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은행과 한인사회 (4)
미국 대학에서 세미나를 할 때는 친구나 적이 없다. 누구의 연구논문이 발표되든 약한 곳은 얻어맞고 방향이 잘못되었으면 지적이 추상같다. 이슈가 토론을 필요로 하는 것은 서로 뜨겁게 싸운다.
그러나 세미나가 끝나고 방을 나설 때는 다시 평상시의 동료로 돌아간다. 이번 시리즈를 쓰면서 첫 회에서 말씀드렸듯이 필자는 한인사회에서 은행 이사회를 공격을 할 수는 있다고 본다. 그리고 이사들은 행장과 함께 은행의 채산이 나빠지고 결손이 나서 투자 손실을 본 사람들에게서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의무’ 부실로 손해배상 소송을 당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자유시장 경제의 천국인 미국에서 살고 있다. 주주들의 권리로 뽑은 이사들을 한인사회에서 “그만 두시오”할 수는 없다. 본국에서 자주 하듯 여론몰이를 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 된다. 비록 여론의 질타를 받을 만큼 ‘이사로서의 자질’이 없는 분들이라도, 지금까지 한인 은행들이 커온 성과에 대해서 한인사회에서는 그 성과를 인정해야 한다.
사실 이사회의 싸움은 그 안에서 하든, 행장 바꾸기에서처럼 밖에서 보이든 미 주류 대기업(은행 포함)에서도 항상 벌어지고 있다. Proxy 싸움이란 것도 사실 이사회의 싸움인 것이다. 그런데 싸움도 수준과 형식이 있다. 여신 심사위원회처럼 장시간 일해야 하는 경우엔 몰라도, 정기적인 은행 이사회에서는 색깔 있는 드레스 셔츠를 피하고 흰색으로 입고, 회의 내내 재킷을 벗지 않는 이유도 형식이 실질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고, 은행 이사회라는 곳이 안전성과 품위, 보수에 바탕을 둔 진취성, 합리성을 보여서 공신력에 부응하는 최고 의사결정 기구로서의 역할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사회에서 뜨겁게 토론을 하더라도, 그 토론의 외양이 품위에서 벗어나서는 안 되고, 의사 결정은 충분한 토론의 과정을 거친 다음 해야 하고, 일단 다수결로 가결된 것은 승복해야 한다. 이사회의 결정 이후 때때로 소수 그룹이 은행 바깥으로 문제를 가져가는 것을 보는데, 누구에게도 도움이 안 되는 부끄러운 일이다. 풋볼 컨퍼런스 결승전에서 우리는 때때로 심판의 오심으로 이길 팀이 지는 것을 본다. 그 당시 항의를 하지만 모두들 결말에 승복을 하는 이유는,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판’이 깨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면 모든 것이 흉해져 버린다.
이사회의 내부에서 누구누구가 파워 블럭을 형성해서는 그 조직이 건강해지지 못한다. 이슈에 따라 편이 달라져야 건강한 의사 결정을 위한 싸움이 된다. 그리고 은행 내에 이사들을 위한 방이 있어서는 안 된다. 이사들이 있을 방은 회의실이고, 이사들이 들를 수 있는 방은 CEO 행장실이나 CFO 사무실 정도이어야 은행 내에서 잡음이 없다. 그리고 이사들이 이사회가 끝나고 은행 내에 더 머무를 이유가 별로 없다.
은행 일을 하다 보면 항상 어깨를 누르는 무거운 부담을 느끼게 된다. 왜냐하면 은행을 믿고 고객 여러분들이 자신들의 소중한 재산을 갖다 맡기는 곳에서 일하기 때문이다. 이사회나 행장을 비롯한 간부들, 일반 직원들에 이르기까지 모든 뱅커들은 덕목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믿을 수 있는 인품이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낀다. 신용이다.
고객의 신용을 요구하기 위해서는 뱅커들도 신용을 생명으로 살아야 한다. 한인은행 전체의 업그레이드를 위한 조언으로 생각하시고 이 시리즈를 읽어 주셨으면 한다.
이종열
페이스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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