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년반 동안 2천400여건·1천380억 피해 신고…수천만원 피해 사례도 다수
▶ 한국인 채용·AI 활용해 접근…최근엔 코인투자 권유 수법 유행 심리적 충격에 피해 공론화 꺼려 실제 규모는 더 클 수도

딥페이크 인물을 이용한 로맨스 스캠 영상 [울산경찰청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최근 캄보디아 사태를 계기로 이른바 '로맨스 스캠'(연애빙자사기)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로맨스 스캠에 대해 "왜 당하는지 이해가 안 된다"는 반응도 적지 않지만, 인공지능(AI) 기술 발달과 맞물려 사기 수법이 진화하면서 피해 규모가 급증하는 상황이다.
정부는 최근 캄보디아에 구금 중인 120억원대 로맨스 스캠 총책 한국인 부부 송환을 요청하기도 했다.
로맨스 스캠의 피해 실태와 다양화하는 수법 등을 확인해봤다.
◇ 최근 1년 반 새 2천400여건 피해 접수…1천380억원 규모
로맨스 스캠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나 데이팅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앱) 등을 통해 접근해 일정 기간 대화를 나누며 애정을 쌓은 뒤 투자, 송금 대행, 병원비 등을 명목으로 금전을 요구하는 사기 수법이다.
이런 유형의 사기 범죄는 2020년부터 본격화한 것으로 보인다. 피해가 급증하면서 경찰청은 지난해 2월부터 별도로 피해 규모를 집계하고 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송석준 의원이 경찰청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경찰에 접수된 로맨스 스캠 피해는 지난해(2~12월) 1천265건, 675억원 규모다. 올해는 지난 1~7월에만 1천163건, 705억원으로 집계됐다. 이를 종합하면 1년 반 새 피해 규모가 2천428건, 1천380억원에 달한다.
별도 집계가 시작된 이후 작년 2~7월과 올해 2~7월을 비교하면 피해 접수 건수는 791건에서 1천66건으로 34.7% 증가했다. 피해액은 502억원에서 654억원으로 30.2% 늘었다.
네이버 카페의 피해자 모임에는 적게는 수십만원부터 수천만원까지 피해를 봤다는 글들을 여럿 볼 수 있다. 공익 성격의 법률 상담 사이트에는 수억원을 잃고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는 글도 올라왔다.
한남대 경찰학과 박미랑 교수가 2017~2021년 국내 로맨스 스캠 범죄로 1심에서 유죄를 선고받은 판결문 73건을 분석해 발표한 '판결문을 통해 살펴본 로맨스 스캠 범죄의 양태' 논문(2023)에 따르면 피해액은 최소 2만원에서 최대 13억8천만원에 달했다. 평균 피해액은 1억원 수준이었다.
◇ 과거엔 외국인 행세, 요새는 한국인으로…'코인 투자' 등 수법 진화
로맨스 스캠의 기본 틀은 SNS나 데이팅 앱 등에서 외국인 친구로 접근해 장기간 애정 공세를 펼치며 친분을 쌓은 뒤 피해자의 마음을 사로잡았다고 생각하면 본색을 드러내며 금전을 요구하는 식이다.
몇 년 전 '재벌 사칭 사기' 사건으로 논란을 일으켰던 전청조 씨가 20대 때 데이팅 앱에서 '결혼을 원하는 부유한 여성' 행각을 하며 결혼 비용 명목으로 돈을 뜯은 것도 로맨스 스캠의 일종이다.
최근에는 수법도 진화하고 있다.
과거에는 외국인이나 해외에 거주하는 전문직 종사자 등을 사칭하며 접근한 뒤 애정 공세를 하며 신뢰를 쌓고는 송금을 요청해 가로채는 수법이 흔했다.
한국에 관심이 있다거나 한국 여행을 계획 중이라면서 외국인이 SNS 등을 통해 접근하거나, 타인의 사진을 도용하면서 자신을 전문직 종사자라고 하거나 거액의 유산 상속이 예정돼 있다고 소개하는 식이었다.
이 때문에 초기 로맨스 스캠의 주요 대상은 영어를 구사하는 한국인이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해외 범죄조직까지 결합하며 국제적, 조직적 범죄로 진화했다.
캄보디아 사태에서도 다시 드러난 것처럼 최근의 로맨스 스캠은 동남아에 거점을 둔 조직이 한국인을 채용해 유창한 한국어로 내국인에게 접근하는 방식을 사용하고 있다.
AI의 발달도 로맨스 스캠 피해를 키우고 있다.
최근에는 유명 배우를 사칭한 로맨스 스캠 사기 일당에게 50대 여성이 약 5억원의 피해를 봤다는 사건이 보도되기도 했다. 이 사건에는 AI를 이용한 배우 사진과 운전면허증도 사용된 것으로 알려졌다.
사기 유형도 다양화하고 있다. 초기에는 돈을 송금해달라고 한 뒤 이를 찾아 잠적하는 방식이 많았다면 이제는 '당신에게 고가의 선물을 보냈다'며 실제 존재하지 않는 운송 업체의 송장을 전달하고, 이 업체는 통관이나 보관 수수료를 빌미로 수십만원에서 수백만원을 청구하는 등의 방식이 사용된다.
택배 발송 회사로 위장한 가짜 업체인 '지니어스듀라스'가 피해자들 사이에서 유명해지며 이런 방식은 '지니어스듀라스 사기'로도 불린다.
자신이 속한 개인 라이브 방송 등의 사이트에 돈으로 환급할 수 있는 포인트가 있으나 이를 현금화할 수 없는 상황이라 모두 피해자에게 선물하겠다며 피해자를 해당 사이트로 유인한 뒤 출금 수수료를 내도록 하는 등의 '환전 사기'도 빈번하다.
쇼핑몰을 운영해 큰돈을 벌었다며 피해자에게도 쇼핑몰을 열도록 권유하고, 물건값을 빌미로 입금받아 달아나는 사례도 있다. 이때 피해자에게 판매 물건의 재고를 보유할 필요 없이 전산 처리만 하고 다른 곳에 발주 처리하면 돼 손쉽게 차액을 벌 수 있다는 설명이 뒤따른다.
최근에는 가상자산거래소 등을 통해 코인 투자 등을 하도록 유인하는 방식도 유행한다. 일단 수익을 경험하도록 한 뒤 더 많은 금액 투자를 유도하는 식이다.
한번 수익을 경험한 피해자가 전 재산은 물론 대출까지 받아 투자하면 범죄조직이 이때 출금을 차단하고 돈을 가로챈다.
이런 방식은 돼지에게 먹이를 주고 살이 찌도록 한 뒤 한 번에 도살하는 것에 빗대어 '돼지도살스캠'으로도 불린다.
결혼을 약속하고 '함께 잘 살기 위해' 이런 투자를 권하는 것이라는 사기범의 감언이설에 넘어갔다는 것이 피해자들의 공통된 증언이다.
이성 간이 아닌 동성 간에도 '친구하자'며 접근한 사례도 다수다.
이런 로맨스 스캠이 시작부터 끝나는 데까지 평균 8일밖에 걸리지 않는다는 분석도 있다.
지난해 학술지 '한국경찰연구'에 수록된 '환전형 로맨스 스캠 사례의 실증 분석과 정책 시사점'(저자 류창형 경찰대 치안대학원 박사과정 수료·서준배 경찰대 행정학과 교수) 논문에 따르면 총 10개 피해 사례를 들여다본 결과, 처음 접근부터 피해 종료까지 소요 시간은 평균 8일이었다.
이 기간 소통 횟수는 평균 2천168회로, 이를 시간으로 환산하면 37시간 48분이었다.
이 논문은 또 가해자가 관계 구축 단계에서 정형화된 시나리오가 아닌, 피해자와의 상호작용을 통한 맞춤형 시나리오가 구성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 2차 정서 피해까지…"SNS서 모르는 사람이 접근하면 의심해보라"
로맨스 스캠은 일반적인 인터넷 사기 범죄보다도 배후를 밝히기가 더 어렵다. 다른 사기 사건과 달리 피해자가 공론화하기를 꺼리는 경향이 있어서다.
로맨스 스캠은 정서적인 유대감을 기반으로 한 범죄라는 점에서 물질적 피해 외에도 피해자의 정신적 고통이 일반적인 보이스피싱보다 크다.
이 때문에 피해가 발생한 뒤에도 이를 받아들이지 못하거나 잘못을 자신에게 돌리고, 범죄를 숨기는 경향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관련 연구 자료들은 공통적으로 가해자들이 피해자로부터 더 이상 금전을 얻을 수 없다고 판단되면 연락을 끊고 사라지는데 이러한 '범행 종료' 단계는 피해자에게 극심한 심리적 충격과 경제적 손실을 남기는 결과를 초래한다고 지적했다,
피해자들의 심리에는 주변 사람에게 비난받을 것에 대한 우려도 깔렸다.
그러나 이런 피해는 누구나 당할 수 있다. 과거 오프라인 공간에서 벌어지던 혼인 빙자 사기 등의 행각이 온라인 공간으로 옮겨간 것일 뿐이다.
지방 경찰청의 반부패·경제범죄 수사대 관계자는 "피해자 개인이 허술한지 여부의 문제가 아니다. 이른바 '라포'(rapport. 상호신뢰관계)가 형성됐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로맨스 스캠 피해자들의 모임에 같은 피해자인 척 접근해 손해를 만회할 기회가 있다면서 또 다른 사기 행각을 벌여 2차 피해도 발생하는 상황이다.
◇ 피해 막으려면…온라인 데이팅 서비스 허위 계정 단속 등 필요
금융감독원은 가상자산 로맨스 스캠이 횡행하자 지난 7월 ▲ SNS 등에서 외국인이 한국 여행을 계획 중이라며 여행지나 음식을 추천해달라고 접근하거나 ▲ SNS 등에서 만난 여자친구가 호감을 표시하며 결혼 등 미래를 약속하고 ▲ 데이팅 앱 등에서 멋진 외모의 전문직 이성이 부를 과시하거나 ▲ 가상자산 투자로 돈을 벌었고 방법을 알려주겠다면서 가상자산 거래소 주소를 보내준다면 반드시 사기를 의심하라고 안내했다.
온라인 데이팅 서비스 이용자 보호를 위해 허위 계정을 단속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허위 계정이 사기 범죄의 온상이 되고 있어서다.
국회입법조사처는 2023년 내놓은 '온라인 데이팅 서비스 이용자 보호 강화 방안' 자료에서 허위 계정을 막기 위한 본인 확인 의무화 검토와 함께 정부가 온라인데이팅 서비스 사업자에 대한 자율규제 방안을 마련해 앱 이용자를 적극적으로 보호할 수 있도록 관리·감독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나아가 AI 기반 사기 탐지 기술 개발과 함께 기술 발전에 따른 새로운 유형의 사기를 지속해서 모니터링하고, 일반인을 상대로 사기 수법을 알리는 예방 교육이 더 적극적으로 시행돼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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