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간 투병 중인 환자를 돌보는 가족들은 환자 본인만큼이나 힘이 든다. 그래도 질병과 싸우는 환자의 고통만큼이야 할까 하는 마음으로 가족들은 환자를 돌본다.
그런데 질병이 알츠하이머인 경우는 반드시 그렇지도 않다. 환자는 자신이 불치병에 걸린 지도 모르니 오히려 태평이다. 반면 기억이 사라져서 언제 어떤 일을 저지를지 모르는 환자를 24시간 돌보는 가족들의 고통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하다. 자신이 누군지도 모르고, 자신이 하는 행동이 어떤 결과를 나을 지도 모르며, 자신을 위해 희생하는 가족들에 대해 고마움도 느끼지 못하는 환자를 몇 년씩 돌보다 보면 탈진해서 도망 가버리고 싶은 것이 보통 사람들의 마음이다.
벼랑 끝에 선 듯한 막막함과 철저한 무력감을 견디다 못한 가족들이 도움을 구하는 대상은 신. 하느님이다. 그래서 알자이머 환자를 돌보는 가족의 1/3은 이전보다 더 종교적이 된다는 보고가 최근 발표되었다.
<“혼자 힘으로는 할 수가 없지요” 알츠하이머 환자인 남편을 간호하며 신앙심이 깊어졌다고 말하는 프랜시스 차비스. 그는 매일 새벽기도로 하루를 시작한다>
잠시도 눈 뗄 수 없는 ‘하루 36시간’의 간병
지칠대로 지친 심신 마지막 피난처는 종교
LA에 사는 프랜시스 차비스(51)는 매일 새벽마다 집을 빠져 나간다. 6시에 시작하는 새벽기도회에 참석한 후 남편이 깨기 전에 집으로 돌아오기 위해서이다.
초등학교 교장이던 그의 남편 리무얼 차비스(72)가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은 것은 지난 2003이었다. 이후 프랜시스는 그림자가 되어 살았다. 자신의 삶은 없고 오로지 남편만 돌보는 삶이다. 어쩌다 시간이 나면 낮잠을 자는 게 고작이다.
그가 힘을 얻는 원천은 새벽기도. 매일 아침 크렌셔 지역 교회에 가서 두시간 정도 새벽기도회에 참석하고 돌아오면 다시 버틸 힘을 얻는다. 너무 힘들어 견디기 어려울 때 그때가 바로 하느님을 찾을 때라고 그는 말한다.
지난 10일 발표된 조사 결과를 보면 이런 경험은 프랜시스만이 아니다. 미국 알츠하이머 재단 주관으로 전국 650명의 성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의하면 알츠하이머 환자를 돌보는 가족들 중 간병의 어려움으로 인해 이전보다 더 종교적이 되었다고 말한 사람들이 1/3에 달한다.
평소 종교적이었건 비종교적이었건 응답자의 36%는 알츠하이머 환자 간병 이후 더 종교적이 되었다고 대답했다. 인종별로는 흑인들이 특히 그런 경향이 강해서 48%가 신앙심이 깊어졌다고 말했다. LA 성 제임스 성공회 교회의 폴 코월류스키 신부는 말한다.
“사람들이 질병이나 비극을 맞게 되면 평소 무기력에서 벗어나 궁극적인 질문을 하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하다보면 하느님, 혹은 하느님의 존재를 발견하게 되지요”
알츠하이머 재단에 의하면 미국에서 알츠하이머 환자를 돌보는 사람은 2,000만명 정도. 이들 간병인 중 대부분은 배우자나 성인 자녀 등 가족들이다.
이들이 환자를 돌보다 보면 스트레스가 너무 커서 조기 사망하는 경우도 있고 약물 중독에 빠지거나 우울증에 걸릴 수도 있다고 UCLA 알츠하이머 질병센터의 제프리 커밍스 소장은 말한다.
“하루가 36시간이라고들 하지요. 간병인이 환자에게서 잠시도 눈을 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침례교인으로 성장한 프랜시스는 원래 신앙심이 있었다. 하지만 남편이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은 후 교회는 그에게 더욱 단단한 닻이 되었다. 혼자서는 도저히 헤쳐 나갈 수가 없기 때문이었다. 불안과 스트레스가 궤양을 불러와서 프랜시스는 지난해 11월 닷새동안 입원을 해야 했다. 이후 그는 새벽 기도회에 참석하기 시작했다.
지적이고 활동적이던 남편과 그가 결혼생활을 한 지는 거의 12년. 그들은 샌디에고나 팜스프링스 등지로 근거리 여행 다니기를 좋아했고 저녁이면 남편은 시를 읽어주곤 했다. 그러던 남편이 이제는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며 일주일에 몇 번씩 눈물을 흘릴 뿐이다. 그렇다고 그런 남편을 위해 그가 해줄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내가 어디다 하소연을 하겠어요?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눠보기도 하고, 칵테일 한두잔으로 달래보기도 하고, 생각을 딴 데로 돌려보려고도 해보고 … 분명한 건 상황이 점점 나빠지리라는 것이지요”
이런 경험들이 그를 하느님에게로 몰고 갔다고 프랜시스는 말한다. 종교를 통해 위안과 힘을 얻는 것이다.
미국에는 교회, 회당, 사원 등 예배 공동체가 26만여개 있고 전국민 중 80%는 이들 교회나 사원 등 특정 종교 공동체에 속해 있다.
알츠하이머 질병 통계
진행성 뇌 질환인 알츠하이머는 현재로서 치료법이 없다. 노인들에게서 많이 나타나지만 그렇다고 노화의 자연스런 과정은 아니다.
◆ 현재 미국에서 알츠하이머 환자는 450만명이 넘는다. 1980년 이후 두배 이상이 증가한 숫자이다. 환자는 계속 늘어나서 2050년이면 1,130만명에서 1,600만명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 나이가 든다고 모두 환자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고령일수록 발병위험은 높아진다. 65세 이상이면 10명중 한명, 85세 이상이면 거의 절반이 환자이다. 드물기는 하지만 30대나 40대에 알츠하이머에 걸리는 경우들도 있다.
◆ 고령 인구가 많아지면서 알츠하이머 환자는 주위에서 점점 쉽게 접할수 있게 된다. 가족 중 환자가 있는 사람은 미국에서 10명중 한명, 아는 사람 중에 환자가 있는 사람은 세명중 한명 꼴에 달한다.
◆ 알츠하이머 환자의 평균 생존 기간은 8년. 환자들은 알츠하이머 진단 이후 수명이 같은 연배로 알츠하이머에 걸리지 않은 사람의 절반 정도이다.
◆ 알츠하이머 환자를 돌보는 데 드는 직간접 비용은 전국적으로 연간 최소한 1천억 달러. 알츠하이머가 미국 산업계에 끼치는 비용은 610억 달러. 의료비용이 246억달러, 환자 간병에 따른 가족 등 보호자의 생산성 저하, 결근, 그로 인한 인력 대체 배용이 365억달러에 달한다.
◆ 환자 10명중 7명 이상은 집에 살고, 이들 중 거의 75%는 가족이나 친구가 돌본다. 나머지 간병인을 고용하는 경우 연간 간병 비용은 평균 1만9,000달러로 거의 전액이 가족들의 주머니에서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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