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은숙사모(낙원장로교회)
너는 내 운명, 너는 내 운명. 몇 번을 되뇌어도 좋은 말입니다. 아직 못 본 영화지만 얼마 전까지 관심을 끌었던 영화 제목입니다. 남편은 내 운명, 이런 사랑을. 며칠 전 잠든 남편의 얼굴을 내려다보는데, 감사와 감격의 눈물이 나면서 일순간 내 얼굴에 편안한 웃음이 번졌습니다. 우리 부부를 둘러쌌던 많은 일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습니다. 우리 두 사람이 26년 넘게 해피 앤딩을 꿈꾸며 서로서로 많은 노력을 하면서, 지금까지 개인사가 아닌 두 사람의 역사를 엮으려 노력해 왔기에 지금처럼 순간순간 웃으며 살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시아버님의 소개로 선을 보았는데 첫 만남에 “7년 동안 배우자를 위해 기도했는데 너는 내 운명이라는 강한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며 당당하게 프로포즈하여 당황하게 만들던 그이. 만난지 40일 만에 결혼으로 이어져 친구들과 가족 사이에 화제거리가 되었던 철없는 어린 신부. 가까이 있어 보니 서로의 약점들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신혼 초 우리는 상대방을 “내 입맛대로 길들이기 5개년계획”을 세웠답니다. 서로의 이런저런 점을 고쳐 보려고 시도했습니다. 잔소리도 했습니다. 그것이 갈등이었고 불만이었습니다.
어느 날 기도하다가 갑자기 깨달음이 왔습니다. “얘야, 25여 년 동안 나도 못 고친 것을 네가 어떻게 고치려고 그러느냐. 차라리 너나 한번 고쳐 보아라.” 결국 내가 먼저 생각을 바꾸기로 했습니다. 내가 변하니 남편도 변했습니다. 사람은 억지로 길들이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결혼의 목적은 ‘돕는 배필로 서로의 필요를 채워 줌과 허전한 영혼을 채워 줌’입니다. 부부는 떼어 낼 수 없는 공동 운명체인 것 같습니다. 수많은 사람들 중에서 내 사랑의 포로가 되어준 사실을 생각하면 남편은 보통 고마운 존재가 아닙니다. 그러나 사랑한다는 것이 때때로 가슴을 다 비워 낸 것처럼 한없이 쓸쓸합니다. 함께 살면서 사람의 마음 한 쪽 얻어내는 일 또한 참으로 외롭고 섭섭합니다. 또 가끔은 싸우고, 등
도 돌리고, 미워하기도 합니다.
서로 ‘위선 덩어리’라고 눈을 흘기기도 합니다. 남들 앞에서는 침 한번 꿀꺽 삼키고 참을 수도 있는 아주 사소한 문제를 부부라는 이유로 못 참아 하는 일이 얼마나 많은지. 서로 허물없다는 이유 때문에 부담을 갖지 않아도 되는 편한 관계라는 핑계로 발가벗은 감정을 폭발시키는 경우가 얼마나 흔한지 모릅니다. 사실은 함께 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사랑하는 이의 가슴에 남긴 그 많은 상처들을 보듬어 주어야 합니다. 힘들어도 믿음
으로 오래 참아 주고 기다리면 결국 사랑은 결실합니다. 사랑이란 오래 갈수록 처음처럼 그렇게 짜릿짜릿한 것이 아니랍니다.
그냥 무덤덤해지면서 끈끈해지고 그윽해지는 것 같습니다.상처조차 달콤하게 느껴지는 운명적 사랑, 끊어질 듯 끊어지지 않는 기이한 운명과 인연. 이런 연애와 순수한 사랑을 꿈꾸던 내가 중매라는 형식으로 결혼했지만 그 결혼이 ‘운명적 사랑’으로 이어졌습니다. 사랑이 오래되면 평생을 같이하는 친구처럼 어떤 우정 같은 게 생깁니다.
그래도 나는 알콩달콩 연애하다 결혼한 친구가 부럽습니다. “넌 4년 동안 열열한 사랑에 빠져 숱한 염문을 뿌리고 결혼했으니 무척 행복하겠다.?” “행복? 얘, 부부가 사랑 때문에 사는 줄 아니? 애구~그 더러운 정 때문에 의리 때문에 산다. 밤에 잠든 그 인간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
보면 고집스런 주름살에 히긋히긋한 대머리. 그런데 왜 이렇게 가엽고 안쓰러우냐.” 친구의 푸념을 들으며 자꾸 미소를 짓게 됩니다. 저 역시 늘어가는 주름살과 흰머리를 보면서 나처럼 우직한 사람과 살아 준 남편을 생각하면 역시 눈물이 납니다.
숨 가쁜 이민 목회, 바쁘다 보니 서로의 마음 한번 제대로 배려 못해줘서 속상할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 날 위로하기 위해 아주 오래된 기억이지만 어제처럼 선명하게 떠올리며 기억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입덧에 지쳐 탈진한 모습으로 입까지 헤~벌리고 잠든 초라한 내 얼굴 위로 떨어지던 남편의 눈물에 잠을 깬 내게 “여보, 미안해, 미안해.”하며 눈시울이 빨개진 눈을 감추던 그 모습.’ ‘남편의 눈물’ ‘눈시울에 빨개졌던 젖은 눈’이 오랫동안 날 행복하게 했습니다. “여보, 고
마워요. 사랑해 주어서. 이해해 주어서.” 서로 의견이 일치되지 않았거나 미처 나를 배려하지 못하는 남편이 야속해 가슴앓이를 하다 내 맘을 풀고 싶어 먼저 말을 걸면서 “그 때 그 눈물 때문에 네 죄를 사하노라” 오른 손을 뻗어 남편 가슴에 얹고 외치면 능청스럽게 “아멘” 대
답하는 우리는 하나님이 맺어 준 부부입니다. 서로 부족한 부분은 서로 채워 주고, 서로 다른 부분은 서로 이해하면서 함께 사는 당신은 내 운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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