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주 동포사회에서 민주평통은 ‘계륵(鷄肋)’ 같은 존재였다. 군사독재 정권이 낳은 사생아란 비판이 떠나질 않았다. 동포사회를 분열시키는 불필요한 관변단체라는 지적도 많다. 그 비판에 수긍하면서도 대통령이 위촉하는 자문위원이란 타이틀은 거부하기 힘든 유혹이었다. 2년에 한번 청와대를 방문, 대통령과 사진을 찍는 ‘광영’도 뱉기 힘든 당의정 같은 것이다.
그래서 새로운 평통 인선을 앞두고 보이지 않은 신경전과 경쟁이 이어졌다. 잡음이 따르는 것은 당연했다.
논란과 잡음의 대종(大宗)은 인선을 둘러싼 것이었다. 한인회나 단체마다 자기 사람을 더 넣기 위해 힘겨루기에 들어갔다. 유력자들의 공관에 대한 협박도 있었다. 원칙이 지켜지지 않다보니 사기나 중범죄 경력을 지닌 인사도 위촉되고 동포사회에서 손가락질 받는 자질 없는 인사도 들어갔다.
특히 회장 인선은 복마전이나 다름없었다. 청와대와 권력기관에의 투서가 난무하고 금품수수설 등 갖가지 의혹이 뒤따랐다. 회장 내정 인사에 대한 집단적인 비토도 있었다.
민주평통 김병일 사무처장은 ‘뉴 평통’이란 캐치프레이즈를 내걸었다. 올해로 평통 창립 30주년을 맞아 대대적인 변화를 꾀한다는 것이다. 그 골자 중의 하나가 15기 구성과 운영의 혁신이다. 그간의 얼룩진 평통을 지켜본 동포사회의 기대가 클 수밖에 없다. 그러나 김 사무처장이 내건 야심찬 ‘뉴 평통’ 플랜이 계획대로 실행되려면 몇 가지 선결과제가 있다.
첫째는 공정한 인선이다. 무자격자를 배제하고 민족의 평화통일에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인사들을 중심으로 구성해야 한다. 특히 회장 인선에서 평통 사무처가 이번에는 금품수수설, 로비설에 휩싸이지 않길 바라는 마음뿐이다.
둘째는 한인회장들의 자문위원 겸직을 금지시켜야 한다. 한인회장은 동포사회 자치조직의 대표들이다. 한국 정부가 위촉하는 자문위원 직함은 한인회장과 한인사회의 자율성을 정부에 예속시킨다. 또 한인회장이 평통 회장의 지휘를 받는 지위에 있는 것도 볼 성 사나운 일이다. 만일 겸직 조항 신설이 어려우면 한인회장들 스스로의 자존과 동포사회를 위해 그만 둬야 한다.
셋째는 정치적 중립을 지향해야 한다. 평통은 스스로 “당파를 초월한” 기구임을 천명하고 있다. 그러나 정치권력이 바뀔 때마다 그 존재의 이유가 흔들려 왔다. 보수세력이 집권하면 반북 노선에 동원되고 진보세력이 정권을 잡으면 ‘통일사업’의 전위에 서야 했다.
특히 내년부터는 재외국민 참정권 시대가 열리는 만큼 정치적 오해를 받는 일이 없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 평통이 정치적 중립을 대내외적으로 선언하는 것도 한 방법이 되겠다. 평통이 본분을 잊으면 정권의 나팔수란 오명을 다시 뒤집어쓰게 된다. 또 자문위원들이 한국 정치권과 관련돼 설립되는 조직에 관여하는 일도 없어야 할 것이다.
30년 역사의 민주평통은 ‘불우한’ 출발에도 불구하고 대통령 자문기구로서 그 위상과 역할을 확대시켜 왔다. 앞으로 평통이 세간의 매운 눈초리를 극복하고 바로 서려면 결국 본연의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 ‘대통령의 통일정책에 관한 자문 건의’라는 그 설립목적에 ‘뉴 평통’의 길이 있다. <이종국 기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