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하탄 32가 한인타운 한복판에 가 보면 한국 고유 의상으로 화려하게 꾸며진 박물관이 있다. 미래문화재단의 이영희 박물관이 그곳이다. 이 박물관은 이름 그대로 지난 30년간 한복과 함께 살아온 이영희(65)씨가 그리고 그리던 꿈과 노력의 결정체다. 이씨는 어려서부터 한복의 우아함과 화려함, 또 그 색깔의 아름다움과 섬세함에 매료돼 평생 한복을 수집하면서 걸어온 외길인생이다.
그는 어릴 적 어머니 슬하에서 어머니가 해준 한복을 즐겨 입었다고 한다. 자라면서는 한복의 장점과 우수성에 감탄, 기회가 있을 때마다 한복의 색감과 질감을 연구 분석해왔다. 어떻게 하면 이 아름다운 의상을 계승해 후세들에게도 전파하고 세계인을 상대로 한국문화 의상의 배경과 그 훌륭함을 알리고 시대에 맞춰 새로운 디자인과 형태를 만들 수 있을까 끊임없이 고심하고 노력했다.
이미 어렸을 때부터 이씨는 어머니가 해주거나 사주는 저고리나 노리개, 또 눈에 띄는 옛날 보자기 등을 보면 색깔이 너무 좋아 늘 그 안을 자세히 뜯어보면서 새로운 형태로 개조할 아이디어를 얻어냈다. 그런 경험과 실생활을 바탕으로 그는 한국 강남에 한복점을 차려 한복을 현대에 맞게 개량해냈다. 그러면서 끊임없이 주위에서 보이는 옛날 한복이나 노리개,
바지, 저고리 등을 보게 되면 하나도 놓치지 않고 사들였다.
그것이 지금 한복을 포함, 갓에서부터 궁중의상에 이르기까지 1,000여 점에 이른다는 것이다. 현재 맨하탄에 소장된 작품 외에도 아직까지 미쳐 가져오지 못한 의상이나 작품들이 한국에 더 남아 있다. 이제 와 생각하면 뉴욕에 박물관을 건립할 정도로 자신의 꿈이 이루어질 줄 알았다면 더 많은 작품들을 소장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매우 안타까워한다.
한복점을 차려놓고 의상을 만들 때마다 이씨는 항상 자신이 어릴 적 입었던 그런 아름다운 색채를 살려내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시장, 공장, 주단 집 등을 돌아봐도 이를 재현하기 어려워 수시로 달려간 곳이 단국대학에 한복 관련 모든 소장품을 기증한 석주선 박사의 박물관이었다.
매일 가다시피 한 그곳에서 그는 석 박사와 함께 한복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옷을 보고 색깔이나 형태를 평가, 분석, 판단하면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곤 했다. 결국 이런 배경으로 오늘날 유행하는 한복의 색깔을 이영희씨가 다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것이 이씨가 꿈을 이루게 된 원동력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또 하나 이씨의 한복에 대한 열의와 심취는 어릴 때부터 커서까지 어머니로부터 받은 영향이 매우 컸다.
세 분의 시어머니를 모신 대갓집 살림살이를 하면서 그의 어머니는 매일 한복을 입으면서 그 사이 사이 딸인 이영희씨의 옷을 늘 한복으로 만들어 입혔기 때문이다. 세라복, 원피스 등이 나왔어도 그의 어머니는 늘 그에게 한복을 해주었다는 것이다. 그것이 지금까지 기억에 남는 것을 이씨는 강조하며 지금 미국에서 자라는 2세들도 한복을 입어봐야 옛 추억도 남고 우리 고유의 전통을 알게 될 것이라고 역설한다. 이씨는 이 점을 강의 때마다 조기교육 주제에서 늘 강조해 왔다고 한다.
아이 보는 데서 엄마도 말로만 하지 말고 실제로 입어봐야 된다는 것이다. 한복의 중요성을 이렇게 늘 강조하면서 이씨는 지난 12년간 연 2회씩 지금까지 24회의 한복 쇼를 유명한 프랑스 파리에서 콜렉숀을 개최해 왔다.
소재는 우리 나라 천으로 동양풍이 물씬 나는 완전히 모던한 형태의 한복으로. 파리인들은 그의 작품을 처음 볼 때 출품작이 모두 ‘기모노’로 알고 있어 이씨는 계속되는 전시회를 통해 그의 작품이 모두 우리의 것임을 알렸다. 이씨는 이 쇼에서 한국고유의 궁중의상을 비롯해 평상복, 절풍, 무녀풍, 전통혼례식 등 5가지 부문으로 작품을 전시했다.
오랑제리에서 이씨의 한복 전시회를 본 프랑스인들은 모두가 너무 아름답다고 경탄을 마지않았다고 한다. 말하자면 그는 한복을 통해 민간 홍보사절 역을 톡톡히 한 셈이다. 파리전시회의 반응을 보면서 그는 언젠가 꼭 한복을 세계문화의 중심도시인 뉴욕에도 내놓아 세계인들의 관심을 끌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의 이런 생각은 결국 2000년도에 이루어진
다. 맨하탄 카네기 홀에서 전시회를 갖게 된 것이다.
오늘날 그의 박물관도 이걸 하면서 뉴욕을 오고 간 것이 바탕이 되었다고 한다. ‘뉴욕이 좋다’ ‘문화의 도시다’ ‘경제, 패션의 도시다’란 말은 많이 들었지만 실제 뉴욕을 오고 가며 이 사실을 피부로 강하게 느껴 마침내 뉴욕에 박물관 건립을 결심하고 올해 실행에 옮긴 것이다. 사실 이씨는 10~20년 전 콜렉숀을 할 때만 해도 꿈을 이룰 것이라고는 꿈조차 꾸지
못한 상황이었다.
만일 그런 생각을 보다 일찍 했더라면 아마도 당시 돈도 많이 벌었던 탓에 더 좋고 가치 있는 것을 많이 모았을 것이라고 한다. 지금의 작품들은 그와 달리 오로지 자신이 좋아하고 아이디어 주는 것만 사서 수집한 것이
라는 것. 사람들은 이런 자신을 보고 모두들 미쳤다 그러는데 실은 이같이 되려면 정말 미쳐야만 할 수 있다고 이씨는 역설한다. 한국에서는 지금 한복점 뿐 아니라 새롭게 한복이 탄생하고 있어 요즘 젊은이들이 선호할 수 있게 우아하고 아름답고 모던하게 만드는데 주력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씨는 오랜 시간 자신의 땀과 노력으로 이룬 이 박물관의 모든 작품들이 모두 자신의 것이 아니라 세계인의 것임을 강조한다. 바램이 있다면 이 박물관이 전시만 해서 돈 몇 푼 주고 슬쩍 보고 가는 곳이 아니라 진실로 동서양의 문화교류가 잘 이루어지는 하나의 문화의 장이 됨으로써 살아있는 박물관으로써의 역할을 할 수 있었으면 하는 것이라고 한다.
이씨는 이런 관점에서 아직 현 상태로는 만족할 수 없지만 그래도 시작이 반이라며 자신이 좋아하는 비전, 즉 ‘꿈을 가져라’ ‘열정을 가져라’라는 말과 같이 박물관에서 의상 전시 뿐 아니라 고전무용과 가야금 연주, 한복에 대한 강의를 통해 세계 속에 우리 문화심기를 계속해서 하겠다고 말한다.
그 이유는 우리 보다 100년이나 먼저 자국 문화로 서양에 침투해 세계 강국이 된 일본과 같이 이제부터라도 열심히 세계에 알리면 30년, 50년 후 세대 때는 우리도 틀림없이 강국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이씨는 덧붙인다. 그만큼 우리 문화가 특이하고 너무 아름다운데다 과학적이고 독창적이기 때문이라며 하나 하나 작품을 살펴보면 정말 우리 조상들이 너무나 지
혜로운 민족이었음을 알 수 있다고 설명한다.
자신이 이 일에 심취된 것도 그런 이유지만 막상 여기서 하다보니 뉴욕은 파리 같지 않게
너무나 지역이 넓고 방대해 아무리 작품을 멋지게 만들어도 조직적인 홍보, 기획력이 없으면 어려움이 많음을 실감한다. 그런 면에서 한인들의 뜨거운 관심과 후원, 정부차원에서의 적극적인 지원이 절실하다고 자신의 힘이 한계에 와 있음을 안타까워한다. 파리에서는 이제 모르는 사람이 없이 ‘너무나 아트적이다’ ‘너무나 멋있다’ 격찬하는데 반해 문화의 도시라는 뉴욕은 오히려 홍보를 하더라도 ‘먼저 가게가 어디 있느냐’ 등의 질문만 하고 문화 예술적인 건 찾지도 않더라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 20여 개국 대사 부인들이 보고 나서 이렇게 아름다운 것은 처음 봤다고 모두가 찬사를 아끼지 않는 것을 보면 절로 힘이 난단다. 이를 계기로 계속 도네이션 받고 알리고 하다보면 앞으로 아마도 3-5년 후면 더욱 커질 것이라고 희망을 내비친다. 이씨는 이제 박물관건립의 꿈은 이루었다. 다음 단계는 색깔이나 옷감의 질이 우수한 우리의 의상을 세계 브랜드로 명품화시키는 것이라고 한다. 머지 않아 그 꿈이 이루어지기를 기대해 본다.
여주영 논설위원
(juyoung@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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