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동욱, ‘담배를 피는 DW’, 2019. [아트스페이스휴 제공]
파주출판도시의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에서 현재 서동욱, 서상익, 윤미류 3인의 인물화전이 열리고 있다. 이 작가들은 인물화를 통해 밀레니엄 이후 우리의 삶과 현실을 은유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 가운데 서동욱 작가의 작품 활동은 큰 주목을 받아왔다.
그는 지난 20여년간 인물화 분야의 새로운 변화를 이끌었다. 집단이 아닌 불안과 고독을 체감하는 고립된 개인의 내면과 정서를 매력적으로 표현해왔다. 인물과 공간 사이에 흐르는 미묘한 긴장감을 멜랑콜리한 분위기로 구현해냄으로써, 인물화에 대한 대중과 미술인의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사진적 리얼리즘이 닿지 못하는 회화 고유의 서정성과 깊이를 성취했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인물화는 사실적 외형의 재현을 넘어선 내면의 심리와 실존의 조건을 탐구한다. 사진과 디지털 이미지가 외형을 즉각적으로 복제하는 시대에 회화만이 가능한 '내면의 심연'과 '심리적 에너지'를 포착한다. 기계복제 시대의 이미지 속에서, 작가들은 전통적 수작업의 경험을 통해 화가와 모델이 공유한 시간을 캔버스 위에 쌓는다. 미디어의 시각적 자극에 노출된 현대인에게 이들의 작품은 '침묵의 대화'와 함께 타인의 얼굴을 통해 관객 자신의 내면을 비추는 성찰적 공간을 제시한다.
인물화는 풍경화보다 훨씬 이른 시기부터 인류의 역사를 기록해 왔다. 고대 제국과 민족 국가의 형성기에는 거대한 군상과 전쟁화를 통해 국가 정체성과 통치자의 권위를 공고히 했다. 르네상스에 이르러서는 자본가 계급의 부상과 함께 '개인'의 가치가 발견되었고, 이는 부와 명예를 표현하는 초상화의 황금기로 이어졌다. 당시 인물화는 부를 과시하고 귀족적 지위를 증명하는 상징물이었다.
이후 오랫동안 전성기를 구가하던 인물화는 사진의 등장으로 견고한 지위를 상실했다. 사진은 인물의 외형을 즉각적이고 사실적으로 대체했고, 20세기 현대미술에서 인물화의 비중은 급격히 줄어들었다. 역설적으로 이러한 위기는 인물화의 본질에 대한 근원적 질문으로 이어졌다.
루시안 프로이드는 거친 질감으로 인간의 고독한 육체를 드러냈고, 프랜시스 베이컨은 해체된 형상을 통해 인간의 본질적인 공포를 포착했다. 사진이 재현할 수 없는 '내면의 진실'과 심리적 심연을 회화적 언어로 파고든 것이다.
21세기, 디지털 정보로 치환된 이미지의 시대에 인물화는 다시 한번 전환점에 서 있다. 스마트폰 화면 속 인물들은 매끈하고 즉각적이지만, 결코 깊이 있는 응시를 허락하지 않는다. 이번 전시의 작가들은 가벼운 이미지의 홍수 속에서 '회화적 인물'이 갖는 무게감을 회복시키려 한다. 많은 화가들이 일상의 주변인들을 날카로우면서도 따뜻한 시선으로 때로는 냉소적인 관찰자의 눈으로 그려내어, 기술이 줄 수 없는 인간적 연대감을 형성했던 것과 맥락을 같이 한다.
그간 한국 미술계에서는 미국의 엘리스 닐이나 영국의 데이비드 호크니와 같은 세계적 대가 반열에 오른 인물화가가 드물었다. 우리 미술계가 시대정신이나 실존적 고뇌를 담아내기보다 기술적 재현과 화풍의 유행에 치중했던 경향 탓이다. 미메시스와 카메라타의 작가들이 보여주듯, 동시대적 감수성과 작가 고유의 회화적 문법이 결합한다면 인물화는 다시금 우리 시대를 비추는 가장 예리하고도 정직한 거울이 될 수 있다.
동시대 미술에서 인물화의 정수는 형상의 완벽한 재현이 아니라 화가와 모델, 그리고 관람객 사이에 흐르는 '침묵의 대화'를 포착하는 데 있다. 디지털 문화에 익숙한 세대에게 타인과 대화 없이 대상을 바라보는 ‘침묵의 응시’는 낯설게 느껴질 수 있으나, 이는 화가와 모델의 관계가 지닌 독특한 정서적 공유를 환기시킨다. 화가와 모델은 정보의 전달보다 같은 시간과 장소에 함께 존재한다는 그 자체에 의미를 두며, 길고 느슨하지만 섬세한 공감을 이어간다.
즉각적인 반응과 자극을 강요하는 디지털의 속도에 지친 우리에게, 캔버스 위 인물들이 건네는 고요한 응시는 인간 존재의 본질을 되묻게 하는 소중한 통로가 된다. 인물화는 이제 단순한 그림을 넘어, 타인의 얼굴을 통해 나의 내면을 마주하는 성찰의 장을 마련하고 있다.
<
김노암 미술 평론가>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