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A 비밀해제 문서들에서 드러나
중국은 1984년에 들어 뒤늦게 ‘후계자’ 지위 인정.
구 소련은 1986년까지도 인정하지 않아
중국과 구 소련이 북한의 김일성·김정일 부자 세습 승계 구도를 애당초 달갑지 않게 여겼으며 심지어는 이 문제로 인해 북한과의 마찰이 빚어지기까지 했던 사실이 미 중앙정보국(CIA) 비밀해제 문서들에서 드러났다. 김일성 주석이 1994년 7월 사망하자 권력을 승계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김 주석 사망 20년전인 1974년 중앙당 정치위원회 위원이 되면서 ‘지도자동지’, ‘당중앙’이라는 호칭을 얻어 이미 후계자로서의 기반을 다졌고 1980년 제6차 노동당대회에서 중앙위원회 위원, 정치국 상무위원, 비서국 비서, 군사위원회 위원으로 선출되면서 ‘친애하는 지도자 동지’로서 공식적인 제2인자의 위치를 굳혔다.
그러나 비밀해제 된 CIA 기록들에 따르면 김정일의 이 같은 장기간 세습 준비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그의 후계 과정에 ‘유보’(reservation)된 입장을 지켜오다 다가오는 북한 정권 교체 대비, ‘구 소련과의 평양에 대한 영향력 경쟁’ 등 중국의 국익을 고려해 결국 뒤늦게 마지못해 김정일을 후계자로 받아들였다. CIA의 1982년 11월26일자 첩보 보고서는 “미-중 관계(개선으)로 인해 소련이 이득을 보는 여러 문제들과 모순이 최근 생겨나고 있다. 이는 중국과 북한과의 사이에서 발생하는 다소의 중대한 모순에서 나타났다”며 그 중 하나를 “김일성 주석의 후계자로 아들 김정일이 선정된 것에 대해 중국이 의욕을 보여주기를 꺼려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이 첩보 보고서는 앞서 CIA가 같은 해 8월11일 작성한 ‘중-북 관계 향상’ 보고서에서 “베이징은 김일성으로부터 김정일에게의 지도권 양도 과정이 매우 진전했으나 아직은 상당한 불안정성이 따르고 있다고 여기고 있을 수 있다”고 분석한 내용을 뒷받침 하고 있다.
CIA는 ‘중-북 관계 향상’ 보고서에서 “베이징은 그(김일성촵김정일 세습) 과정에 대해 과거에 유보된 입장을 가져왔음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평양과의 관계에 더 투자(관심)를 하는 것이 후계 지도자에 대한 자본(영향력)을 쌓아 어쩌면 북한이 베트남과 같이 미래에 적대적으로 변할 확률을 간접적으로 최소화하기를 기대하고 있을 수 있다”며 “그 점에 있어서 북한 외교부장은 지난 7월 중-북 상호원조협정을 기념하기위한 중국대사의 리셉션에서 처음으로 외교관계 정황에서 김정일의 이름을 언급했다”고 밝혔다. 또 CIA의 1984년 4월5일자 ‘변하는 중-소 관계’ 보고서는 “베이징의 미국과의 좋은 관계 유지 중요성은 어느 정도 차원에서 베이징의 평양과의 가까운 관계 유지 중요성과 상충된다.
지리적 위치 때문에 북한은 중국에게 항상 매우 중요했고 베이징은 지난 2년간 북한과의 관계 강화와 평양에 대해 소련보다 한 단계 위인 중국의 영향력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 활발한 이니셔티브를 취해 왔다”며 “중국은 다가올 김일성의 정치 승계를 예상해 실제로 마지못해 그의 아들 김정일의 후계자 지명 특별 지위를 인정했다”고 분석했다. 이는 김정일이 북한에서 1980년 10월10일 후계자 지위를 공식적으로 굳힌 뒤 무려 3년 반이 지난 후에야 중국이 자국 국익을 신중히 저울질 한 끝에 결국 그를 김일성의 후계자로 인정한 사실을 보여준다.이외에도 CIA의 1986년 10월15일자 ‘국가 정보 일지’ 보고서는 동아시아 섹션에서 “김일성 주석이 이달 말 소련을 방문한다. 1984년 5월 이후 첫 방문이다. 더 많은 경제와 안보 지원을 요구할 듯. 관계가 개선되고 있음. 모스코바는 아직도 그의 아들 김정일을 후계자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고 기록했다.
또 CIA의 1990년 5월1일자 ‘소련과 동아시아: 모스코바의 정책 재조정’ 보고서는 “주로 한반도내 청취자들을 향한 것으로 추정되는 한국어 (신문과 방송을) 포함한 소련 신문들과 라디오방송이 김일성과 그의 아들이자 후계자로 지명된 김정일을 둘러싼 개인숭배를 간접적으로 조롱했다”며 “소련은 젊은 김(김정일)을 후계자로 지명한 것에 대해 오랫동안 불안해왔고 이제는 그의 성과에 대한 우려를 표하고 있다”고 분석해 소련이 김정일의 세습 승계 구도에 중국보다 더 비판적이었음을 확인했다.
한편 CIA는 김일성이 사망하기 약 22년 전인 1972년 5월11일자 ‘2개의 코리아’ 보고서에서 “김일성은 비록 아직 60세이지만 건강 문제가 그를 현 무대에서 물러나게 할 수 있다. 그는 1969년에 심장병과 고혈압으로, 그 이전에는 신장병으로 입원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고 또 1967년과 1970년에는 심장마비를 앓았다”며 당시 김일성의 후계자 가능 후보로 동생 김영주와 서열 3위 김일을 꼽아 1967년 북한 노동당의 핵심 부서인 조직지도부 과장을 거쳐 1971년 부부장으로 승진한 김정일의 훗날 세습 승계에 대한 가능성을 포착하지 못했다.<신용일 기자> yishin@koreatimes.com
최근 북한의 핵 실험과 관련, 한국의 보수 단체들이 김정일(왼쪽)의 사진을 찢고 불태우고 있다. 사진 오른쪽은 최근 권력 세습이 유력시되고 있는 김정일의 아들 김정운의 모습.
■ 1980년 10월 6차 노동당대회 앞두고
미 국무부직원들 ‘김정일 직위’ 놓고 내기
미 국무부 직원들이 1980년 10월10일 열린 북한의 제6차 노동당대회를 앞두고 김일성 주석의 후계자로 양성돼온 김정일에게 과연 어떠한 직위가 주어질 것인가 놓고 결과 맞추기 내기를 한 것으로 드러났다.마치 스포츠 경기 결과를 놓고 승패 비율을 정해 ‘배팅’을 하는 것과 같은 장난기 형태의 이 내기는 국무부 워싱턴 D.C. 본부가 1980년 9월27일 주한미대사관을 비롯한 모든 동시아 태평양 해외공관에 보낸 전보에서 확인됐다.
국무부가 비밀해제 시킨 이 전보는 “북한 노동당의 제6차 당대회가 10월10일 개최될 예정이다. 당대회는 대회 이전에 연 생산 목표를 달성하고 건설 프로젝트를 완성하기 위해 대회를 앞두고 쉬지 않고 진행돼온 ‘100일 전쟁’의 종결을 의미하기 때문에 북한인들에게는 상당한 즐거움을 가져다 줄 계기가 될 것이다”며 “가장 큰 추측을 불러일으킨 주제는 김일성의 아들 김정일의 세습 소문에 대한 의혹이다”고 전했다.
전보는 이어 “상반되는 보고들에 따르면 이 대회에서 김정일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로(2대1 안될 확률), ▲북한 노동당 총비서와 총리로(5대1 안될 확률), ▲부총리로(2대1 안될 확률), ▲무명으로 남아있을 것(1대1 확률)”이라며 “각자의 내기 선택을 오는 10일 이전에 동아시아 한국과에 걸도록” 통보했다.전보는 또 “이 대회가 북한의 정책과 인물들을 새롭게 간파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희망 한다”고 덧붙여 당시 국무부가 북한에 대한 그 어떠한 정보에도 상당한 중요성을 두고 있었으며 직원들 역시 북한 내부 소식과 전망에 대해 각별한 관심을 갖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실제로 김정일은 6차 노동당대회에서 중앙위원회 위원, 정치국 상무위원, 비서국 비서, 군사위원회 위원으로 선출되면서 공식적인 제2인자 위치를 굳혔고 이때부터 ‘친애하는 지도자 동지’로 호칭이 변경됐다.그는 그 후 1991년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 1993년 국방위원장에 선출돼 군권을 완전 장악했으며 1994년 7월 김일성이 사망하자 권력을 승계했다.또 북한 정권을 장악한 뒤 1997년에는 당 총비서가 됐으며 1998년 최고인민회의 10기 1차 회의에서 헌법 개정을 통해 주석제를 폐지하고 권한이 더욱 강화된 국방위원장에 재추대돼 24일 현재까지 그 직위를 계속 지키고 있다.
<신용일 기자> yishin@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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