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 주필의 테마여행
대선 현장에서
부산과 대구에 가보면 두 번 놀란다. 거리에 너무 선거분위기가 없다. 플래카드도 당사에만 걸려 있을 뿐이다. 그러나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면 이들의 선거열기가 지나칠 정도로 뜨겁다. 지금의 부산과 대구 분위기는 왕년의 광주, 목포와 비슷하다. 세상이 바뀌었다는 것이 실감날 정도다. 만년 여당을 하던 경상도가 지금은 핍박과 지역차별을 외치고 있으니 말이다.
대구 사람들은 민주당 노무현후보가 여론조사에서 계속 리드하고 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는 표정이다. 그러면서도 한나라당 이회창후보가 승리할것이라고 장담하고 있다. 이유는 노무현바람은 거품이고 이회창지지는 거품이 전혀 없는 알짜라는 것이다.
모든 물체의 운동에는 반드시 반동이 따르게 마련이다. 이번 선거에서 이회창후보의 당선이 거의 틀림없다는 것이 대세로 흐르니까 노무현선풍이 일어난 것이고, 노무현선풍이 일어나니까 영남표 결집이 더욱 굳어지는 현상을 빚고 있다. 부산과 대구의 이회창지지자들은 열성을 넘어 극성이다. 주변사람들에게 선거당일 기귄하지 말도록 확인하는가 하면 아직 마음을 결정 못한 유권자들에게는 “이회창을 찍어달라”며 사정조로 부탁한다. 누가 시켜서 하는 일이 아니다. 자원봉사다.
대구에서 기자와 만난 박모씨는 결혼 20주년 기념으로 부인과 함께 15일부터 30일까지 해외여행하는 스케줄을 짜놓았었으나 노무현의 상승기세를 보고는 투표 다음날로 여행을 미뤘다고 했다. 이회창을 찍기 위해서다. 또 부산에서 기자와 저녁을 함께 한 어느 인사는 자신의 동생이 17일 암수술을 하게되어 있었는데 선거 다음날인 20일로 미루었다고 했다. 놀라운 일이다. “이건 지나친 지역편견 아니냐”고 했더니 호남과 영남에서의 이회창대 노무현의 지지도 현황을 비교 설명 했다.
MBC방송과 KRC 리서치센터 공동 여론조사에 의하면 영남에서의 이회창대 노무현 지지율은 ▲대구 54.8 : 19.1 ▲부산 42.2 : 28.1로 나타났다. 반면 여론전문조사기관 TNS에 의하면 이후보와 노후보의 지지율은 ▲전남 3 : 85 ▲전북 9 : 80 으로 집계되어 있다. 누가 더 지역편견이냐는 것이 이 인사의 반격이었다.
부산에서 노무현후보 지지도가 대구보다 높은데 대해 어느 노무현지지자는 이렇게 말했다. “ 노무현은 그동안 부산에서 버린 자식이었습니다. 시장, 국회의원선거에서 4번이나 떨어졌어요. 그런데 어느날 자력으로 성공해서 돌아온 것입니다. 부산사람인 그를 더 이상 냉대할 수가 없습니다.”
이에대해 이회창지지자는 다음과 같이 반론한다.
“노무현에 동정은 가지만 지난번 선거에서 겪은 이인제교훈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이회창 개인을 지지하는 것이 아닙니다. 정권을 바꾸기 위해서는 이회창지지 이외에는 대안이 없기 때문입니다 “
결국 이번 대통령선거도 종반전에 접어들어 열기가 피크에 이르자 지방색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두후보는 ‘3김시대 청산’을 외치면서 3김시대의 악습에서는 벗어나지 못하는 모순을 보이고 있다. <부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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