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연합뉴스) 조성대 특파원 = 여전히 중국인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고 있는 마오쩌둥(毛澤東) 중국 초대 주석의 딸들이 완전히 평민으로 돌아가 조용히 말년을 보내고 있다.
중국 언론매체들이 26일 마오쩌둥 탄생 114주년을 맞아 다양한 특집기사를 보도한 가운데 반관영 통신 중국신문사는 이복자매만 남은 마오쩌둥의 자녀중 언니인 리민(李敏.71) 인터뷰 기사를 실었다.
마오쩌둥과 그의 세번째 부인 허쯔전(賀子珍) 사이에서 태어난 리민은 이제 완전히 평민으로 돌아왔다며 길 거리를 걷거나 공원을 산책할 때 자신이 마오쩌둥의 딸인 줄 알아보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고 털어놓았다.
현재 전국정치인민협상회의(정협) 위원인 리민은 공산당 인민해방군의 전신인 홍군이 지난 1936년 산시성 북부(陝北)지방에 도달한 후에 태어나 아버지의 가명 리더성(李得勝)의 리를 따서 리민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혁명기의 어려운 시절에 태어났으나 중국 권부의 심장 중난하이(中南海)에서 아버지와 함께 행복한 청소년 시절을 보내기도 했던 리민은 지난 1976년 마오쩌둥이 사망하기 전 부친을 만났을 때 그는 이미 생명이 경각에 달린 모습이었으나 자신을 알아보고 손을 잡으며 자주 찾아오지 않았다고 나무랐다고 전했다.
베이징사범대학 화학과 졸업 후 국방과학위원회와 해방군 총정치부에서 근무했던 리민은 1959년 동창인 쿵링화(孔永華)와 결혼, 슬하에 아들 쿵지닝(空繼寧)과 딸 쿵둥메이(孔東梅)가 있다.
아들은 언론매체에서 근무하고 있고 딸은 마오쩌둥이 살았던 중난하이의 거처인 ‘쥐샹수우(菊香書屋)’의 이름을 딴 서점을 베이징(北京)에 열었다.
리민은 마오쩌둥이 평소 일반 인민과 마찬가지의 검소하고 근검한 생활을 했다고 전하고 자신은 신문과 방송 보도를 수시로 보며 음악을 들으면서 소일하고 있다고 생활을 소개했다.
리민의 이복 동생 리너(李訥)는 1939년 마오쩌둥과 결혼한 문화대혁명의 주역 장칭(江靑)이 1940년 8월에 낳은 딸로 역시 평민으로 지내며 가끔 언니 리민과 왕래한다.
한편 마오쩌둥은 자신의 탄생 110주년 기념일인 지난 2003년 12월26일 첫번째 증손자를 얻었다. 증손자 둥둥(東東)은 마오쩌둥의 둘째 아들 마오안칭(毛岸靑)의 아들인 마오신위(毛新宇.37)의 아들.
마오안칭의 부인 사오화(邵華)는 인민해방군 군사과학원 백과부(百科部) 부부장을 역임한 소장 출신으로 제7기부터 9기까지 15년 동안 전국정협 위원을 지냈다. 현재는 중국작가협회 회원, 중국촬영가협회 주석으로 활동하고 있다.
마오안칭-사오화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 마오신위는 중국인민대학 역사학과를 졸업한 후 중앙당교 이론부에서 석사학위를, 군사과학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 현재는 중령(中校) 계급으로 군사과학원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다.
sdch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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