부폐쇄로 이어지는 것은, 납세자인 국민을 대표한 의회가 예산안을 통과시키지 않는 한 정부가 세금을 함부로 건드릴 수 없다는 원칙에 바탕을 두고 있다.
국민의 대의기관인 의회의 승인이 없는 상태에서 행정부가 자동적으로 이전 회계연도 예산과 같은 규모의 준예산을 편성해 임의로 국민의 세금을 쓰는 것을 용인할 수 없다는 인식이 예산시스템을 지배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렇다면, 1995년 이후 15년간 별 탈이 없다가 2011회계연도 예산안을 놓고 미 의회가 제때 의결을 못하고 정부폐쇄의 위기감을 한껏 고조시키는 볼썽사나운 모습을 연출한 것은 왜일까.
이는 예산승인의 주도권을 행사하는 하원의 다수당 지위가 작년 11월 중간선거의 결과로 민주당에서 공화당으로 넘어가면서 정치지형도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종전까지는 상.하원의 다수당이 동일했거나, 대통령의 당적과 하원 다수당이 동일해 예산처리에 별 문제가 없었다. 야당이 아무리 반발해도 상.하원의 여당이 동일정당이면 적당한 줄다리기 끝에 다수결 원칙에 따라 예산안을 표결처리할 수 있었다.
그러나 `작은 정부, 대폭적인 재정지출 삭감’을 표방하는 극우 성향인 티파티 계열의 인물들이 중간선거를 통해 하원에 대거 진출, 이번 예산안 협상에서 민주당과 오바마 대통령을 상대로 "선거에서 표출된 유권자들의 메시지를 수용하라"며 대대적인 예산삭감을 요구하는 바람에 결국 정부폐쇄 직전의 위기 상황으로까지 몰린 것이다.
오바마와 민주당으로서도 여기서 밀리면 국정 주도권을 상실하고 내년 선거때까지 수세에 몰릴 수 있다는 위기감에 휩싸여 타협이 쉽지 않았던 것으로 여겨진다.
(워싱턴=연합뉴스) 박상현 특파원
shpar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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