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 가득한 리얼리티 연기, 가슴까지 따뜻
배우 임창정은 웃고 있지만 눈물이 나는 혹은 울고 있지만 웃음이 짓게 하는 묘한 연기를 펼쳐낸다.
굳이 표현하자면 ‘코믹 감동’ 정도로 묘사할 수 있다. 임창정은 눈물과 웃음을 적절하게 섞어가며 관객에게 기쁨과 감동을 주는 스타다.
여기에는 임창정이 그간 맡은 배역들 탓도 있다.
임창정은 <위대한 유산> <파송송 계란탁> <시실리 2km>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 등 영화에서 선악 구분을 떠나 못 배우고 못 가졌지만 악착같이 생활을 이어가는 캐릭터를 도맡아 왔다.
그 안에는 ‘정말 현실에 있을 법하게 연기하고 싶다’는 그의 고집도 담겨 있다.
임창정이 등장하는 새 영화 <1번가의 기적>(감독 윤제균ㆍ제작 두사부필름)도 여기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임창정은 이번 영화에서 재개발이 결정된 지역에 철거가 차질 없이 진행되도록 적당히 폭력과 협박을 일삼는 조직의 행동대원 필제로 등장한다.
임창정이 생각하는 연기, 영화 그리고 가족에 대해 들어봤다.
# 내 연기의 중심-현실성
배우 임창정은 연기에 있어 가장 핵심은 관객이 공감할 만한 리얼리티 즉, 현실성이라고 말했다. 임창정은 극중 설정이 극단적일수록 캐릭터를 표현하면서 더욱 냉정함을 유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임창정이 이번 영화에서 맡은 필제도 그 연장선상에 놓여있다.
임창정은 “철거촌에 들어간 건달이 한 달 만에 착하고 순하게 변화된다는 것은 현실에서는 일어나기 힘든 일이다. 사람의 근본이 뒤바뀌는 모습을 보여주면 관객은 허황되다고 생각해 영화에서 멀어진다. 필제를 연기하면서 전혀 딴 사람으로 변화된다는 것보다 살짝 때를 한꺼풀 벗는다는 느낌으로 연기했다”고 말했다.
필제는 철거촌에 들어가서 사람들과 버성기다 동화된다. 개과천선하는 건 물론 아니다. 여전히 거칠고 투박하게 사람을 대하고 맘에 없는 말로 상처를 준다.
하지만 그런 모습에서 관객들은 더 큰 심적 동요를 느낀다. 왜냐하면 그런 필제의 모습이야 말로 임창정 표현대로 ‘실제로 있을 법한 그런 인물’이기 때문이다.
임창정은 연기 변신에 대한 소신도 현실성에 바탕을 둔다. 임창정은 이전 영화들에서 비슷한 배역을 맡으면서 연기 변신에 대한 강박관념을 느낀다고 말했다.
임창정은 “변신에 대한 강박관념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게 내 의지대로 되는 것은 아니더라. 4,50대가 되어서 사람들이 ‘아, 임창정이 저런 연기도 하는구나’라고 느끼게 되면 그게 바로 연기 변신이라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 내 연기의 에너지-가족
임창정은 2006년 3월 프로골퍼 김현주와 백년가약을 올렸다. 이어 지난해 8월에 한 아이의 아빠가 됐다. 누구에게나 그렇듯 임창정에게도 결혼은 인생의 시각을 바꾸는 한 계기로 작용한 듯하다.
임창정은 “사물을 보는 시각이 바뀌었다. 아이의 눈을 통해 세상을 걸러서 보게 되더라”라고 말했다.
물론 아이를 얻게 되면서 세상을 달리 보게 된 것은 임창정 뿐만 아니다. 부부가 일심동체라는 말은 빈말은 아닌 듯하다. 현재 전지훈련 차 미국에 있는 골퍼 김현주도 마찬가지다.
임창정은 “다 필요 없고 딸 하나만 더 낳아주면 된다고 하는데도 말을 안 듣는다. 이제 자기가 골프를 해야 하는 이유를 알았다고, 꼭 1등을 해봐야겠다고 고집을 부리고 있다. 전화할 때 가끔 힘들다고 울면 마음이 너무 아프다”고 말했다.
본의 아니게 떨어져 지내면서 부부간의 서로 걱정하는 마음은 더욱 커져 보였다.
임창정은 첫 부부싸움에 대한 이야기도 털어 놓았다. 임창정은 부산에서 진행된 <1번가의 기적> 촬영에 아내가 동행해 여러 가지를 챙겨주겠다는 걸 만류하다 결국 사랑싸움으로 번졌다고 전했다.
임창정은 “옆에서 보고 있으면 괜히 쑥스럽고 집중이 되지 않을 것 같았다. 물론 내가 고생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은 면도 있다. 그래서 옥신각신하다 결국 처음으로 부부싸움 아닌 부부싸움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아이에 대한 희망과 아내에 대한 애틋함을 전하는 임창정은 영락없는 평범한 한 가정의 가장이었다. 임창정은 “아이가 나중에 커서 나에 대해 듣기 시작할 때 부끄럽지 않은 아빠가 되고 싶다는 목표가 생겼다”고 덧붙였다.
# 내 연기의 목표-감독
임창정은 2007년 그 어떤 배우보다 바쁜 한 해를 보낼 듯하다. 개봉을 앞둔 <1번가의 기적> 외에도 촬영을 마친 <만남의 광장>이 있다.
그 외에도 소시민의 일탈을 블랙 코미디 형식으로 그린 <킬러 윤대리> 등 두 작품의 출연이 정해졌다. 한해 모두 4,5편의 영화에 모습을 드러내게 된 셈이다.
영화계의 불황이 예상되는 2007년, 예년보다 훨씬 많은 작품에 출연하면서 임창정이라는 배우의 진가도 함께 선보일 작정이다. 이렇게 끊임없이 무언가 채워 넣으려는 연기욕심 이면에는 임창정이 가지고 있는 명확한 목표가 자리하고 있었다.
임창정은 자기 연기생활 마지막은 감독이라고 주저 없이 밝혔다.
임창정은 “이미 3편의 시나리오를 써서 가지고 있다. 나의 롤 모델은 <시네마천국>의 주세페 토르나토레 감독이다. 그가 만든 <밀레나>와 같은 작품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밀레나>는 이탈리아의 시골 마을을 배경으로 한 소년의 성장기를 담은 영화로 <시네마 천국> 같은 분위기의 영화다. 임창정은 이런 내용을 담은 영화를 자신의 나이가 40세가 넘어서, 대학에서 연출 관련 공부를 마치고 도전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연륜을 쌓는 것은 물론이고 만학의 길도 마다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헛된 말처럼 들리지는 않았다. 배우로서 눈물과 웃음을 그럴듯하게 뒤섞는 재주가 뛰어난 임창정이 자신이 만든 영화로 관객을 만날 날도 머지 않아 보인다.
김성한 기자 wing@sportshankoo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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