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인생들은 거의 유사하게 이어지는 것 같다.
돈이 얼마나 많았는지는 알 지 못하지만, 세계적인 부호로서 그 이름을 남긴 록펠러도 영원한 삶을 누리지 못하고 결국은 죽었으니까.
나는 엄마 모습과 거의 국화빵으로 닮았다.
그런데, 울 아버지와는 한 군데도 닮은 곳이 없다. 정말...?
아버지를 묘사하는데 이런 단어를 써도 괜찮을까 조심스럽지만, 하여간 아버지가 젊음의 극치이던 시절에는, 그 때가 일제 시대였는데, 야리야리한 일본 여학생에게 뜨거운 눈총을 받는 것은 예사였단다. 본 사람이 없으니, 믿거나 말거나의 일이지만 말이다.
출중한 외모를 지니신 아버지는 지극히 평범한 외양을 지닌 여인이었던 엄마와 결혼을 하셨다. 그래놓고는 술만 자시면 아버지 당신의 인기도가 증명 안 된다고 곧잘 안달을 하셨다. 그런데 세월은 남보다 조금 나은 외모를 없어서는 안 될 긍지인 양으로 지니고 사시는 분을 결국 한 사람도 살지 못하는 곳으로 데리고 가버렸다. 하면 지금 나는 돌아가신 아버지가 못내 그리워 회한에 잠긴 것인가? 당연히 아니다.
나도 한 때는 ‘없어서 못 먹었지, 먹는 것을 선호하지 않아서 안 먹지는 않았는데’라는 생각이 돌연 드는 탓으로 아버지가 떠오른 거다. 우리는 거의 하류 경제층이었는데, 아버지는 절대로 그 음식이 밥상에 두 번 올라오면 젓가락 그림자조차 그 반찬 근처에 가까이하지 않았다.
내 생활 모토는 소크라베이컨의 말대로 ‘너 자신을 아는 것이 힘’이다. 어느 누구의 말대로 ‘가난은 창피한 게 아니고, 단지 불편한 것’으로 여기며 당당하게 지금껏 버티어 왔다.
연말이라 각 집에서 파티를 많이 해서 그런가, 음식이 많이 생겼다. 그런데 ‘젠장할’ 소리가 절로 나온다. 냉장고에 재워 놓은 음식이 조금도 줄지 않는 까닭에서이다. 그 음식(음식이라고 할 것도 없는 빵, 과자 등등)을 부담스럽게 바라보다가, 내 얼굴에 뭔가를 발견했을 때의 미소가 피어났다.
응, 이거야, 아버지랑 내가 닮은 것을 찾아냈어. 까탈스러운 식성이 닮았어! 늦장가를 들어서 얻은 아이가 자신과 조금도 닮지 않은 것에 슬퍼하다가 종래에 가서는 발가락이라도 닮은 거로 생각하며 위안을 얻은 것처럼, 아버지랑 닮은 것이 내게도 있음에 심마니가 산삼을 발견한 순간처럼 환희가 여겨질 ‘심봤다’를 외쳐 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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