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 민주화 시위가 열흘째로 접어든 가운데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을 지지하는 시위대가 3일부터 외국 언론사와 취재진을 공격하는 등 노골적인 적대감을 표출하고 있다.
이는 서구 방송사 등 외국 언론매체들이 현 정권에 대해 지나치게 비판적인 보도를 하고 있다는 피해 의식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무바라크의 완전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대와 무바라크를 지지하는 시위대가 밤새도록 유혈 충돌한 카이로 도심 타흐리르 광장은 3일 곳곳에서 돌과 화염병이 나뒹굴어 폐허를 방불케 했다.
여전히 양측 시위대가 대치한 가운데 이를 취재하려는 외국 기자들에 대해 친무바라크 시위대들은 거침없는 반감을 쏟아냈다.
연합뉴스 특파원 2명은 이날 낮 광장 근처에서 취재하던 중 청년 10여 명에게 둘러싸여 봉변을 겪었다.
친무바라크 시위대로 보이는 이들은 다짜고짜 카메라, 캠코더를 빼앗고, 주먹으로 때리고 양팔을 낀 채 어디론가 끌고 갔다.
시위대에게 `외국 기자’라는 항변과 `우리는 이집트인들의 친구’라는 말은 전혀 통하지 않았고 `영어를 모른다(No Einglish)’는 답변만 돌아왔다.
이들의 선동 소리를 듣자 주위로 시위대가 더욱 몰려들었고 카이로 주재 특파원임을 보여주는 신분증은 전혀 소용이 없었다.
흥분한 이들은 주머니를 뒤져 휴대전화와 여권, 지갑까지 빼앗으려 했다.
양팔을 붙잡힌 채 무작정 50여m를 끌려가던 기자들은 경계를 서고 있던 총을 든 군인들에게 `우린 대한민국 기자다’라고 말한 뒤 도움을 요청했다.
군인 3명이 다가와 몸수색을 한 뒤 시위대와 한동안 언쟁을 벌이는 듯하더니 시위대로부터 카메라를 건네받아 넘겨줬고 청년들은 엉거주춤 뒤로 물러났다.
중무장한 군인 1명에게 안전한 곳까지 동행해 달라고 요청해 무사히 현장을 빠져나왔다.
또 다른 한국 방송사 기자도 이날 낮 시내로 들어가려다 카메라를 빼앗겼다가 되돌려받았고 한 기자는 휴대전화를 빼앗긴 것으로 전해졌다.
친무라바크 시위대는 또 카이로의 호텔에 난입해 외국기자를 색출하는 것으로 알 아라비야 TV가 보도했다.
이와 관련, 서방 기자로 보이는 2명이 이날 람세스 힐튼 호텔 부근에서 카메라를 빼앗긴 채 지프에 실려 어디론가 끌려가는 모습이 목격됐다.
전날 sbs의 현지인 카메라 기자도 프레스센터에서 영상을 송출하고 나오다가 친무바라크 시위대에 둘러싸여 "왜 반정부 시위대만 보도하고 친정부 시위대는 자세히 보도하지 않느냐’는 항의와 함께 구타를 당했다.
그리스의 한 기자는 이날 시위대로부터 흉기로 다리를 찔려 병원으로 옮겨졌고 다른 그리스 사진기자 경우 타흐리르 광장 부근 거리에서 길을 막은 일단의 남자들에게 얼굴을 맞았다.
전날에도 CNN의 유명 앵커 앤더슨 쿠퍼와 취재진은 무바라크의 지지자로부터 폭행을 당했고 AP통신 기자 2명도 군중한테서 주먹질을 당했다.
벨기에 유력 일간지의 기자 1명이 이집트 반체제 지도자 모하메드 엘바라데이에 우호적인 기사를 썼다는 이유로 끌려가는 등 군인에게 억류된 기자만 8명에 이른다고 AP통신은 전했다.
통신은 이들 기자가 타흐리르 광장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총리 집무실 인근에서 연행됐다고 설명했다.
세계 각지에서 몰려온 기자들이 투숙 중인 람세스 힐튼 호텔과 세미라미스 인터콘티넨탈 호텔은 친무바라크 시위대가 보도내용에 항의하며 호텔 진입을 시도하기도 했고 철제문을 설치해 출입자를 철저히 통제하고 있다.
현지 언론인들 사이에는 언론의 보도에 불만이 있는 무바라크 정부가 비공식적으로 외국 기자들을 상대로 체포령을 내렸다는 소문도 들려오고 있다.
아랍권 위성 방송인 알 아라비야는 이날 긴급 뉴스를 통해 군인들에게 사무실과 기자들을 보호해줄 것을 호소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AP는, 이집트군이 친정부 시위대의 공격을 받는 외국기자들을 강제 연행하기 시작했는데 이들을 보호하려는 조치일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지적했다.
한편, 미국 정부는 이집트 사태를 보도하는 외국기자들에게 위협을 가해 취재를 방해하기 위한 ‘조직적 조치’가 가해지고 있다고 비난했다.
필립 크롤리 국무부 대변인은 최근 기자들에 대한 공격과 관련해 두 번째로 내놓은 성명을 통해 이런 행태를 거듭 성토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이탈리아 총리, 호세 루이스 로드리게스 사파테로 스페인 총리 등도 이날 공동성명에서 무바라크 지지자들에 의한 언론인 구타에 대해 "전혀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라고 비난했다.
(카이로=연합뉴스) 이성한 고웅석 특파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