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책방에 가 보면 시사 코너에 부시 대통령에 관한 책들이 즐비하게 꽂혀 있다. 흥미로운 것은 하나 같이 부시를 욕하는 것이고 칭찬하는 책은 눈을 씻고 봐도 찾을 수 없다는 점이다. ‘부시의 거짓말’, ‘거짓말과 거짓말쟁이’, ‘워터게이트보다 나쁘다’, ‘부시 집안과 사우드 집안’ 등등.
이런 반 부시 물결을 타고 인기 상종가를 누리고 있는 영화가 있다. 마이클 모어 작 ‘파렌하이트 9/11’ 그것이다. 다큐멘터리 형식을 빌린 이 작품은 부시는 거짓말을 수시로 하는 무능한 멍청이라는 것이 그 주제다.
지난 주말 미 전역에서 개봉돼 다큐멘터리로는 사상 최고 기록인 2,200만 달러를 벌어들인 이 영화 상영관에 가 보면 부시를 미워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정열적으로 그를 증오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시종 일관 맹하거나 우스꽝스런 표정으로 앉아 있는 부시가 나올 때마다 야유가 터지고 부시를 조롱하는 대목마다 박수갈채가 나온다. 영화 상영 중 주위에서 떠들면 제지하는 것이 보통인데도 유독 이 영화만은 관객 모두가 일심동체가 돼 야구 경기 응원이라도 하듯 신이 난 모양이다.
시민이 정치 지도자를 비판하는 것이 민주주의 사회의 일원으로서 갖는 특권이다. 영화 감독이 이를 주제로 한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것 또한 연방 헌법이 보장한 권리다. 그러나 다큐멘터리라면 진실을 규명하려는 최소한의 노력이 보여야 한다. 그러나 이 영화는 지난 4년 간 일어난 일의 사실 왜곡으로 가득 차 있다.
우선 플로리다에서 제대로 재검표를 했으면 고어가 이겼을 텐데 주지사인 동생과 연방 대법원의 도움으로 부시가 부당하게 당선됐다는 주장이다. 이는 당사자인 고어부터 민주당 지도부가 오래 전 이미 승복한 사안이다. 9/11이 터지자마자 부시가 집안과 오랜 친분이 있던 빈 라덴 일가를 미국 밖으로 나가게 해줬다는 것 또한 사실의 왜곡이다. 이 결정은 내린 사람은 부시가 아니라 이 영화에서 영웅으로 묘사되고 있는 부시 비판자 클라크다.
그러나 이 영화 왜곡의 백미는 전쟁 이전의 이라크를 행복한 사람들이 오순도순 살아가는 동화 속의 나라로 묘사한 것이다. 김정일과 쌍벽을 이루는 사상 최악의 독재자 사담 치하에서 30만 명이 고문 끝에 암매장 당하고 수많은 무고한 시민이 팔다리가 잘라져 나간 병신이 된 사실을 모어는 아는가 모르는가.
모어 자신도 진실 추구가 아니라 올 가을 선거에서 부시를 몰아내는 것이 이 필름의 목적임을 시인한 바 있다. 누구나 자기 의견을 가질 권리는 있지만 자기 입맛에 맞게 사실을 왜곡할 권리는 없다. ‘파렌하이트 9/11’은 다큐멘터리라기보다는 정치 선전 선동물이라고 부르는 게 정확한 표현이 아닌가 한다.
<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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