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최남단에서 북으로 보이는 경치.
우리는 말로만 듣던 남아 연방으로 사파리(safari-동물 구경하는 여행)를 가기로 했습니다. 남쪽이니 우리와 날씨가 정반대이기 때문에 봄 방학을 이용하여 가보기로 하였습니다. 남아연방 관광공사로부터 여러가지 책자를 구해보고 아는 사람들을 통해서도 가능한 여러가지 정보를 구했습니다. 우리는 미리 유럽에 와 있었기 때문에 딸이 뉴욕에서 오면 함께 남아 연방의 요하네스부르그(Johanesburg)로 가고 거기서 다시 비행기를 갈아타 케입타운(Capetown)에 가기로 하였습니다.딸이 도착하는 날, 우리 짐을 다 들고 수속 절차를 밟고 기다리는데 우리 애가 탄 비행기가 연착이라는 통지가 왔습니다. 저는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습니다.
지금 겨우 고등학생이 된 아이인데. 항상 다니는 나라라면 모르지만 전연 미지의 세계이고 또 다시 한번 갈아타야 하기 때문에 마음이 놓이지 않았습니다. 승무원들은 다음 비행기에는 우리가 탈 자리도 없고 또 우리애가
도착하면 당연히 다음 비행기로 연결이 되니 염려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저는 공항에 앉아 올 때까지 기다리고 싶은 마음을 억지로 끌고 비행기를 탔습니다. 요하네스부르그에 도착하니 어마나, 백인이나 동양인은 씨도 없고 홀 안이 온통 새카맣게 보였습니다. 딸이 거기 혼자 도착할 생각을 하니 앞이 아찔했습니다. 다음 비행기는 꼭두새벽에 도착할텐데! 남편은 이 밤늦게 어디 나가서 호텔을 구하는 것도 힘들고 거기서 기다리면 우리 비행기표도 다시 사야하니 항공사 직원에게 부탁하고 타는 수밖에 없다고 하였습니다.
어쩔 줄을 몰라 벙벙대는 저를 진정시키느라 진땀을 빼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아침까지 당번이라는 항공사 직원에게 신신당부를 하고 비행기를 탔습니다. 부탁한다는 말을 제가 아마 열 번쯤 되풀이 했습니다. 케입타운은 벌써 공항 분위기부터 요하네스부르그와 다르고 국제적인 도시의 공항이었습니다. 우리의 숙소인 케입 그레이스(Cape Grace) 호텔에 도착하였을 때 그 호텔이 어떤지 제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고 또 그런 것이 하나 중요하지도 않았습니다.
꽤 늦었기 때문에 애써 잠을 청했습니다. 너무나 딸이 걱정되어 말을 하고 싶지도 않았고 나오지도 않았습니다. 갑자기 전화 소리에 소스라쳐 깨었습니다. 어디에 있는지 금방 감이 잡히지도 않았습니다. 날이 밝지도 않았는데. 요하네스부르그에서 온 전화였습니다. 딸이 다음 비행기에 마악 오른다구요. 그리고 케입타운 도착 시간을 알려 주었습니다. 고맙다는 말을 하고 또 되풀이 했습니다. 너무나 기뻐서 새벽잠을 깨운 것도 좋기만 하였습니다. 안도의 한숨과 함께 드디어 우리 얼굴에 웃음이 번졌습니다.
케입 그레이스 호텔은 중간크기의 고급 호텔로서 한편으로는 바다가 보이고 뒤로는 그 곳의 유명한 테이블 산이 보였습니다. 적당히 크고 내부가 아주 품위 있으면서도 분위기가 밝았습니다. 방도 넓직하고 욕실이 유난히 큰 것이 인상적 이었습니다. 제일 마음에 드는 것은 아담한 서재가 있어서 우리는 저녁 식사 후에는 꼬옥 거기에 가서 남편은 씨가(cigar)를 피우고 우리는 잡지를 보거나 차를 마시면서 시간을 보냈습니다.
호텔 직원은 우리에게 클린턴 대통령이 남아연방 방문 시에 그 호텔에서 묵었다고 자랑스럽게 알려 주었습니다. 입구 외에는 바다로 둘러쌓
여 있어서 보안상 관리하기도 수월하여 그 곳을 택한 것 같다고 우리끼리 결론을 내렸습니다. 우리는 우선 관광 안내원을 앞세우고 반나절 구경을 다니기로 하였습니다. 새로운 곳에 가면 그렇게 하는 것이 정말 도움이 되니 꼬옥 그렇게 하셔요. 차를 몰고 다니며 중요한 곳을 잘 설명을 하며 보여 주어 그 곳의 역사를 피부로 느끼게 해 주었습니다. 소수의 백인이 어떻게 그 많은 흑인들을 쥐고 흔들었는지 놀라웠습니다. 흑인 정권으로 바뀐 후로는 안전 상태가 흩어져 너무나 위험해 졌기 때문에 무척 주의를 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한 빈민촌을 지날 때는 길옆에 차를 세우고 위험하다고 멀리서 보기만 하였습니다. 겨우 누울 자리 밖에 없을 것 같은 찌그러진 판자집들. 여기저기 찢어진 비닐로 막기까지 한 그 모양이 너무나 비참해 보였습니다. 제가 뭐 부족한 게 있다고 말한 적이 있나요? 저렇게 사는 사람들도 있는데! 우리는 모두 얼마나 많은 복을 받고 사는 사람들인가 하고 생각 했습니다.호텔에서 뒤편으로 보이는 테이블 산에 올라가 보기로 하였습니다. 케입 타운에서 꼬옥 가 보아야 하는 유명한 산입니다. 위가 칼로 자른 듯이 납작한 돌산이라 말 그대로 꼭 테이블 같았습니다. 절벽 같은 산을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가니 내려다보이는 시가지의 경치가 정말 장관이
었습니다. 너무나 높은 절벽을 타고 올라가는 케이블카가 숨이 막히도록 아슬아슬하기도 하였습니다. 우리는 숨을 깊게 들여 마시며 한동안 넋을 잃고 내려다보았습니다. 이런 장관이 이 세상에 또 어디 있을까? 그곳과 비교할 만한 곳은 브라질 리오의 슈가부쉬 봉이라고 생각 되었습니다.
산 위에는 키가 작은 식물 밖에 없었고 바람이 무척 세었습니다. 우리는 방향을 바꾸어 가며 그 멋진 경치를 카메라에 열심히 담았습니다. 오후에 바람이 더 거세어지면 케이블카가 정지될 것이니 한 시간 내에 모두 내려가야 한다고 통지해 주었습니다. 우리 호텔에서 먹을 때 악어 고기가 메뉴에 나와 있어 호기심이 나서 시켜 보았습니다. 그런 것을 다 먹을 수 있다니 놀랍지요? 그 무시무시한 외모와 억센 껍질에 비해 살 고기는 무척 연하여 송아지 고기라 해도 믿었을 것입니다. 재주 있는 요리사가 만든 음식이니 물론 맛있게 먹었습니다. 사실 여행 때 더욱 더 느끼는 데요. 어느 나라 음식이던지 잘 만들면 다 맛이 있어요.
그 호텔에서는 또 아침 식사 때 나오는 그레입프르트 컴포트(Grapefruit Compote)가 유난히 맛이 있었습니다. 잼 같은 것인데 컴포트는 과일 덩어리가 완전히 풀어지지 않고 좀 섞여 있는 것이라 더 과일의 맛을 즐길 수가 있지요. 키르라는 알콜을 조금 넣어서 그런지 붉으스름한 색이 돌아서 보기부터 벌써 너무나 먹음직스러웠습니다. 며칠 후에는 차를 빌려 타고 제일 남단의 케입 오브 굿 호프(Cape of Good Hope)에 가보기로
하였습니다. 우리 남편은 운전을 하고 저는 지도를 무릎 위에 놓고 길을 안내 하였습니다. 어디를 보나 자연의 규모가 엄청나게 컸습니다. 그러면서도 아담한 화란식 건축양식이 여기저기 눈에 띄었습니다. 미국과 같이 거대한 자연에 유럽의 매력이 합쳐진 곳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아마 가장 적절한 표현일 것이에요. 딸도 아주 재미있어 하는 것을 보니 적당한 나이에 잘 데리고 왔다고 생각 했습니다.
딱 짜인 시간이 정해진 것이 아니니 가다가 경치가 유난히 좋거나 흥미있는 것이 있으면 무조건 차를 세우고 한동안 시간을 보냈습니다. 아담한 해변가의 마을에서 간단한 점심을 먹었는데 분위기가 꼭 뉴욕 소호에 있는 집 같았습니다. 그 집 카드를 잘 보관 하느라고 넣었는데 지금 찾을 수가 없어 알려 드릴수가 없네요.최남단에 도착하니 바람이 어찌나 센지, 돈 들여 가꾼 멋진 헤어 스타일을 구기기에 안성맞춤이었습니다. 제 멋대로 휘날리는 머리를 조절 하느라 스카프를 동여매고 재킷을 꺼내 걸쳤습니다. 우리가 달려온 길을 돌아보니 높은 산 경치가 바다와 어울려 시원스럽게 눈앞에 펼쳐졌습니다.
야, 우리가 아프리카 대륙의 최남단에 서 있구나.
감개무량하여 탐험가라도 된 기분이었습니다. 저 수평선을 지나 계속 내려가면 남극이겠구나! 식물이래야 나무도 없고 땅을 기는 잡초나 꽃뿐이었습니다. 최남단에서는 대륙의 양쪽에서 흘러오는 물속의 급류가 세 수영을 금지한다고 써 있었습니다. 다른 관광객들과 함께 갈 수 있는 끝까지 갔었는데 바람이 어찌나 센지 정신을 차릴 수 없었습니다. 잘못 하다가는 정말 절벽 아래로 날라 갈 것만 같아 서둘러서 내려오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곳을 돌아 나오다가 보니 근처에 타조 농장 사인이 있었는데 화란식으로 지은 건물이 너무나 아름다워 구경하러 들어갔습니다. 타조도 볼 수 있고 건물 안에는 타조 알을 작품화 하여 만든 여러 가지 물건을 진열해 놓았더군요. 타조 알에다 멋진 그림을 그린 것도 많았지만 그보다는 하얀 타조의 알에다가 별, 달 모양을 파서 속에다가 전등을 집어넣은 것이 무척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런 것이 있으면 방 전체의 분위기를 그와 어울리게 해야 할 텐데! 가죽으로 된 의자도 놓고 표범의 가죽이라도 하나 방바닥에 깔고 상아의 뼈를 손잡이에 달은 돋보기를 책상 위에 하나쯤 놓아 어울리게 해야 하지 않겠어요? 그것 하나만 달랑 한 구석에 놓으면 꾸어다
놓은 물건 같이 보일 것 같아서 그만 두었습니다.
술을 만드는 포도 농장이 많은 스텔렌보쉬(Stelenbosch)라는 지역으로 향했습니다. 넓게 펼쳐진 포도밭이 있는데 갑자기 우뚝 솟아 있는 높은 산 경치가 참 독특 하였습니다. 이곳은 또 골프 코스도 좋은 데가 많다고 하였습니다. 열흘이나 두주 동안 이 큰 나라를 돌아보고 가는 것은 너무나 짧은 시간이라고 생각 되었습니다.마을에 도착하니 피부가 흰 사람은 우리뿐이라 저는 속으로 약간 모르는 사람들에 대한 두려움이 느껴졌습니다. 딸에게 쓸데없는 것을 가르치고 싶지 않아 밖으로 내색을 하지는 않았구요. 우리가 찾아간 아주 아담한 레스토랑은 어느 농장 안에 있었습니다. 큰 방은 음식을 먹을 수 있고 옆에 딸린 적은 방은 벽이 온통 술병으로 장식 되어있었고 동그란 테이블이 하나 놓여 있을 뿐이었습니다. 그 곳 에서는 술만 맛보게 되어 있었습니다. 마음에 드는 곳에 가면 항상 하는 버릇대로 남편이, 우리가 이런 데에 농장을 산다면.......하고 말을 시작 하였습니다.
절대로 반대.왜 그래?지금 현재 인구가 느는 곳은 아프리카뿐인데, 이 많은 까만 사람들이 백인 다 죽여라 하고 달려들면 어쩔 것이야? 역사상 그런 일이 얼마나 많았어.흠...마음이 놓이지 않아서 이렇게 단기간 구경 오는 것이면 몰라도 자주 와서 사는 것은 도저히 할 수 없다고 생각 했습니다. 딸이 대학 졸업하면 여기 와서 몇 년 살고 싶다고 했을 때도 저는 반대 한다고 하였습니다. 물론 그 레스토랑과 평화로운 농장만 본다면 유럽의 어느 시골에 와 있는 것과 조금도 다를 게 없었습니다. 정치적, 인종적인 사회 문제만 없다면 포도 농장을 경영하며 도시인의 파리한 피부색을 버리고 씩씩한 농사꾼이 되어 살 수도 있는 일. 밀짚모자를 쓰고 땀을 흘리며 포도를 따는 저의 모습을 그려 보았습니다. 불그스름한 저녁 햇살이 창으로 길게 스며들어 우리 몸을 감싸 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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