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법무부, ‘연준 청사’ 문제삼아 파월 수사…이면에는 금리 극한대치
▶ 트럼프, 파월에 조롱·비난 퍼부으며 연준에 측근 배치…파월, 이례적 공개 반박
▶ 여당인 공화 일부 의원들 수사에 이견 표명…재무장관도 “엉망됐다” 언급 보도

연준 청사 방문한 트럼프 대통령(왼쪽)과 제롬 파월 연준 의장[로이터]
미국 중앙은행 수장이 대통령에 정면으로 맞서는 사상 초유의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중앙은행의 고유 기능인 통화정책을 두고서가 아닌, 중앙은행의 '연방자금 유용' 의혹을 놓고 충돌한 이례적인 형국이다.
오는 5월 퇴임하는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이 동영상을 통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 공개적으로 맞선 모습도 전례 없는 일이다.
연방정부와 연준 수장의 충돌이 미국 경제는 물론 세계 금융시장에 부정적 영향을 준다는 우려가 여당인 공화당 진영에서도 제기되면서 사태의 추이가 주목된다.
◇ 법무부, '연준 청사 개보수' 고리로 수사 개시…파월 "이건 구실" 반발
사태의 발단은 파월 의장이 자신을 겨냥한 트럼프 행정부의 형사소추 움직임을 공개하고 이를 작심 비판하면서부터다.
파월 의장은 11일 공개한 영상에서 "연준 청사 개보수에 대한 지난해 6월 나의 의회 증언과 관련해 법무부로부터 대배심 소환장과 형사 기소 위협을 지난 9일 받았다"고 밝혔다.
연준 청사 개보수 비용에 대한 수사가 개시됐다는 것이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이 파월 의장을 비난할 때 주요 소재로 삼았던 사안으로, 그는 지난해 7월 현직 대통령으로선 이례적으로 워싱턴 DC에 있는 연준 청사의 개보수 현장을 직접 방문하기도 했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예산이 약 31억달러 정도인 것 같다. 약간 올랐다. 사실 많이 올랐다"면서 "27억 달러였던 게 31억달러가 됐다"며 공사비 증액 문제를 지적했다.
미 법무부 대변인은 팸 본디 장관이 검사들에게 "납세자 돈을 남용한 모든 사안을 우선적으로 수사하라"고 지시했다고 12일 월스트리트저널(WSJ)에 전했다.
그러나 연준 청사 개보수 비용 문제는 구실일 뿐, 이면에는 트럼프 대통령의 금리 인하 압박에 저항하던 자신을 향한 '보복'이자 '압박' 성격이라는 게 파월 의장의 판단이다.
파월 의장은 "이 전례 없는 행위는 행정부의 위협과 지속적인 압박이라는 맥락에서 봐야 한다"면서 "이것은 구실"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형사 기소 위협은 연준이 대통령의 선호를 따르기보다 공공의 이익에 가장 부합한다고 판단되는 방향에 따라 금리를 결정해 왔기 때문에 발생한 결과"라고 주장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이후 '연준의 독립성과 통화정책의 중립성'이라는 가치를 배격한 채 노골적인 금리 인하 압박을 이어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기준금리가 1%까지 낮아져야 한다는 주장을 폈지만, 파월 의장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마이웨이' 행보였다. 트럼프 대통령 2기 재임 기간 연준은 금리를 세 차례, 0.75%포인트(p) 인하해 현재 3.50∼3.75%다.
이런 파월 의장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은 늘 '너무 늦은 자'(Mr. Too late)라고 불렀다. 조 바이든 전 대통령에게 '졸린'(Sleepy)이라는 수식어를 붙였던 것처럼 조롱을 일삼은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때 파월 의장의 '해고'까지 검토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파월 의장 후임을 물색하는 과정에서도 "멍청하다"는 등 거친 표현으로 그를 향한 비난을 빼놓지 않았다.
법무부의 파월 의장 기소 움직임은 트럼프 대통령 입장에서 차기 연준 의장에게 자신의 의견을 따르라는 메시지를 발신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WSJ 인터뷰에서 연준 의장이 누가 되든 "(통화정책 결정에) 내 목소리가 경청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트럼프 대통령의 개인 변호인 출신인 본디 장관의 법무부가 대통령에 의해 사유화·도구화했다는 지적과 함께, 법무부 업무의 공정성과 형평성을 둘러싼 논란도 점점 커질 조짐이다.
트럼프 2기 출범 후 법무부는 제임스 코미 전 연방수사국(FBI) 국장, 러티샤 제임스 뉴욕주 법무장관, 존 볼턴 전 국가안보보좌관 등 트럼프 대통령의 정적으로 불리는 인사들에 대한 보복성 수사와 기소 등으로 논란을 야기한 바 있다.
◇ 트럼프 연준 장악 노골화에 공화 일각 우려…강경파 '오버액션' 가능성
트럼프 대통령은 금리뿐 아니라 연준 인사에도 그의 권한을 사용해 깊숙이 관여했다. 이 역시 파월 의장을 향한 압박 성격이었다.
'매파'(통화긴축 성향)인 리사 쿡 연준 이사를 미 행정부가 제기한 주택담보대출 사기 혐의로 전격 해임 통보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쿡 이사는 법원에 이의를 제기해 현재까지 자리를 유지하고 있다.
매파로 꼽히던 아드리아나 쿠글러 전 이사가 조기 사퇴한 자리에 측근인 스티븐 마이런 이사를 임명했고, 후임 의장 역시 트럼프 대통령의 측근 가운데 '비둘기파'(통화완화 성향) 인사가 지명될 가능성이 크다.
이 같은 맥락으로 보면 파월 의장에 대한 수사 개시는 향후 연준의 빠르고 큰 폭의 금리 인하를 압박하는 동시에 연준의 인적 구성을 재편하려는 일환으로 해석된다.
현재 연준 이사 7명 중 트럼프 대통령이 임명한 인사는 3명이다. 파월 의장은 5월 의장 임기가 끝나지만, 그의 이사직은 2028년 초까지 유지된다. 트럼프 대통령으로선 그가 이사직을 사임하기를 원하는 것으로 보인다.
금리를 결정하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는 연준 이사 및 각 지역 연방준비은행 총재 5명(뉴욕은 고정)으로 구성되는데, 트럼프 대통령은 FOMC에 자신의 금리 인하에 동조하는 인사를 최대한 많이 채워넣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파월 의장이 자신을 향한 '사법적 위협'에 공개적으로 반발한 것은 트럼프 대통령의 퇴진 압박에 굴복하지 않겠다는 의미로 읽을 수 있다.
파월 의장은 "공직은 때로 위협에 굳건히 맞서는 것을 요구한다"며 "나는 미국 국민에게 봉사하겠다는 성실함과 헌신을 유지한 채 상원이 (인준을 통해) 내게 맡긴 일을 계속 수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파월 의장을 겨냥한 수사 개시 소식이 알려지자 공화당 일부 의원들, 그리고 스콧 베선트 미 재무장관까지 우려를 제기하는 등 후폭풍이 일고 있다.
상원 은행위원회 소속 톰 틸리스 의원(공화·노스캐롤라이나)은 엑스(X·옛 트위터)에 올린 글에서 법무부의 수사 배경에 의문을 제기하며 "이 법적 사안이 완전히 해결될 때까지 연준 의장 공석을 포함해 어떤 연준 지명자의 인준에도 반대할 것"이라고 밝혔다.
상원 은행위 소속 케빈 크레이머(공화·노스다코타) 의원도 이날 파월 의장이 "범죄자라고 믿지 않는다"며 옹호했다.
상원 은행위는 차기 연준 의장 지명자가 인준 절차를 밟는 곳이다. 이들 공화당 의원이 인준에 동의하지 않을 경우 트럼프 대통령의 구상도 차질이 불가피하다.
게다가 최근 공화당에선 베네수엘라에 대한 추가 군사공격 제한, '오바마 케어'(건강보험개혁법·ACA) 연장을 놓고 상·하원의 이탈표가 나왔다는 점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도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스콧 베선트 재무부 장관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파월 의장 수사가 상황을 "엉망으로" 만들었으며, 금융시장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의견을 개진했다고 온라인 매체 악시오스가 소식통들을 인용해 보도했다.
파월 의장 수사와 관련한 논란이 지속될 경우 트럼프 대통령이 임박했다는 취지로 언급해온 차기 연준 의장 후보자 지명도 늦춰질 가능성이 일각에서 거론되고 있다.
또 트럼프 대통령이 11일 NBC방송 인터뷰에서 파월 수사에 대해 모른다고 밝힌 가운데, 행정부 내 강경파의 '오버 액션'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어 보인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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