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이우-올해의 우크라이나 여행은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느낌을 주었다. 필자는 지난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직후 몇 달만에 키이우를 방문했다. 하지만 이번 방문에서 느낀 긴장감의 수위는 전애 비해 확연히 높아졌다. 우크라이나에 발을 들여놓기도 전에 미처 예상치 못했던 불안감이 엄습했다.
필자가 탑승한 항공기는 우크라이나 국경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한 폴란드의 루브린 공항에 착륙했다. 그러나 일시적으로 공항이 폐쇄된 탓에 한동안 비행기에서 내릴 수 없었다. 밤 사이 한 무리의 러시아 무인기들이 폴란드 영공으로 날아들었고 폴란드는 고도의 경계태세에 돌입했다. 이처럼 급박한 상황에서 루브린 공항에 방치된 몇 개의 수화물이 발견되자 긴급수색이 시작되고 공항이 일시 폐쇄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지금 우크라이나의 일상에서 가장 중요한 사실은 러시아 무인기의 공격과 그에 따른 공습 경보다. 필자도 난생 처음으로 러시아의 공습을 미리 알려주는 앱을 내려받았다. 대부분의 무인기는 어둠이 내려앉은 후에 들이닥친다. 현지인들은 매일밤 하던 일을 중단하고 잠을 설쳐가며 방공호로 대피해야 한다고 푸념한다. 많은 사람들은 우크라이나의 방공시스템이 날라오는 발사체의 대부분을 요격해줄 것으로 믿고 아예 셀폰 경보를 꺼버린 다. 그러나 러시아의 대응책이 개선되면서 발사체 중 일부가 우크라이나의 방공망을 뚫고 들어온다. 지난주에는 이스칸데르 순항 미사일이 키이우의 심장부에 위치한 정부청사에 떨어졌다. 문제의 청사는 여러 내각 각료들의 사무실이 들어선 곳이다.
카페와 트렌디한 가게들로 가득찬 키이우는 여전히 아름답고 활기찬 도시다. 그러나 이제 불안스런 뉴노멀이 도시를 뒤덮고 있다. 일부 시민들은 공습과 불면의 고통을 피해 키이우를 떠나려 한다고 말한다. 다른 사람들은 자체적인 대처전략을 마련했다.
하지만 그 어떤 것도 현지인들의 전의를 약화시키지 않는다. 항복은 현실적인 옵션이 아니다. 대다수 우크라이나인에게 항전은 국가적 생존을 위한 투쟁이다. 이들은 길고도 힘겨운 싸움을 체념하고 받아들인다.
어떤 면에서 우크라이나 내부 분위기는 나라밖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준다. 불과 몇 달전, 전쟁에 약간의 움직임이 감지됐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전쟁을 끝내기로 작심한 듯 보였다. 그는 불공정해보이긴 해도 나름대로 실용적인 전략을 갖고 있는 듯 보였다. 그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받아들일 가능성이 높은 종전안을 제시한 후 이를 수락하라며 우크라이나를 압박했다.
트럼프를 비롯한 미국 관리들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로부터 빼앗은 영토를 아마도 그대로 유지하게 될 것이고, 우크라이나는 나토의 회원국이 되지 않을 것이며, 미국은 우크라이나의 주권보장을 위해 병력을 보내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이와 함께 트럼프는 전쟁이 끝난 후 러시아와 경제적 관계를 재개할 것이라고 밝혔다. 다시 말해 협상 테이블에 마주앉기도 전에 워싱턴은 러시아의 요구를 대부분 수용했다.
워싱턴의 시도는 실패로 끝났다. 선제적인 양보와 트럼프의 개인적 협상제안, 극진한 레드카펫 환영에도 불구하고 푸틴은 자신의 입장을 고수했다. 우크라이나에 대해 푸틴은 늘 극대주의적인 양보를 요구했다. 그는 영토가 잘려나가고 경제적으로 취약하며 군사적을 허약한 우크라이나를 원한다. 벨라루스, 조지아와 러시아의 짜르 세력권에 속한 다른 나라들처럼 우크라이나 역시 모스크바의 호의에 의존하게 만들고 싶어한다. 제대로 기능하는 시장과 주권을 지닌 독립적인 민주주의 국가를 허용하는 결과는 푸틴에게는 위험한 손실이다.
협상의 서곡과 양보는 푸틴에게 뒤로 물러설 필요없이 오히려 앞으로 치고 나갈 수 있다는 확신을 심어준 듯 보인다. 지난 몇 주 동안,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서부지역의 미국 제조공장과 키이우에 위치한 영국의 문화원 사무실, 유럽연합(EU) 대표부 본부를 공격했고 급기야 폴란드 영공까지 침범했다. 하지만 러시아 무인기들이 폴란드 영공을 휘저을 때까지 서방의 유일한 반응은 몇마디 규탄 뿐이었다. 푸틴은 상대방의 결의를 파악하려면 먼저 “총검으로 찔러보라”는 레닌의 유명한 전략을 따르는 듯 보인다. 찔렀는데도 반응이 “물렁하면 계속 진행하되 강철처럼 딱딱하면 물러서라”는 것이 레닌의 전략이다. 러시아 무인기가 폴란드 영공을 침범하자 마침내 나토 전투기들이 발진해 이들을 격추시켰다.
유럽은 종종 행동이 굼뜨고 결단력이 부족하지만 이번 싸움에서 우크라이나가 승리하길 원한다는 사실을 의심하는 사람은 단 한명도 없다. 반면 모두가 품고 있는 가장 큰 의문은 “도대체 트럼프 행정부의 목표가 무엇이냐”이다. 트럼프는 푸틴에게 압력을 가하겠다고 말하면서도 이상한 간접 처벌 방식을 택했다. 러시아를 벌주는 것이 아니라 러시아산 원유를 구매한 인도를 응징했다. 전쟁을 끝내겠노라 떠들면서도 푸틴에 대해 호의적인 발언을 일삼고 자신과 그가 함께 할 미래의 경제적 협력에 관해 이야기한다.
트럼프는 물론 행정부 관리들도 자유롭고 독립적인 우크라이나를 확보하는 것이 필수 목표인 듯 행동하지 않는다. 미국 행정부는 우크라이나가 더욱 막강한 군사력으로 러시아와 맞설수 있도록 지원하는 계획을 전혀 수립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이야말로 러시아에게 즉각적인 압력을 가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워싱턴으로부터 듣는 것이 물렁한 말 뿐이라면 푸틴은 총검을 앞세워 계속 전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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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드 자카리아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 CNN ‘GPS’ 호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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