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이 나에 대해 모를 수도 있는 세 가지가 있다. 나는 키가 큰 여성이다. 맨발로 6피트 2인치다. 웃음소리는 크고, 솔직히 말해 귀를 찢을 듯 날카롭다. 그리고 나는 가구에게 절대 사과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2026년 커먼웰스 단편소설상 지역 부문 수상작 다섯 편 가운데 하나인 ‘숲속의 뱀(The Serpent in the Grove)’의 주인공 마샤 이모에게 강하게 공감했다.
작품은 그녀를 이렇게 묘사한다. “가구에게 절대 사과하지 않는 여자들 특유의 덩치였고, 그녀의 웃음은 들보 위 먼지를 털어낼 만큼 우렁찼으며, 아이를 난간 끝에서 달래 내려오게 할 정도로 부드러워질 수 있는 목소리를 가졌다.”
물론 농담이다. 누구도 이런 바로크풍의 난삽한 문장 속에서 자신을 발견할 수는 없을 것이다. 마치 작가가 수많은 소설과 아마도 브리태니커 백과사전까지 섭렵했지만, 정작 현실 세계의 인간들과는 한 번도 교류해 본 적이 없는 것처럼 읽힌다. 그리고 그것이 사실일지도 모른다.
작가 이름은 자미르 나지르로 표기되어 있지만, 외부 검증에서 높은 신뢰성을 인정받는 인공지능 탐지기 팽그램(Pangram)은 이 작품이 100% AI가 작성한 것으로 판단했다. 공상과학 소설가 제임스 유가 다른 수상작들도 팽그램에 돌려본 결과, 그중 두 편 역시 전부 또는 상당 부분이 AI에 의해 작성됐을 가능성이 높다는 결과가 나왔다. 이 작품들에도 비슷하게 ‘거의 의미가 통하는 듯한’ 은유들이 등장한다.
단편소설 대회를 주관하는 커먼웰스 재단은 수상자들을 계속 옹호하는 입장으로 보인다. 켈시 파이퍼는 훌륭한 에세이에서 이렇게 설명했다. “신뢰만으로 문예지를 운영할 수 있는 시대는 끝났다. AI 원고를 허용할 것인지, 아니면 걸러낼 것인지를 결정해야 한다.”
파이퍼의 말은 옳다. 그리고 나는 그의 결론을 더 잘 표현할 수 없으므로, 대신 이런 질문을 던져보고 싶다. 왜 우리는 작가가 탄소 기반 생명체인지, 아니면 실리콘 기반 시스템인지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가? 많은 작가와 독자들은 답이 자명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만약 팽그램의 판단이 맞다면, “문학 공동체에 대한 전문성, 열정, 그리고 탄탄한 집필 경력”을 이유로 선정된 커먼웰스 심사위원들은 상의 과반수를 기계가 쓴 작품에 수여한 셈이다. 그렇다면 이 공인된 전문가들은 인간이 쓴 작품들을 탈락시키고 대신 ‘AI 잡문’을 선택한 것이 된다. 최근 블라인드 테스트에서 수상 작가들의 작품 발췌문보다 AI가 생성한 문단을 선호했던 수많은 뉴욕타임스 독자들 역시 마찬가지다.
이는 많은 AI 비판자들이 문제를 거꾸로 보고 있음을 시사한다. AI 글쓰기가 문제라면, 그것은 인간이 읽기에도 부적합한 형편없는 쓰레기이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어떤 특정한 면에서는 너무 뛰어나기 때문이다. 그것은 문학계의 패스트푸드와 같다. 편리하고, 저렴하며, 놀라울 정도로 일관되고, 우리의 쾌락 중추를 자극하도록 집요하게 최적화되어 있다.
물론 AI는 황당한 은유와 기이한 환각을 만들어낸다. 왜냐하면 AI 모델은 인간의 모든 텍스트는 갖고 있지만, 인간의 맥락은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반면 AI는 가독성을 최적화하는 데 있어서는 매우 뛰어나다. 문체적으로도, 구조적으로도 그렇다. AI 소설은 인간이 쓴 작품보다 대체로 더 매끄럽고, 더 긴밀하며, 심리적으로 더 단순하다. 주제를 노골적으로 설명하고, “군더더기가 적은 단선적 서사”를 구축하며, 도덕적으로 모호한 인물도 훨씬 적게 등장시킨다.
이러한 특징은 AI 작성으로 의심된 세 편의 작품에는 들어맞지만, 인간이 쓴 것으로 분류된 두 편에는 해당되지 않는다. 그리고 이것은 많은 독자들이 소설에서 원하는 것이기도 하다. 아마 자신들의 문학적 안목을 자부하는 사람들 중 일부조차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결국 AI가 이런 문체를 우연히 발전시킨 것은 아니다. 인간 독자들이 보상해 준 방식대로 글을 쓰고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누군가는 이렇게 주장할 수도 있다. 문제는 전문 작가들만의 문제일 뿐이라고. AI가 독자들이 원하는 것을 제공하는 데 무슨 문제가 있다는 것인가?
하지만 패스트푸드와 마찬가지로, 사람들이 지금 원하는 것이 반드시 장기적으로 그들에게 좋은 것은 아니다. 새로운 읽을거리가 대부분 소수의 AI 모델들에서 나온다면 그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이를 ‘획일적인 사고방식의 확산’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나는 AI 글쓰기가 대규모 인명 피해를 초래할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단지 생산성이 높은 단일 작물에 의존하기보다 다양한 작물을 재배하는 것이 더 바람직한 것처럼, 다양한 출처에서 나오는 여러 아이디어를 길러내는 것이 더 낫다는 뜻이다. 하나의 거대한 대상에 모든 것을 걸면 단일 실패 지점이 생기기 때문이다.
물론 획일적인 사고방식의 확산이 AI만의 문제는 아니다. (최근 사회정의 정치학으로의 무모한 제도권 돌진을 떠올려 보라.) 그러나 전체주의 운동들의 최선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인류는 언제나 독특한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의 건강한 비축분을 유지해 왔다. 동일한 방대한 인간 텍스트 말뭉치로 학습되고, 동일한 좁은 범위의 법적 규칙과 문화적 규범에 맞춰 조정된 기계들에게 우리의 인지적 작업을 지나치게 넘겨줌으로써, 그런 자산을 잃어버린다면 안타까운 일일 것이다.
바로 그것이 AI 소설의 문제다. 인간의 과거 글쓰기를 가중평균한 결과물에 개인적 경험이라는 발효제가 더해지지 않으면, 무난한 작품은 만들기 쉽지만 잊을 수 없는 작품은 만들기 어렵다. 그래서 나는 AI가 소설, 시사 평론, 박사학위 논문을 지배하는 세상을 두려워한다. 우리에게 인간 작가가 필요한 이유는 AI가 지나치게 많은 기상천외한 은유를 제공하기 때문이 아니다. 인간 작가가 필요한 이유는 AI가 너무 적은 기상천외한 아이디어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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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건 매카들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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