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심여고와 서강대학 동창인 은경이가 캘리포니아에서 왔습니다. 어렸을 때 외교관인 아버지 덕분에 미국에서 살다가 와서 본토 발음으로 영어를 너무나 잘해서 무척이나 부러워했던 아이였습니다. 과연 외국 물을 먹은 아이라서 몸에 베인 태도가 달랐고 순 국산인 저의 넙적한 얼굴과는 달리 얼굴도 개롬하였습니다. 중고등학교 시절 때에 항상 포니테일로 머리를 묶고 다녔습니다.
우리는 은경이가 반드시 국제 결혼을 하리라고 생각 했는데 같은 서강 동문과 결혼을 하여 우리를 놀라게 했습니다. 너무 오랜만에 만나 둘이서 즐겁게 점심 준비를 하고 있는데 남편은 제가 뭐 잘못 한 것이 있다고(저는 기억도 못하는) 고시랑고시랑 중얼거리고 있었습니다. 더군다나 친구가 와 있는데 한번 말 했으면 고만이지 한 말을 또 하고 계속 탓을 하고 있으니까 옆에 있던 은경이가 얘, 너의 남편 어쩌면 저렇게 좁쌀 영감이니? 좁쌀 영감? 어머나 나는 그 말을 20여년 동안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생각하면 그 말이 정말 얼마나 재미있는 말입니까? 아무리 적은 것에 비교를 해도 분수가 있지 거의 보이지도 않는 좁쌀에 비교하다니! 우리는 허리를 잡고 웃기 시작했습니다. 한번 웃고 나면 고만둘 것이지 그런데 우리는 멈추지도 못하고 허리를 피지도 못했습니다. 멀리서 보고 있던 은경이 남편은 영문을 몰라 우리가 마치 밑 빠진 여자들인양 어리둥절해서 쳐다보았습니다.
사소한 일을 끄집어 내어 투정하는 것 그것은 제가 결혼 생활에서 가장 힘든 일 중의 하나입니다. 보통 여자들이 작은 일을 갖고 물고 늘어지는데 어떻게 우리 집은 그게 반대로 되었는지! 멀쩡하게 키도 크고 잘 생겼고 사람들 앞에서는 항상 유머도 많은 사람이 그렇게 사소한 일을 갖고 쪼아대는 것을 남들은 상상할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 성미는 시어머니는 알고 계시더군요. 집에 고장 난 것이라도 있어 누가 와서 고치면 요것 저것 샅샅이 살피고 모든 것을 완전히 해 놓아야 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일을 잘해 놓아야 하는 것은 저도 동의하지만 어떤 때는 그 정도면 괜찮다고 생각해도 자기 눈에는 안 차는 모양이라 물고 늘어집니다. 저는 가끔 불완전한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고 있느냐고 묻기까지 하지요.
제가 아무리 해도 집안 청소를 마음에 들어 하지를 않아서 우리가 롱아일랜드에 살면서부터는 일주일에 한 번씩 와서 소제해주는 여자를 두었습니다. 제가 집에서 소제만 하고 있으면 모르지만 딸도 여기저기 레슨 데리고 다니는 기사 노릇도 해야 하고 너무나 그것 때문에 싸우는 일이 부지기수라 그렇게 하기로 하였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불평을 안 하는 것은 아니지요. 항상 그 파출부가 이것도 제대로 안하고 저것도 제대로 안 해 놓았다고 야단하면서 해고시키라는말을 누워서 떡 먹기로 하였으니까요.
으응, 그것 고치라고 할께 라고 말하지요. 저에게 직접 오는 공격이 아니니, 제 속이 덜 상하는 편이더군요. 그리고는 다음에 그 여자가 오면 그런 것을 좀 신경 써 달라고 부탁 하였습니다. 독수리의 눈을 가진 우리 남편은 제가 생각지도 못한 것을 끄집어 냅니다. 보통 사람들이 생각 못하는 것까지 모두 보고 지적을 하는 비상한 사람. 지금은 할 만큼 해 놓고 이제 더 이상 마음에 안 들어도 할 수 없다는 태도를 보입니다.
저는 면허증도 없이 그의 심리를 이해하려고 별 생각을 다 합니다. 내가 싫어서 무조건 트집을 잡는 게 아닌가? 자기가 뭐든지 다 잘하니 내가 잘 못 하는 게 눈에 뜨이는 것이 당연한 일이 아닌가? 뭐든지 트집을 잡으니 내가 잘 못하는 것보다 자기 자신에게 만족 하지 않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닌가? 수많은 질문을 저 혼자서 늘어놓고 이해하려고 애를 썼습니다.
어떤 때는 야, 이러다가 내가 미쳐 버리는 게 아닐까 하고 두려운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사람이 아주 똑똑하면 미친 사람에 가까운 광적인 데가 있지 않습니까? 남편이 바로 그런 사람입니다. 아주 똑똑하고 항상 아이디어가 머리에서 샘솟듯이 쏟아져 나오고 일도 삽시간에 척척 해치우는 재주꾼. 그리고 남 앞에서는 홀딱 반하게 신사적이고 챠밍하고 유머가 많고 춤도 잘 추고 재치있는 사람. 반면에 같이 사는 사람을 끝도 없는 불평으로 볶아 대고 지랄 같은(이크, 실례) 성미를 부려 대는 광적인 사람. 세상에 다 좋을 수가 없는 모양이군요. 가끔 만나는 친구들이야 좋을 때 고작해야 몇 시간 만나는 것인데 뭘 알겠어요. 남에게 불평을 하면 그저 멀쩡한 사람 잡는다고 오해사기 십중팔구라 아무 말도 못하고 저는 그의 비유를 맞추느라 애를 쓰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간혹 우리 집에 와서 며칠씩 묵는 친구들은 항상 독수리 눈으로 저의 잘못을 끄집어내어 책망 하는 것을 보고 모두 한 마디씩 하였습니다. 그러면 며칠 동안 조금 나아지는 것이 고작.
남편이 저를 쪼아 대지 않는 것은 지금은 홀몸이 되신 무티(mutti-독일말로 어머니)가 와 계실 때 뿐입니다. 자기 어머니 앞에서 저한테 잘 하기 때문이 아니라 서글픈 말이지만 자기 어머니 책망하느라 저를 책망할 새가 없는 것이지요. 아무래도 연세가 든 분이니 이것저것 흘
리거나 빠트리니까 그것을 지적하느라 볼일 못 보는 셈. 신문을 보면서도 어떻게 다 아는지 무티가 음식을 흘리는 것이나 혹은 다른 잘못하는 것을 일일이 지적하기 때문에 우리 집에 오실 때 마다 이틀째 되는 날이면 으레히, 도저히 못살겠으니 가겠다고 하셨다니까요. 저는 무티가 들볶이는 것을 보면 어머나, 세상에! 라는 말이 절로 새어 나왔습니다. 그때서
야 저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보는 것 같아 가슴이 조여드는 것 같았습니다. 제가 저런 것을 어떻게 견디며 살고 있나 의문이 갈 때도 있었으니까요. 우리도 그 나이가 되면 그렇게 잘못 하는 것이 많을 테니 좀 안 보면 어떻겠느냐고 말하기도 하지만 아무 소용이 없지요. 그렇다고 해서 불효 자식인 것도 아니구요. 멀리 있으면 항상 잘 계시는지 전화하고 염려해 주면서도 보
기만 하면 그 모양이니! 그걸 어떻게 하면 좋겠어요? 제가 이유를 물으면 자기도 왜 그러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하였습니다. 가능하면 서로 떨어져 지내는 수 밖에 없다고 시어머니께 충고를 해 드렸습니다. 무티, 하루 아니면 이틀만 같이 계시는 게 꼭 적당해요. 지금은 가끔 딸이 자기에게 고분고분 하지 않다고 화를 있는 대로 내면 거울을 봐! 당신
이 어머니한테 하는 대로 딸한테서 똑같이 받을 것이니 알아서 하도록 해 그 말에는 마음이 움직이는지 말없이 저를 힐끗 쳐다 본다구요. 그리고는 한 동안 조금 나아지는 시늉 이라도 한답니다. 앞으로 나아지겠지 하는 희망을 다시 한 번 가져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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