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정보분야의 경험이 전무한 리언 파네타(70) 전 백악관 비서실장을 중앙정보국(CIA) 국장에 내정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의회와 CIA 내부의 반발 기류가 확산되고 있다.
파네타 내정자가 정보관련 부서에서 일해본 적이 전혀 없는데다 민주당 소속으로 9차례나 하원의원을 지내고 빌 클린턴 행정부에서 백악관 비서실장을 지낸 점 때문에 당파적인 성향에도 문제가 있다는 것이 주된 이유다.
오바마 당선인이 여론의 호평 속에 각료인선과 경제회복 프로그램을 속속 발표하면서 정권인수 작업은 순항하는 듯했으나, 빌 리처드슨 상무장관 내정자가 특정기업과의 유착 의혹으로 입각을 자진포기한데 이어 CIA 국장 내정자에 대한 인준 주체인 의회가 부정적 반응을 보이고 있어 취임을 목전에 둔 오바마로서는 예기치 않은 난관을 맞은 셈이다.
파네타 내정자에 대한 부정적 기류는 전.현직 CIA 관계자들 사이에서 형성되고 있다.
전직 CIA 간부였던 마이클 슈어러는 ABC방송과의 인터뷰에서 CIA의 많은 사람은 (파네타의 국장 내정에)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생각할 것이라고 일갈했다.
오사마 빈 라덴을 추적하는 CIA조직의 팀장을 맡았던 슈어러는 파네타 내정자에 대해 민주당이 CIA에 파견한 비밀 정보원이라고 비난하면서 관료로서 재능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CIA라는 특별한 업무에는 재능을 발휘할만한 이력이 없는 인물이라고 지적했다.
현직 CIA 간부들은 마이크 헤이든 현 국장과 새로 부임할 파네타 내정자를 의식해 공개적으로 의견을 밝히기를 꺼리고 있지만, 비전문가가 국장으로 부임하는데 대해서는 부정적인 반응을 나타내고 있다.
익명의 한 간부는 헤이든 국장이 부임한 후 CIA 직원들의 사기가 매우 높아졌지만, 의회와 행정부에 경도된 인물인 파네타 내정자가 국장으로 오면 직원들의 사기가 저하될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테러용의자들에 대한 신문방식과 고문, 관타나모 수용소의 운영 등을 둘러싸고 헤이든 국장이 외부에서 제기되는 비판여론에 대응해 CIA 내부의 입장을 적극 옹호한데 비해 파네타 내정자는 가혹한 심문 기법에 대해 공개적으로 반대의 목소리를 높여 왔기 때문에 CIA 내부에서는 달갑지 않은 인물로 여겨지는 형편이다.
CIA에서 대(對)테러 분야의 고위직을 역임했던 폴 필라는 ABC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은 파네타 내정자에 관해 이렇다할 견해가 없다고 밝히면서도 헤이든 현 국장이 유임되는 것이 더 나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테러용의자들에 대한 고문과 가혹한 심문방식 때문에 오바마측에서 헤이든 국장을 경질하고 가혹 신문방식에 따른 오명과는 전혀 무관한 외부 인사로 CIA국장을 인선해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된 것은 불행한 일이라고 말했다.
인준 청문회를 준비하고 있는 의회에서도 공화당은 부정적인 입장을 나타냈으며 일부 민주당 의원들조차도 차가운 반응이다.
새로 상원 정보위원회 위원장을 맡게 된 다이앤 파인스타인(민주.캘리포니아) 의원은 파네타의 CIA 국장 내정에 관해 사전 통보를 받은 게 전혀 없다면서 지금과 같은 시기에는 정부분야의 전문가에 의해 CIA가 운영되는 것이 최선이라는 게 나의 일관된 입장이라고 말해 파네타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나타냈다.
공화당의 크리스토퍼 본드(미주리) 의원도 워싱턴포스트와의 회견에서 9.11테러 이후 정보분야의 업무 경험이 CIA 국장직을 맡는데 필수요건이라면서 파네타 내정자의 전문성과 경험 부족을 문제삼았다.
종전까지 상원 정보위원장을 맡아온 제이 록펠러 의원도 파네타의 경험부족을 이유로 난색을 표시해 앞으로 인준 과정에 상당한 애로가 있을 것임을 예고했다.
그러나 존 도이치와 조지 테닛 등 CIA국장을 역임한 인사들은 파네타에 대해 매우 높게 평가하면서 인선 결과에 대해 만족감을 표시했다.
도이치 전 국장은 70년대 조지 H.W. 부시 국장이 하원의원과 중국주재 대사 등을 거쳐 외부인사로 CIA에 국장으로 부임했지만 그의 재임기간에 CIA의 위상이 높아지고 조직의 효율성이 증대된 점을 상기시키면서 외부 인사를 부정적으로만 볼 게 아니라는 입장을 나타냈다.
이런 가운데 조 바이든 부통령 당선인은 오바마 인수위팀이 파인스타인 정보위원장과 CIA 국장 인선에 관해 사전 협의를 하지 않은 것은 `실수’라고 지적했다.
바이든은 아직까지 의원신분을 갖고 있는 내 입장에서 볼 때 관계 의원들과 협의하는 게 바람직하다면서 (협의를 하지 않은 것은) 실수라고 본다고 말했다.
그러나 바이든은 인선절차상의 문제점을 일부 시인하면서도 파네타 내정자는 CIA 국장직에 완벽한 자격이 있는 인물이며, 파네타는 빼어나게 일을 해 낼 것이라고 적격논란을 진화하고 나섰다.
(워싱턴=연합뉴스)
박상현 특파원
shpar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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