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대표적인 인종폭동은 1965년의 왓츠폭동과 1992년의 4.29 LA폭동이다. 왓츠폭동은 경찰관이 취중 운전하는 흑인을 그의 집 앞에서 체포하려하자 동네 사람들이 몰려나와 경찰관에게 돌멩이를 던진 것이 시발점이다. 그리고 한인들이 피해 입은 4.29폭동은 뺑소니 운전을 한 흑인(로드니 킹)을 경찰관 4명이 집단 폭행해 입건되었으나 4명 전원이 재판에서 무죄로 풀려나자 분개한 흑인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난동을 일으킨 사건이다.
이 두 폭동 모두 흑인과 백인경찰의 사소한 마찰에서 비롯된 것이 공통점이다. 흑인과 백인경찰이 부딪치면 다른 인종관계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이상한 삐뚤어진 현상이 일어난다. 우선 백인경찰은 흑인을 모욕적인 자세로 다룬다. 한편 흑인은 백인경찰에게 은근히 비아냥거리며 약을 올린다. 시작에서부터 양쪽이 모두 감정적으로 긴장해 있고 상대방 불신으로 일관되어 있다. 왜 그럴까. 미국의 흑인과 백인은 서로 피해망상증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다.
최근 하버드대의 흑인교수(헨리 게이츠)를 집에서 수갑 채워 연행한 백인 경찰관(크롤리)의 행동을 둘러싸고 오바마 대통령이 “어리석은 경찰의 처사”라고 언급하자 이 문제는 갑자기 흑백논쟁으로 치달아 미디어의 초점으로 등장했다. 급기야는 오바마가 자신의 어휘가 너무 강했다며 사과성 발언을 하게 되었고 흑인교수와 백인 경찰관을 백악관으로 초청, 맥주나 한잔 하면서 오해를 풀자는 제의를 하기에 이르렀다.
이 사건은 다분히 지뢰의 뇌관적인 요소를 지니고 있었다. 왜냐하면 예일대학을 졸업하고 하버드대 교수로 있는 게이츠 교수는 흑인사회가 자랑하는 석학이며 존경받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또 PBS-TV의 ‘아프리칸 아메리칸이 걸어온 길’이라는 특별프로 진행자이기도 해 그를 구속했더라면 경찰이 흑인 커뮤니티의 분노를 자아내는 소동을 빚었을 것이다.
게이츠 교수가 잘못한 것이 무엇인가. 없다. 자기 집 문이 안 열려 어깨로 밀고 들어가자 이웃이 수상하게 여겨 경찰에 신고한 것이 사건의 시작이다. 게이츠는 자신의 하버드대 교수 신분증을 보였는데도 경찰이 주거 확인 운운하며 운전면허증을 요구하자 화가 나 “당신 경찰 배지 번호가 뭐지?”라고 퉁명스러운 어조로 물은 것이 백인 경찰관의 심기를 건드린 것 같다. 이에 백인경관이 게이츠 교수를 소란죄로 집에서 수갑을 채워 연행한 것이다.
게이츠 교수가 경찰관에게 고분고분 하지 않고 약 올린 것도 오버액션이고, 하버드대 교수 신분증을 보였는데도 소란 피운다며 수갑 채운 백인 경찰관도 오버액션이다. 게다가 전국으로 생방송되는 기자회견에서 “어리석은 경찰의 처사”라는 극한적 표현을 한 오바마 대통령도 오버액션을 보였다. 이 발언 때문에 오바마는 회견의 주제인 보험개혁안의 초점이 흐려지는 실수를 범해 경험부족 대통령의 일면을 드러냈다.
오바마는 젊은 시절 백화점에 쇼핑가면 시큐리티 가드가 자기 뒤를 쫓아다니고 파킹장에서 차를 기다리는 자신에게 백인부부가 자동차 열쇠를 던지며 주차요원으로 취급하는 모욕을 당한 적이 있다는 것을 자서전에서 언급한 적이 있다. 대통령인 그가 흑인과 백인경찰 마찰에 흥분한 것도 자신이 겪은 뼈아픈 경험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지금이 어느 때인가. 흑인이 미국의 대통령이 된 ‘블랙 리더십’의 시대다. 흑인 대통령이 노골적으로 흑인 편을 들면 백인사회가 이성을 잃고 분노하고 이는 흑백문제로 비화된다. 오바마가 재선을 꿈꾼다면 흑백문제에 대해 앞으로 신중히 발언해야 한다. 그가 백악관 맥주모임을 재빨리 주선한 것은 감을 잡았다는 증거다.
이철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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