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가 나기 3일 전에 이미 무주구천동에는 이북에서 내려온 공산군이 아니라 남한에서 살고 있던 공비들이 쳐들어 왔다. 나이가 어려서 그 사람들이 무섭지 않았다. 우리 집은 학교 옆 교장 사택이라 민가와 떨어져 있고 학교 건물 안에서 그들이 주둔하고 우리 집은 장교 숙소로 쓰면서 같이 살았다.
가을이 되니 무주구천동 임자 없는 밤나무 산에는 밤이 익어서 휘어져 아무나 산에 가면 한 가마니를 주워올 수 있었다. 밤나무 산 주인, 잣나무 산 주인이 피난을 가서 주민들은 날마다 산에 가서 밤을 주워오고 잣도 주워왔다.
우리 아버지는 그 무주구천동에 하나밖에 없는 학교 교장선생님인데 인민군이 와서 잡혀갔다. 그러나 “그 사람은 법이 없어도 되는 사람이다” 하여서 풀려 나와서 “어디로 피난을 가느냐. 오히려 여기가 안전하다”고 피난을 안 갔다. 무주구천동은 어느 때보다 평온한 여름을 지냈다.
8월 말에 들어서면서부터 많은 인민군들이 줄을 이은 행렬을 보게 되고 분주하게 다니는 것이 잦아지더니 우리 집에 다시 그들이 와서 잠을 자고 갔다. 다음날에는 그들은 다른 데로 이동하는 것을 보았다. 몰려 왔다갔다하는 것이 무슨 변화가 오는 모양이었다.
어느 날 아버지가 매일 쓰는 일기를 그들이 보았다. 아버지가 오늘은 그들이 소를 몇 마리 잡아가고 또 오늘도 돼지를 몇 마리 잡아가고 라고 쓴 것을 보고 세 사람 중에 한 사람이 우리가 언제 소를 잡아가고 돼지를 잡아갔느냐 하며 죽인다고 아버지에게 총을 겨누었다. 아버지는 사색이 되어 벌벌 떨고 있었다. 네 살 먹은 동생은 울고 있고, 언니와 엄마는 살려달라고 잘못했노라고 빌고 또 빌었다.
그는 우리를 보더니 내일 모레 다시 올 테니 “우리와 인민공화국을 위해 일을 하시오. 데리러 올 테니 기다리시오” 하고 갔다.
지금도 6.25 하면 총을 아버지에게 겨누고 죽이려고 하던 병사가 생각이 난다. 그 밤으로 아버지는 산으로 숨어서 무주구천동을 빠져 나와서 대전으로 갔다. 같이 갈 수가 없어 남아 있던 우리 식구들에게 군인은 찾아와서 언니를 밤마다 데리고 나가서 위대한 인민군에 일하라고 위협을 하여서 언니와 나는 다시 그들을 피해서 대전으로 3일을 걸어서 나왔다.
엄마는 어린 동생과 같이 나올 수가 없어서 무주구천동에 있었다. 무주구천동은 통제구역이고 인민군 지역이 되어 있었다.
한겨울이 되어, 그곳은 인민군이 쫓겨가고 잔당들이 남아서 낮에는 한국군인이 밤에는 인민군이 사는 동네가 되었다. 공비 소탕작전으로 정부군이 12월에 들어오면서 마을 앞에 있는 젊은이에게 지휘관이 물어보았다. 이곳에 “공비가 있느냐” 묻자 “아무도 없습니다” 하였다.
밤에는 공비가 마을에 내려와서 밥해 먹고 새벽이면 떠나고 아침이면 정부군이 오니까 그 젊은이는 그렇게 말을 했는지도 모른다. 결국은 남아 있던 공비의 총에 앞장서서 들어오던 지휘관은 총을 맞고 쓰러지고, 그 젊은이는 그 자리에서 총살당했다. 마을 전체는 빨갱이로 몰려 매서운 겨울 눈밭에 온 주민이 한나절동안 무릎을 꿇고 앉아 죽음을 기다리다 기적적으로 죽음을 모면했다.
그 아름답던 산천이 폐허가 되고 황폐한 그 곳을 다음해 나와 엄마는 파묻어 놓은 세간들을 가져오면서 누가 이렇게 만들었는가. 이 아름다운 강산, 다래와 머루가 익어가고 밤나무 잣나무가 하늘을 덮고 진달래꽃과 밤이면 반딧불로 아름답던 강산이 아니던가 슬퍼했다.
그 때의 아픈 마음을 회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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