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 무장단체에 납치되었던 터키인 3명이 풀려났다. 납치범들은 성명서에서 “인질들이 더 이상 이교도들에게 협력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고 석방 이유를 밝혔다. 그렇다면 김선일씨는 비협력을 맹세하지 않았기 때문에 살해했다는 말인가. 그는 살아남기 위해 부시와 미국을 비난하고 노무현 대통령에게 한국군 파병을 중지해 달라는 호소까지 했었다.
더구나 김선일씨의 살려달라는 애원은 지금까지 인질사에서 찾아볼 수 없는 비통한 절규였기 때문에 테러범들의 입장에서는 납치 목적을 달성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그런데도 참수했다는 것은 납득이 되지를 않는다. 현지 대사관이 김씨의 납치를 몰랐다는 것도 어불성설이고, 이 사건이 모종의 정보활동과 관련돼 김씨가 희생양이 된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많은 사람들이 김선일씨의 최후를 담은 동영상을 인터넷에서 본 모양이다. 나도 그 중 한 사람이다. 그가 참수되는 장면은 차마 눈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잔인했다. ‘천인공노할 만행’ ‘극악무도한 악당들’이라는 단어로도 표현이 부족하다. 김선일씨가 무릎 꿇고 뒤에 4명의 복면괴한이 서있는 사진을 누구나 신문에서 보았을 것이다. 이 가운데 오른쪽에서 두 번째 검은 복면을 한 자(왼쪽 흰 복면은 성명서 낭독)가 참수를 집행하는데 이자만은 한국 정부가 몇십 년이 걸리더라도 현상금을 걸고 추적하여 법정에 세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스라엘이 나치 살인자 아이히만을 찾아내 법정에 세우지 않았는가.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김선일씨와 터키인들을 납치한 ‘알타우히드 알지하드’는 이슬람 광신자 단체로 이라크인이 아닌 요르단, 시리아인들로 구성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문제는 이들이 테러행위를 이슬람 신앙의 연장으로 해석하고 있다는 점이다. 터키인 석방에서는 “우리 형제인 터키의 이슬람교도들을 위해 이 인질들을 집으로 돌려보낸다”고 생색을 낸 반면 김선일씨 살해 순간에는 미친 듯이 “알라후 아크바!”(신은 위대하다)를 외쳐대며 칼을 휘두르고 있다. 이들이 무슬림 이미지에 먹칠을 하고 있는데도 이슬람 종교 지도자들이 왜 규탄하지 않는지 이해가 안 된다. 이 단체가 자신들의 테러행위를 성전(지하드)으로 해석하는 한 이라크에서의 민간인 참수는 계속될 것이고 한국인들에게 ‘제2의 김선일’ 비극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공수부대를 보내 이들을 싹쓸이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가만있자니 분해서 못 견디겠다고 울분을 토하는 한국인들을 인터넷에서 많이 본다. 어떻게 하는 것이 제대로 대응하는 자세일까.
한국인이 월드컵 응원과 대통령 선거에서 세계에 보여준 것이 있다. 바로 촛불시위다. 김선일씨 비극을 계기로 ‘참수 금지운동’을 세계에 호소하는 캠페인을 편다면 그의 희생도 헛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인권운동이기도 하다. 그런데 지금 한국에서 펼쳐지고 있는 촛불시위는 한국군 파견 반대와 미군 이라크 철수를 외치고 있으니 초점이 좀 빗나간 것 같다. 우선 테러단체의 비인도적인 잔인성부터 규탄하고 난 후 파병 반대와 미군 철수를 주장하든지 말든지 할 일이다. 먼저 할 일이 있고 나중에 할 일이 있는 법이다. 김선일씨를 참수하는 테러범들의 잔인성을 동영상으로 목격하고도 구호는 오히려 테러범들의 의도에 부합하는 성격을 띠고 있으니 개탄할 노릇이다. 분노의 물줄기가 엉뚱한 곳으로 흐르고 있다.
이철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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