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쇄라는 말은 200번째 인쇄했다는 뜻이다. 조정래의 장편 대하소설(전10권) ‘태백산맥’이 지난 3월 200쇄를 돌파했다. 장편으로는 한국문단의 기록이다. 소설내용은 국군 제14연대의 여순 반란에서부터 휴전협정까지 5년 동안 전남 벌교일대에서 일어난 좌우의 극렬한 대립을 다룬 스토리며 빨치산의 활동이 자세히 묘사되어 있다.
이 소설을 읽으면 왜 빨치산에 전남 출신들이 많았는지를 이해하게 된다. 빨치산과 토벌대의 전투가 가장 치열했던 곳이고 밤에는 빨치산, 낮에는 경찰이 지배하는 지리산 상황의 심벌이었다. 당시 벌교는 인구의 80퍼센트가 농민이고 그중 90퍼센트가 소작농이었다. 이들은 8.15 해방이 되자 농지개혁을 목이 빠져라 기다렸으나 개혁은커녕 친일하던 지주들이 다시 세력을 잡고 땅을 둘러싸고 농간을 부리자 마침내 그 좌절이 분노로 폭발하게 된다. 여기에다 북한에서는 김일성이 농민들에게 땅을 나누어주는 개혁을 했다는 말에 좌익사상에 동조하게 된다.
소설 ‘태백산맥’은 터부시 되어온 이 과정을 역사배경으로 깔고 개인의 집안 내역을 접목시켰기 때문에 리얼하게 느껴진다. 작가 조정래는 호남의 좌우대립이 단순한 이데올로기 대립이 아니라 착취제도를 둘러싼 지주와 소작인의 갈등에서 파생된 필연적인 현상으로 해석한다.
얼마 전 전남 벌교에 ‘조정래의 태백산맥 문학관’이 세워졌다. 소설의 무대를 이루고 있는 벌교가 어떻게 생겼나 궁금하기도 해서 현지에 가봤다. ‘태백산맥 문학관’ 바로 앞에 지주 ‘현부자’네 집과 무당 소희의 방이 있었다. 벌교 거리에는 ‘경축, 조정래의 태백산맥 200쇄 출간 700만부 판매’의 플래카드가 걸려 있었다. 소설 ‘태백산맥’ 때문에 벌교가 관광지로 변해 버리고 벌교 꼬막이 별미로 떠오른 것이다.
‘태백산맥’은 반공이념 때문에 숨겨져 있던 굴절된 역사를 시대를 복원시켜 재생시켜 놓은 작품이다. 젊은이들과 좌파의 우상으로 떠오른 작가 조정래의 6.25에 대한 해석이 사회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 소설은 인민군이 북으로 후퇴하면서 종교인, 지식인, 군인경찰 가족을 대량 학살한 사실을 그려내지 못한 것이 한계상황이다. 거창 사건등 국군의 잔인상만 묘사했다. 양비론으로 보아도 불공평하게 사실을 다룬 면이 있다.
6.25는 기념할만한 날이 아니다. 우리 민족에게 가장 큰 마음의 상처를 남겼으며 이산가족 등 아직도 그 상처에 신음하는 사람들이 있다. 6.25를 맞아 우리가 다시 생각해야 할 일은 이 전쟁으로 인한 고통의 실체가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그것은 6.25가 사회에 증오현상을 심어 놓았다는 사실이다.
동서독인들 사이에는 그런 증오가 없다. 그러나 한국의 좌우는 증오가 심한 것이 특징이다. 왜 그럴까. 좌우가 수없이 사람을 죽였기 때문이다. 이념의 문제가 아니라 한이 서려있다. 증오에도 도수가 있다. 한국의 좌우는 이데올로기의 대립만이 아닌 증오관계가 얽혀있다.
그런데 소설 ‘태백산맥’은 빈민층에 너무 초점을 맞춘 나머지 가진 사람에 대한 증오심을 사회에 심어 놓았다는데 문제가 있다. ‘태백산맥’에 심취한 젊은이들과 노조가 오늘날 거리에 뛰쳐나와 보여주는 행동을 보라. 그것은 주장이 아니라 증오 표현이다. 모든 것을 좋고 나쁜 것으로 이분화 하여 표현한다. 우리 편 아니면 적이다. 역사를 다시 돌아보는 것은 과거가 미래의 거울이기 때문이다. 증오현상은 6.25가 남긴 굴레다. 59년이 지나도록 이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오늘의 현실에 대해 뼈아픈 반성이 있어야겠다.
이철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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