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 450만명의 부자 도시국가인 싱가포르가 야심찬 계획을 세웠다. 전 세계 부자들을 끌어들이는 것이다. 아시아의 제네바, 아시아의 쮜리히가 되려고 한다. 권위주의적인 사회로 정평이 나 있는 싱가포르는 그 동안 일자리 창출과 경제성장을 위해 다국적기업 유치에 온 힘을 기울였었다. 싱가포르는 중국의 급부상과 함께 첨단기술, 의약분야, 그리고 줄기세포연구 등에 매진하고 있다. 세계화 경제구조 속에서 틈새시장을 찾고 있다. 은행업무 관련한 법률을 재정비했다. 외국기업에 대해 필요한 경우 비밀을 보장해주고 세제혜택도 듬뿍 주고 있다. 외국의 은행들이 싱가포르에 문을 열려는 것은 당연하다. 이제 싱가포르는 아시아의 스위스로 자리 잡아 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세제혜택·자금 비밀보장 ‘아시아의 스위스’ 슬로건
중동 오일달러·일본 유럽의 큰손들 속속 들어와
쾌적 환경도 한몫… 해변 택지하나에 990만달러까지
미국 정부선 “탈세 조장·검은돈의 은닉처” 떨떠름
알프스 산맥과 같은 멋들어진 자연경관은 없지만 싱가포르로선 사활 건 전략이다. 부자들과 그들이 이용하는 은행들을 유치하는 것이야말로 싱가포르가 안고 있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묘책이라는 판단을 하고 있다. 싱가포르는 무엇보다 인구가 점점 줄고 있어 외국의 일손을 빌어야 하는 형편이다. 외국 부유층들이 싱가포르에 들어오면 일자리가 생기고 외국 노동자들도 들어오게 된다. 인구 자연감소를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경제에 활기도 불어넣을 수 있다.
현재 싱가포르에는 약 40개의 외국은행들의 지점이 있다. 미국 이외의 전 지역 업무를 관장하는 시티그룹 해외본부가 싱가포르에 있다. 영국의 스탠더드 차터 뱅크의 해외본부도 마찬가지이다.
싱가포르의 은행들이 관리하는 돈은 1,500만달러로, 1조7,000억달러를 쥐락펴락하는 스위스 은행들에 비할 바가 아니지만 그 증가세가 하도 빨라 조만간 무시할 수 없는 상대가 될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특히 중동의 오일달러, 일본과 유럽의 큰 손들이 자국 내의 세금을 피하기 위해 싱가포르에 돈을 보내고 있기 때문이다.
싱가포르가 구애하는 부자들은 로버트 찬드란 같은 사람들이다. 찬드란은 인도 태생으로 미국에 건너가 캘리포니아에서 부동산과 석유사업으로 거부가 됐다. 2005년 은퇴를 결심하고 가족과 함께 싱가포르 해변에 호화콘도를 구입했다. 요트를 정박시킬 곳도 마련된 집이다. 그는 미국여권을 아예 싱가포르 여권으로 바꿔버렸다. 찬드란은 “세금이 적어 싱가포르가 매력적이다”라고 했다. 싱가포르는 자본수익과 이자수입에 대해 세금을 부과하지 않는다. 다만 싱가포르에서 벌어들인 소득에 대해서만 20%의 세금을 물린다.
싱가포르의 해변 휴양지 센토사 코브는 부자들이 눈독을 들일 만하다. 아름다운 바닷가, 카지노, 골프장, 요트시설 등이 완벽하게 갖추어져 있다. 찬드란은 부지 한 곳이 990만달러인 이 지역에 땅을 구입해 집을 짓고 있다.
경제가 급성장하는 아시아 지역에서는 부자들도 양산된다. 매년 적어도 20만명의 부자가 탄생한다는 게 메릴린치의 보고서 내용이다. 이들 부자들을 대상으로 한 부자촌 형성도 당연히 ‘되는 장사’임에 틀림없다.
종전에는 중국이나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등의 부자들이 자국보다 한결 나은 의료시스템, 교육 등을 찾아 싱가포르에 둥지를 틀었다. 그러나 이제는 서구사회의 부자들도 싱가포르의 매력에 끌리고 있다. 부동산 가격이 아직 저렴한 편이고 각종 세금이 적다.
싱가포르는 헤지펀드, 보험사, 은행, 투자사 등을 유치하려고 한다. 이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해외에서 번 돈에 대해 면세 혜택을 부여하기로 했다. 상속 규정이 까다로운 유럽이나 중동지역의 부호들이 싱가포르에 가는 이유도 세제혜택에 있다. 특히 중동은 회교 율법에 따라 아버지가 죽으면 그의 재산을 아내와 자녀들에게 주는 것이 아니라 죽은 이의 아버지나 형제들에게 주게 돼 있다. 돈 많은 부자들이 아내와 자녀에게 재산을 물려주기 어려운 현실이다.
싱가포르에 은행을 두는 게 편리한 것은 비밀보장에 있다. 스위스 은행처럼 말이다. 그러다보니 ‘검은 돈’도 안전하게 보관할 수 있다는 문제점이 발생한다.
실제 이탈리아, 일본, 중국 등의 부호들이 ‘더러운 돈’을 싱가포르 은행에 보관한 적이 있다. 결국 이들이 체포되긴 했지만 비밀보장의 ‘이면’이다.
싱가포르 정부당국은 이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탈세자들의 은닉처가 아니다. 그리고 테러나 마약 등과 관련된 자금에 대해서는 비밀보장을 하지 않는다.” 런던의 독일은행 웨스트LB 지점장 스타인은 “싱가포르 사람들은 규제와 친 비즈니스 환경을 적절히 조화시킬 줄 안다”며 싱가포르에서 은행업을 하기가 좋다고 했다.
하지만 미국을 비롯한 많은 나라들은 세금을 내지 않으려 싱가포르로 재산과 사업체를 옮기는 현상에 대해 달갑지 않은 태도를 보인다. 미국 의회의원들은 지난 2월 면세지역 남용을 방지하기 위한 법안을 제출했다. 민주당 대선 후보로 유력한 바락 오바마가 공동제안 한 것이다. 이와 달리 유럽은 싱가포르가 스위스의 선례를 따를 것을 종용하고 있다. 은행계좌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고 탈세 부분을 거둬들일 수 있도록 협조하는 시스템을 갖추도록 하자는 것이다.
아시아의 경우는 조금 다르다. 세금을 내지 않기 위해서 싱가포르로 향하기보다는 국내 정치 불안과 제한된 자유를 탈피하기 위해서가 주된 이유이다. 상당수 중국인들은 홍콩에서 번 돈을 그대로 홍콩에 남겨둔다. 하지만 일부는 홍콩이 중국의 손아귀에 들어 있다는 점을 우려해 싱가포르 은행을 찾는다.
일부 중국인 사업가들은 돈도 돈이지만 보다 쾌적한 삶을 위해 싱가포르에 간다. 물이 깨끗하고, 공기가 맑고, 교육의 질이 좋고 안전하기 때문이란다. 이들이 싱가포르에 둥지를 틀면서 센토사 코브와 같은 부촌이 형성되는 것이다.
<뉴욕타임스특약-박봉현 객원기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