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금고로 유명한 스위스 사람들은 뱅킹에선 비공개적인지 몰라도 다른 면에선 지극히 개방적이다. 특히 하이킹에서 그렇다. 최근 스위스의 알프스에서 누드로 하이킹하는 사람들이 늘어 논란이 되고 있다. 눈 쌓인 추운 겨울에도 등산화와 배낭, 자외선 차단제만을 ‘착용한’ 이들 누드 하이커들이 보수적인 지역 주민들의 반발을 사고 있기 때문이다. 작년 9월에는 한 청년이 등산화와 배낭을 제외하곤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채 산골마을을 배회하다 경찰에 붙잡히기도 했으나 스위스엔 누드로 등산하는 것을 금지하는 법이 없어 경찰은 그를 풀어줄 수밖에 없었다.
알프스를 누드로 오르는 하이커들이 늘고 있다. 보수적인 주변 마을에선 금지법을 추진 중이지만 법률전문가들은 누드금지는 위헌의 소지가 크다고 지적한다.
누드 하이커 중엔 스위스인 뿐 아니라 외국인들도 섞여있는데 대단히 보수적인 인근 지역에선 이곳 아펜젤이 누드 하이킹의 성지처럼 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이미 아펜젤이라는 이름은 누드 하이커들에 의해 온라인 블로그 등에 자주 올라오고 있다.
인구 5,600명의 작은 산골마을 아펜젤은 스위스의 다른 지역들이 여성에게 투표권을 부여한 뒤 수십년이 지난 1990년에서야 여성 투표권을 인정했을 정도로 보수적인 곳이다. 마을 관리들은 주민들이 아이들과 함께 하이킹하다 누드 하이커를 만나면 얼마나 당황하겠느냐고 불평했다.
그러나 스위스는 물론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미국의 산악지역을 누비며 30년째 누드 하이킹을 즐겨온 건축가 콘라트 헤펜스트릭(54)은 산에서 만난 사람 중에 당황해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면서 사람들이 자신을 반기면서 오히려 “춥지 않느냐”고 묻는다고 말했다. 함께 하이킹하는 여성은 누드가 아니었다. 그런데 왜 당신만 누드냐고 묻자 그는 “그저 자유 때문이다. 처음엔 정신적 자유, 다음엔 신체적 자유를 누리고 싶은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누드 하이킹을 법으로 금지하는 것이 헌법에 위배된다고 주장하는 법률 전문가들도 있지만 아펜젤 당국은 누드하이킹 금지법을 추진 중이다. 입법화되면 ‘관습과 품위를 거스르는 행위를 불법화’ 시킬 수 있게 된다.
그러나 법률전문가 다니엘 케팅거는 지난달 “발가벗은 사실 : 누드 하이킹 형사기소에 대하여”란 제목의 글을 통해 1991년 스위스는 공공장소에서의 누드를 금지한 법을 폐기시켰다고 지적하면서 “성적 의도 없는 단순한 누드는 더 이상 불법이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아펜젤 사법당국도 강경하다. 봄이 지나기 전에 위반자에게 170달러의 벌금을 부과하는 내용의 법안을 확정시킬 예정. 그러나 최종결정은 1년에 한번씩 주민전체가 모이는 주민총회의 투표결과에 달려있다. 금년 주민총회는 월26일 열릴 예정인데 결과는 예측하기 힘들다. 적지 않은 주민들이 유쾌한 조크로 생각, 별로 개의치 않기 때문이다. 지난달 타운 카니발 퍼레이드에선 남녀 누드 하이커를 태운 꽃차가 등장, 인기를 모았는데 물론 그들은 진짜 누드가 아닌 살색 타이즈를 입고 커다란 나뭇잎으로 주요부위를 가렸었다.
누드 하이킹 자체보다는 정부의 법적 대응에 대한 찬반이 더욱 신랄하다. 최근 옆 마을은 공공장소에서 침 뱉는 행위에 대해 50달러 벌금형을 부과키로 했는데 이번엔 누드 하이킹이냐며 “이젠 모든 사소한 행위에 법적 처벌을 들이댄다”고 한 주민은 불평했다.
<뉴욕타임스-본사특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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