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파리 여행은 백만 헥타가 넘는 크루거(Kruger)파크로 갈 생각을 처음 했습니다. 헌데 가본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어떤 때는 며칠씩 찾아 헤매도 동물의 꼬리도 구경 못하는 수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동물원처럼 여러 동물을 모아 놓고 사람들이 와서 구경하게 하는 것이 아니거든요. 한국같은 땅 덩어리에 동물들이 제멋대로 다니면서 자유롭게 살고 있으니 차를 몰고 다니다가 재수가 좋으면 동물 구경을 수도 없이 많이 할 것이고 어떤 때는 하나도 못 보는 수가 있겠지요. 이해가 가는 말이라 그럼 우리는 오히려 개인이 운영하는 캠프를 찾아 가자고 결정을 내렸습니다. 동물 구경을 할 찬스가 좀 더 많을 것 같았습니다. 개인이 운영하는
캠프도 큼지막한 도시의 크기이니 이만 저만 큰 게 아니지요.
모츠와리(Motzwari) 캠프로 가기 위하여 비행기를 한 번 갈아타야 했습니다. 말이 공항이지 시골의 버스 정류장만 했어요. 이게 공항 건물이야? 그런데 그 내부로 들어서서 저는 눈을 둥그렇게 떴습니다. 현대적인 감각과 아프리카 풍을 아주 멋들어지게 조화시킨 것이 너무나 마음에 들었습니다. 텐트 비슷하게 생긴 것을 가운데 두고 그 주위는 가죽으로 된 안락의자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색이 다른 원산지의 나무를 함께 이용하여 멋지게 만든 가구들이 몇 놓여 있었습니다. 저는 마치 그와 같은 풍의 집을 곧 짓기라도 하듯이 모든 것을 하나하나 유심히 쳐다보았습니다. 어느 나라 음식이던 잘 만들면 다 맛이 있듯이 어느 나라 건축 양식이던 그것도 잘 만들면 다 멋이 있다고(아쭈!) 확신을 얻었습니다.
모츠와리 캠프는 아프리카식의 여러 방갈로를 현대 생활에 어울리게 지어 놓았습니다. 사실 원래 우리가 가려고 했던 곳은 좀더 좋은 캠프였는데요 예약을 하려고 하니 그 기간 동안 빈 방갈로가 없다고 하였습니다. 고급 캠프는 아프리카 자연의 멋을 살려 얼마나 멋지게 지어 놓았는지 실내 장식을 위한 잡지에 나오고도 남을 만하였습니다. 모츠와리 캠프도 방갈로마다 에어컨이 설치되어 있었고 멋을 내기 위하여 한 것처럼 모기장을 높다랗게 달아 놓았더군요. 방갈로를 여기저기 흩어져 지은 것이며 그 내부를 꽤 센스있게 꾸며 놓았다고 생각했습니다. 캠프 옆으로 흐르는 구정물같이 뿌연 강물에 물소가 얼굴만 내보이며 유유히 내려가고 있었습니다. 야!.. 우리는 신기하게 쳐다보았습니다. 원숭이 몇 마리가 와서 우리 먹으라고 상 위에 놓아둔 과일과 과자를 노리고 있었습니다. 몇 사람이 소리내어 쫒았는데도 아랑곳없이 자꾸 되돌아 왔습니다.
저녁은 마당에 열대지방의 분위기를 연상케 하는 장식을 해 놓고 한 옆에 뷔페를 차려 놓았습니다. 그리고 훨훨 타 오르는 캠프 모닥불이 더욱 무드있게 해 주었습니다. 그 날은 사슴고기가 메인 코스였습니다. 물론 딸에게는 말하지 않았습니다. 디즈니 영화에 나오는 그 천진스런 사슴. 아이들에게는 먹을 수 있는 동물이 아니라 동화 속의 천사 같은데! 상에 오른 것이 그것이라면 먹지도 못 할 것은 물론이구요 꿈을 깨뜨리게 할 마음이 없었습니다. 음, 송아지 고기 같은데…라고 대답 했습니다. 테이블에는 먹음직스러운 음식을 간단하게 몇 가지만 나열해 놓았습니다. 뷔페에서 가지 수를 늘이느라 맛도 없는 것들을 쓸데없이 많이 늘어놓은 것을 저는 제일 싫어하는데요 그렇지 않은 것이 좋았습니다.
음식 맛이 꽤 좋다 보니(금강산도 식후경) 기분이 더 좋아졌고 여러 나라에서 온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기다란 테이블에 우리와 함께 앉은 사람들은 뉴욕의 브롱스(뉴욕은 4 지역으로 나뉘어 있는데 가장 북쪽의 지역) 동물원에서 견습나온 사람들이라고 하였습니다. 딸이 어렸을 때 한 번 밖에 안 가 보았지만 같은 도시에서 왔다고 하니 반갑더군요.
다음날, 꼭두새벽 5시에 기상했습니다. 아이, 이 오 밤중에... 곤한 잠 깨운 것을 투덜거리며 고양이 세수를 하고 서둘러서 옷을 줏어 입고 나갔습니다. 뚜껑도 없고 쇠로된 파이프만 위에 가로질러 있는 기다란 지프차를 탔습니다. 아니, 오늘 우리 사자의 밥이 되는 거 아닌가? 아직 캄캄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20대 중반쯤으로 보이는 날카롭게 생긴 젊은이가 우리 팀의 가이드였습니다. 그는 우리에게 몇 가지 주의 사항을 일러 주었습니다. 차의 뚜껑이 없어도 그 안에만 있으면 동물은 차와 사람을 하나의 물체로 보기 때문에 안전하니 염려하지 말 것, 자기가 동물이라도 되어 봤나? 절대로 동물을 보고 소리를 지르지 말 것, 사진을 찍을 때도 동물이 주위에 있을 때는 혼자 차 밖을 나가 행동하지 말 것 등 생사를 좌우하는 주의 사항을 일러 주었습니다. 그의 옆에는 동물의 자취를 찾아낸다는 10대의 흑인 소년이 탔구요. 차가 빠져 버릴 것 같은 갯물이나 길이라고 하기에는 과분하고 그저 잡초가 좀 뉘여진 듯한 곳도 자기 동네 뒷길처럼 마구 차를 몰고 갔습니다.
아침 햇살이 비치기 시작하고 양 사방이 멀리까지 내다보이는 냇물가에 도달 했을 때 그는 차를 세웠습니다. 차 뒤의 트렁크를 열더니 우리를 위하여 그럴듯한 아침 식사를 차리기 시작 했습니다. 샴페인과 오렌지 주스까지 나오자 몇 사람은 환성을 올리고 박수를 쳤습니다. 우리는 따뜻한 차와 커피를 훌훌 마시고 머핀이며 호두나 건포도가 든 빵, 과일을 먹고 나서야 드디어 산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제는 두 눈을 똑바로 뜨고 동물을 살펴볼 준비가 된 기분이었습니다. 멀리서 풀을 뜯고 있는 여러 종류의 무리를 쳐다보기도 하고 사슴떼들, 부러질 것 같은 긴 목을 세우고 유유히 걸어가는 기린 같은 동물이 앞에 있으면 차를 세우고 그들이 옆으로 나갈 때까지 기다렸습니다. 길잡이 소년은 보통 지프차 앞 뚜껑 위에 앉아 동물의 발자취를 살폈습니다. 길을 유심히 살피다가 우리에게 곧 사자를 볼 것 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차에서 내려 길옆으로 혼자 걸어 나가더니 갑자기 급히 되돌아와 차 뚜껑 위에 다시 앉았습니다. 우리 더러 보라고 손가락질 하는 쪽을 바라보니 아주 가까운 데에 사자가 4-5마리 조는 듯이 앉아 있었습니다.
아니 용맹스러운 사자가 왜 졸구만 있어? 무서운 생각이 하나도 안 들었습니다. 동물 세계의 왕으로 천지를 울리는 우렁찬 부르짖음을 듣는다든가 혹은 힘차게 뛰어가는 용맹한 모습을 볼 줄 알았는데! 볼 때마다 사자는 졸고 있는 모습 밖에 없어 실망이 되었습니다. 제일 무서웠던 것은 시커먼 뿔소였습니다. 한 번은 우리가 가는 길과 그 주위를 온통 100-120
마리는 되리라고 추측한 수많은 뿔소 무리들이 막고 있어 차를 세웠습니다. 얼마나 험상 굳게 생겼는지 가까이 올 때는 우리가 차 안에서도 움직이지 않았고 곁눈으로 쳐다보았습니다. 눈이 마주치면 성미를 부리고 달려들 것 같았습니다. 겁이 나서 저도 모르게 어깨가 차 가운데 쪽으로 쓰윽 기울어지더군요.
꼭두새벽에 나간 하루를 제외하고는 아침에 햇살을 받으며 마당에서 푸짐한 아침식사를 하였습니다. 테이블 위에는 여러 가지 과일과 머핀이 푸짐하게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한 옆에서는 둥실둥실하게 생긴 젊은 여자가 넓다랗고 네모진 판에 달걀 후라이, 햄 그리고 저민 감자를 먹음직스럽게 지지고 있었습니다. ‘저 여자도 먹고 싶을텐데’ 하는 생각이 그 순간 스치고 지나갔습니다. 우리는 거기서 묵는 사흘 동안 아침이나 낮에 한번 구경 나가고 점심 후에는 자유 시간이라 풀에서 수영을 하거나 책을 읽기도 하였습니다. 밤에 활동하는 동물을 보기 위해서 밤에도 또 다시 구경을 나가 정말 여러 가지 동물 구경을 하였습니다.
차를 몰고 가면서 우리 가이드는 쉴새없이 저 새를 봐라, 저기 뛰어 가는 작은 동물을 봐라 하고 손짓 하여 주기도 하였지만 어떤 때는 오랫동안 차를 몰고 가도 아무 것도 나타나지 않는 적도 있었습니다. 한 번은 다른 차를 타고 있는 가이드한테서 연락이 왔습니다. 자기들이 표범을 발견했다구요. 우리는 차를 돌려 방향을 도저히 종잡을 수없는 곳을 쏜살같이 한없이 가느라고 엉덩방아도 많이 찧었습니다. 드디어 묵직한 나무 위에 앉아 토끼를 물어뜯고 있는 표범 앞에 도달했습니다. 우리 외에도 또 다른 두 대의 지프차가 와서 모두 아주 가까이 코 닿을 데다가 차를 세우고 구경 하였습니다. 모두들 질세라 사진 찍느라 짤깍 거렸습니다. 그 때는 지금처럼 조용한 디지털 카메라가 없었거든요. 제가 그때 생각한 것인데요. 우리 인간들이 너무나 생각도 없이 동물의 세계를 무참히 침범한다고 생각 했습니다. 좀 멀리서 거리를 두고 구경해도 충분할 것을!
또 한 번 다른 가이드한테서 연락이 왔습니다. 볼만한 구경거리를 놓칠세라 지체없이 달려갔습니다. 정확한 위치에 대하여 워키토키를 통하여 서로 주고받다가 큰 나무가 있는 곳에 도달했는데 우리 가이드가 갑자기 폭소를 터트렸습니다. 나무에 걸어 놓은 종이쪽지에는 ‘만우절’이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정말 생각해보니 그 날이 바로 4월 1일. 우리도 모두 그 장난꾸러기 짓에 웃음을 터트렸지요. 그러고 보니 우리가 자연과 더불어 날짜를 생각하지 않고 지내고 있었습니다. 아프리카의 황혼은 그 색채가 유난히 짙다고 생각 했습니다. 그리고 해가 떨어지면 그 즉시 한 발자국 앞도 보이지 않을 만큼 금방 캄캄해지는 것 같았습니다. 그 날 밤에 차를 타고 꽤 멀리 나갔는데 갑자기 차가 멈추었습니다. 우리 가이드가 나가 살피더니 타이어에 빵구났다는 것입니다.
주위는 아주 깜깜 절벽인데! 모두 차에서 내려야 했고 우리 가이드와 길잡이 소년이 차의 한쪽을 올리고 타이어를 바꾸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구경하면서도 겁을 먹고 가끔 주위를 슬금슬금 돌아보았습니다. 언제 뭐가 나타날지도 모르는데! 드디어 작업 완성이 되어 안도의 한숨을 쉬고 차에 올랐습니다. 차를 마악 몰기 시작했는데 어머나 앞에서 건장한 사자 무리들이 우리 쪽으로 유유히 걸어오고 있잖아요. 물론 바로 차를 세웠습니다. 그들은 계속해서 똑같은 속도로 유유히 우리 차를 스치며 네, 손이 닿을 수 있는 우리 바로 옆으로 말이에요. 덩치가 큰 몸을 실룩거리며 지나갔습니다. 타이어를 바꾸는 동안 나타나지 않은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다시 차를 몰기 시작했을 때 모두 한마디씩 지껄이며 즐거운 안도의 한숨을 내 쉬었습니다. 2-3분만 늦었어도 어떤 상태에 직면했을지 모르니 정말 아슬아슬한 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사자보다는 그 어마어마한 힘에 놀란 것은 코끼리였습니다. 덩치가 큰 뿐만이 아니라 나무뿌리를 먹기 위하여 커다란 나무를 코를 감아 단숨에 뽑아내는 것을 보고 놀래서 입을 벌렸습니다. 여기저기 내동댕이쳐진 나무가 흩어진 것을 보고 코끼리가 매일 망가뜨리는 나무의 수도 상당하리라 생각되었습니다. 표범이나 사자는 다른 동물을 잡아먹고 코끼리는 식물성만 먹고 자라는데도 그렇게나 힘이 세니 참 신기하지요. 서로 잡아먹지 않는 동물끼리 같은 벌판에 함께 어울려서 있는 모습은 정말 너무나도 평화로워 보였습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에 뭐가 나타날지도 모르는 긴장감이 은근히 도사렸고 잘못하면 눈 깜짝 할 사이에 다른 동물에게 잡아
먹히게 되지요. 그 사파리 여행은 우리에게 자연의 아름다움을 다시 한 번 깨우쳐 주었습니다. 보통 때라도 플라스틱 봉지는 가능하면 아껴 쓰고 버릴 때도 조심 하지만요, 그 여행 후에는 자연을 해치지 않기 위하여 더욱 더 신경이 쓰이게 되더군요.
생각해 보셔요! 우리가 버리는 그 많은 쓰레기가 쓰레기장(자연 인데)을 메꾸고 플라스틱 봉지가 버려진 곳은 풀도 안나지 않습니까? 정말 북적거리는 문명 세계를 떠나니 싸우는 나라의 위기에 대한 뉴스도 듣지 않고, 사회적인 허식도 없고, 평화로운 자연, 대자연과 우리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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