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별토크] 개그맨의 희로애락…
약해보인다고? 별명이 ‘독고다이’ 예요 ㅋㅋ
치고 받는 개그 이제 조금 적응…
모든 게스트 껴안는 ‘공감 백배쇼’ 만들고 싶다
개그맨 김국진을 마주하고 ‘희로애락(喜怒哀樂)’으로 요약되는 인생사를 되돌아보게 됐다.
김국진은 1991년 데뷔와 함께 당대 최고의 인기를 누렸다. 돌연 미국 유학에 오르고 다시 복귀를 해서 예전 인기를 누리지만 또 다른 시련이 기다렸다. 이혼과 사업실패는 잘 나가던 톱스타를 한 순간에 나락으로 떨어뜨렸다.
세상을 등지고 세월을 낚시질 하며 5년을 보내고 돌아온 김국진은 달라졌다. MBC 예능 프로그램 <황금어장> ‘라디오 스타’에서는 그의 여유가 느껴진다.
쓰디 쓴 개인의 아픔에 대해 초연하다 못해 태연한 반응으로 시청자에게 페이소스 가득한 웃음을 선사하고 있다. 어느덧 출연 프로그램도 <사이다>(KBS 2TV), <명랑 히어로>(MBC), <코끼리>(MBC) 등으로 늘어났다.
’제3의 전성기’에 근접해 가고 있는 김국진을 서울 홍익대 근처의 한 와인바에서 별별토크 취재진이 마주했다. 말투 하나 행동 하나에 ‘큰 웃음’으로 반응했던 리액션 좋은 여기자(이재원기자ㆍ이하 이)와 김국진의 ‘독고다이’(?) 인생철학에 매료된 남기자(김성한기자ㆍ이하 김)가 와인 잔을 비워냈다.
# 웃음은 타이밍!
▲술은 얼마나 하세요?(이)
=전혀. 일년에 한번 꼴로 마실 정도로 술은 잘 안마시죠.
▲이런, 연례 행사에 참석하는 영광을 주시다니, 감사합니다.(이)
=진짜 1년에 한 번 마셔요. 작년에 친구와 한 잔 한 뒤로는 오늘이 처음이니까요. 연예인하고의 술자리는 3년 됐나봐요. 이경규 선배하고 (이)윤석이랑 ‘간단하게’ 마셨죠.
▲이거 아주 특별한 자리인데요. 개그에는 어려서부터 소질이 있으셨나요.(김)
=어려서도 내가 특별히 말이 많거나 재주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던 것 같아요. (자리에서 일어나며) 그냥 이렇게 일어나요. 그럼 신기하게 친구들 시선이 나한테 모이는 거예요. 그리고 천천히 ‘얘들아’ 뭐 이렇게 내가 한 마디를 하면,(기자들의 웃음이 터지자) 이봐요. 이렇게 웃기 시작했어요. 이게 타이밍이구나. 사람들이 웃을 순간에 ‘툭’하고 쳐주면 터지는구나. 그게 몸에 배었던 것 같아요. 저는 ‘타이밍 개그’를 하거든요. 상대를 관찰하고 반응도 살피고….
▲요즘 예능 프로그램하고는 거리가 있네요.(김)
=요즘은 떼로 나와서 하는 코미디가 대세죠. 전체가 동시다발적으로 서로 치고 받는 그런 형식이죠. 처음에는 ‘이게 뭔가’ 싶을 정도였어요. 예전에는 ‘니주’(전제)와 ‘오도시’(반전)에 충실했어요. 요즘에는 너무 빨리 진행되면서 ‘니주’가 필요 없는 시대가 됐어요. 반전에 급 반전이 순식간에 터져나오죠.
▲최근에는 이혼 같은 아픈 개인사까지 ‘라디오 스타’에서 소재가 됐어요.(김)
=김구라가 원래 캐릭터가 그러니까요. 예전에는 (손을 펼쳐서 오른쪽으로 밀다 멈추며) ‘상대가 이 정도 들어올 것이다’ 라는 게 있었어요. 요즘은 항상 이보다 훨씬 많이 들어와요. 처음엔 좀 당황했지만 지금은 괜찮아요. (개인사 공개는)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시작했어요. 예전에는 서로 알아도 감춰주고 가는 묘한 미덕이 있었죠.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덮고 갈 수 없는 분위기가 형성됐죠. 물론 제가 ‘말하고 싶지 않다’고 하면 안 하겠지만 더 이상 그런 것들이 감춘다고 감춰지는 게 아니니까요.
▲그렇게 공개를 할 때는 어느 정도 마음이 편해졌다는 뜻인가요, 아니면 요즘 추세를 따라가기 위해 어쩔 수 없는 것일까요.(이)
=지금은…안 불편해요. (허탈한 듯 웃으며) 웃기죠. 개그라 웃기다는 것은 아니에요. (한참 생각하다) ‘이제는 내가 웃을 수 있는 여유가 있구나’ 라는 웃음이랄까요.
▲적응이 되어 가는 것일까요.(김)
=꾸역꾸역 적응하고 있죠. 자동차로 치자면, 이제 속도를 알고 작동법을 알게 되었다고나 할까요. 작년 10월에 처음 시작할 때는 0였어요. 지금은 한 40% 정도. 아마 올 10월 정도가 되면 100에 가까운 적응도가 되지 않을까 싶어요.
▲조급함은 없으신가봐요.(이)
=네. 조급한 사람이 5년을 쉬었겠어요? 하하.
# 부러지는 것과 구부러 지는 것
▲조급하지 않다는 것은, 그만큼 자신감이 있다는 뜻 아닌가요? ‘언제 나와도 잘 할 수 있다’라는.(이)
=자신감은 어느 정도 있죠. 누구나 슬럼프는 꼭 와요. 안 올 것 같아도 꼭 한 번은 오죠. 누구나 겪고 싶지 않은 일도 한 번은 오죠.
▲그럼에도 자신감을 갖기가 쉬운 일은 아닐텐데요.(김)
=어머니가 물어보세요. 제가 이혼(그는 이 단어를 짧고 빠르게 발음하고 지나갔다)도 하고 개인적으로 일이 많았잖아요. 저는 늘 (양손을 펼쳐 흔들며) ‘괜찮아요’라고 했죠. 사실, 저를 약하게 보는 사람들이 있거든요.
▲착해보이고 약해보이고, 상처 받을 것 같은 이미지가 있어요.(이)
=오늘 크라운제이하고 서인영이 제 프로그램 게스트로 나왔어요. 세상물정 모르고 당하고 살 것만 같다, 순수할 것 같다고 하더라고요. ‘내 나이가 몇인데 그래 보이나?’ 싶었어요. 사실 진짜 강하거든요. 오히려 날 아는 사람들은 ‘저 사람 너무 강해서 부러지지 않을까’ 걱정을 하죠.
▲고집이 좀 있는 편이신 것 같아요.(김)
=남들보다 센 편이죠. 내가 해서 안 될 것이 없다고 생각해 왔어요. (김)용만이나 (박)수홍이 (김)수용이 이렇게 4인방이 미국에 갈 때도 그랬죠. ‘세상은 넓다. 지금 못 가면 언제 갈 지 모른다. 견문을 넓히고 오자’고 말했죠. 제가 다 알아보고 처리했죠. 2002년 월드컵 개최 전에는 모든 예능 프로그램 마무리가 ‘2002년 월드컵은 코리아에서’였어요. 요리 프로그램에도 여행 프로그램에도 그 멘트로 끝내기가 너무 이상한 거예요. 하루는 피디에게 나 그거 못하겠다,고 했죠. 결국 다른 진행자가 하게 됐어요.
▲지금도 그런 면이 남아 있나요?(김)
=슬럼프가 오게 되고 원치 않는 일들을 겪다 보면 변하기 마련인 것 같아요. 어른들이 ‘너희도 한번 살아봐라’ 했던 말이 무슨 의미인지 알게 되죠. 꿈,야망,일은 하면 될 수 있어요. 하지만 사람 관계는 안 되는 게 있더라고요. (담배를 꺼내 물며) 인생을 살면서 내가 마음 먹은 대로 꼭 되는 것은 아니구나. 저절로 깨닫게 됐죠.
▲약간은 변하셨다는 말씀으로 들려요. (이)
=사람들하고 조금씩 섞어가면서 갈아가는 걸 배우는 것 같아요. 예전에는 전화도 잘 안받았어요. 밥도 같이 잘 안 먹었죠. 얼마나 심하면 용만이가 언젠가는 상의할 일이 있다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나갔더니 형하고 밥 좀 같이 먹으려고요 하는 거에요. 평상시 같으면 내가 ‘나 생각없다’고 할 것이 뻔하니까. 그렇게 얘기한 거죠. 윤석이도 언젠가 술 한 잔만 사달라고 하는데 순간적으로 가슴에 뭔가 오는 거에요. 내가 이 녀석을 안 지가 벌써 10년이 넘었는데 내가 술 한 잔을 못해줬구나. 그래서 마시게 된 게 3년 전 술자리였어요.
▲예상한 것과 다르네요. 굉장히 심지가 굳은 스타일이시군요.(이)
=쉬운 일은 오히려 재미가 없어요. KBS에서 신인상 받고 개그맨으로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을 만큼 주목을 받았지만 관두고 <반달곰 내 사랑>이라는 드라마에 출연했죠. 그 때는 개그맨이 드라마 별로 안 할 때였죠. 1월1일이면 12월31일까지 스케줄이 꽉 차 있던 시기가 있었지만 미국으로 갔죠.
▲진취적이고, 주변 신경은 전혀 쓰지 않는 스타일이랄까. 예상과 다르세요. ‘My Way’시군요.(이)
=제 별명이 ‘독고다이’였어요,하하. 용만이가 저 보고 ‘형은 체 게바라야’라고 했죠. 남한테 해 되는 일은 못하는 약한 면도 있지만 동시에 무척 강해요.
# 시련을 통해 배운다
▲사업 실패로 여러 가지 얘기가 있어요. 어느 정도 손해를 보셨나요.(김)
=크게 벌렸으면 손해도 클텐데 그러진 못했어요. 그냥 벌려놨다가 처치곤란이라 남에게 넘겼죠. 회사에 몰입을 해야 하는데 전 그게 안돼요. 결제를 하나 하려고 해도 잡생각이 들어요. 전 제가 작아진다고 느낄 때 (손을 가슴에 얹으며) 제일 싫어요. 내가 이걸 계속 하면 작아지겠구나 이렇게 작은 일에도 흔들리면 큰일은 어떻게 하나 싶어서 미련 없이 그만뒀어요.
▲평탄하지 못한 과정을 겪어왔어요. 과거로 돌아가 만약 한 가지만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다면 무엇을 바꾸시겠어요.(김)
=(놀란 표정으로)일적으로요? 아님 개인사로요?
▲둘 다요.(김)
=(한참 생각하며 담배를 다시 물며) 없어요. 실패한 건 잘못된 선택이라고 하는데 실패가 아니면 나중에 성공도 할 수 없겠죠. 계획대로 착착 한걸음씩 딛고 오는 사람이 실패를 안 했다고 행복할까요? 난 그런 건 싫어요. 좋은 일이 있었으면 안 좋은 일도 있죠. 그런 것들이 서로 섞이면서 에너지가 생기잖아요. 물론 좋은 일 비율이 더 많으면 좋겠지요. 평탄하고 쉽게만 산다면 재미없고 무료하지 않을까요.
▲얼마 전에 다시 사랑하고 싶다는 말씀을 하셨어요.(이)
=옆에서 김구라가 계속 몰아부쳐서 나온 말이에요. (민망하다는 듯 웃음을 띄고) 이제 사는데 여유가 좀 느껴져요. 사랑이라는 걸 다시 해도 (뜸을 들이다가) 되지 않을까 한 거죠. 평생 사랑이라는 걸 하지 않고는 살 수 없는 거니까요.
▲외로움은 안 느끼세요.(김)
=별로요. 같이 있다고 외로움을 느끼지 않는 건 아니잖아요. 그렇다고 혼자 있다고 외로움을 느끼는 것도 아닌 것 같아요. 요즘 가만히 있으면 막 기분이 좋아져요. 스케줄에 치이지도 않고 여유도 생기고 오랜만에 편안하게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상형은 어떤 분이세요.(이)
=그냥 내가 좋은 사람이면 돼요. 외모가 어떻고 성격이 어떻고 정한다고 그런 사람이 나타날 리 없잖아요.
# 찰리 채플린을 꿈꾼다
▲개그맨으로 드물게 정극에도 진출을 하셨어요. 얼마전에는 영화 출연 소식도 있었죠.(김)
=참 조용히 여러 가지를 해봤어요. 드라마도 해봤고 MC도 해보고 영화도 제의가 들어왔죠. <인생은 아름다워>에 나오는 로베르토 베니니의 모습을 보고 감명을 많이 받았어요. <코믹제왕>이란 작품이었는데 그 영화가 딱 그런 역이었어요. 지금은 제작 자체가 어떻게 될 지 모른다고 하는데 할 지 안 할지 모르겠지만 영화 뿐만 아니라 많은 일들을 더 해보고 싶어요.
▲목표가 있다면 말씀해주세요.(김)
=제가 잘 할 수 있는 그런 쇼를 만들고 싶어요. 저 혼자 할 수 있는 토크쇼가 아닐까 싶어요. 제가 미국에서 코미디를 공부하면서 생각해 왔던 거예요. 원래 가장 어려운 게 혼자서 진행하는 원코미디거든요.
▲프로그램 제목은 <독고다이>가 되겠군요.(김)
=하하. 그런가요.
▲아픈 개인사 때문에 희로애락이 고루 담긴 프로그램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요.(이)
=제 인생이 그렇게 평탄하지 못했죠. 그래서 어떤 게스트가 나와도 제가 잘 껴안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웃음을 주지만 가슴에 뭔가 오는 묵직한 느낌을 주면 좋을 것 같아요. 요즘에는 단발적인 웃음만 있지 깊은 공감을 주는 쇼는 없는 것 같아요. 다양한 느낌과 표정이 고루 담기는, 스펙트럼이 넓은 쇼를 진행하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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