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아주의 현대차-LG에너지솔루션 공장에서 한국인 근로자 300명이 체포됐다는 소식은 가히 충격적이다. 전자여행허가(ESTA)나 단기출장용(B-1) 비자를 이용해 미국에 입국했다가 불법 취업으로 분류된 것이다.
물론 이들이 규정을 어긴 것은 잘못된 일이다. 하지만 이번 사건은 한미 경제 협력의 깊은 구조적 모순을 그대로 드러냈다고 아니할 수 없다. 한국은 최근 미국과의 관세 협상에서 3,500억 달러라는 막대한 투자를 약속했다. 한국은 청년 실업이 늘고 저출산 고령화로 경제 활력이 식어가는 상황에서, 대규모 투자를 하라는 압박에 굴복할 수밖에 없었다. 여기에다 글로벌 공급망의 변화를 고려하면 한국 기업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많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문제는 그동안 한국 기업들이 약속한 투자 규모와 앞으로 투자할 막대한 자본과는 판이하게 다르게 정작 그 공장을 제대로 건설하고 가동할 수 있는 합법적 통로인 ‘전문 인력 비자 제도’가 마련돼 있지 않다는 점이다.
한국 기업들에게 공장 건설과 초기 세팅을 위해 숙련된 기술자들을 파견하는 것은 매우 당연한 일이지만, 한국 정부는 미국으로부터 전문직 비자발급을 따내지 못한 상황이다. 호주나 싱가포르가 이미 전용 비자 쿼터를 확보해 합법적으로 인력을 투입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한국은 10년 넘게 ‘E-4 비자’ 신설을 추진했지만 미국 의회의 벽을 넘지 못했고, 결국 기업들은 편법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이번 체포 사태는 예견된 비극으로 불리는 이유다.
현재의 상황은 진퇴양난 그 자체다. 한국 기업이 미국에서 공장을 지으려면 사람을 보내야 하지만, 합법적 경로는 막혀 있다. 그렇다고 미국 현지 인력을 곧바로 투입하자니 숙련도가 부족해 생산성을 담보하기 어렵다. 결국 비싼 인건비를 감수하면서도 긴 시간 교육에 매달려야 하는데, 이는 한국 기업들의 경쟁력에 치명적 부담이 된다.
그렇다면 해법은 어디에 있을까. 이번 사건을 단순히 불법취업 단속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양국이 함께 풀어야 할 당면 과제로 삼아야 한다. 한국 정부는 외교력을 총동원해 미국 의회와 정부 설득에 나서야 한다. 3,500억달러라는 투자 약속이 미국 내 수만 개의 일자리를 창출할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알리고, 그 일자리를 안정적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일정 기간 한국의 숙련 인력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논리를 강조해야 한다.
미국 입장에서도 손해는 아니다. 공장이 제때 가동돼야 미국 노동자들의 일자리도 늘어난다. 초기 단계에서 한국 고숙련 인력이 ‘다리 역할’을 해줘야만, 미국 현지 인력이 안정적으로 투입될 수 있다. 결국 비자 문제해결은 양국 모두에게 득이 되는 카드다. 이를 외교의 최우선 과제로 끌어올려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번 사태는 우리에게 여러 질문을 던진다. 투자는 투자대로 하지만, 인력 투입은 원하는 만큼 하지 못하는 현재의 방식이 과연 옳은가. 한국 정부가 수백억달러의 투자를 약속하면서도, 정작 그 약속을 실현할 최소한의 제도적 장치는 확보하지 못한 현실이 과연 합리적인가.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한다면, 앞으로도 비슷한 사건은 반복될 것이다.
한국은 지금 외교적 묘수가 절실하다. 단순히 위기를 모면하는 수준이 아니라, 구조적 문제를 풀어내는 근본적 해법이 필요하다. 비자 제도 개선을 통해 한국 기업이 합법적이고 안정적으로 인력을 파견할 수 있도록 만들고, 동시에 미국도 본토의 일자리 창출이라는 실질적 이익을 챙기는 그림.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윈-윈’이다.문제를 문제로만 보지 않고, 양국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해법을 찾아내는 것. 그것이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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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홍용 경제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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