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 헌정사에 드러난 대통령제의 실패
▶ 경제적 번영과 정치적 평화도 찾아내야
▶ 전직 대통령이 안전할 헌법 만들어 내야
전 대통령 부부가 구속되는 사상 초유의 사태를 마주하고 있다. 인류 역사상 최단 기간에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이룩한 세계 6대 강국에서 정치는 아직도 야만의 시대를 맴돈다. 1948년 제헌헌법은 유진오의 의원내각제 안에 이승만의 대통령제 안이 덧칠된 변형적 대통령제다. 대통령제의 본질적 요소인 대통령 직선제가 사라진 4공 유신헌법이나 5공 헌법에서조차 대통령은 오히려 더 강력한 권한을 행사했다. 정치제도의 일반이론을 거부하고 오로지 대통령에 의한 대통령을 위한 제도로 작동한 결과다.
그 후과(後果)는 참혹하다. 건국 대통령 이승만은 부정선거로 하야하고 하와이 망명길에서 생을 마감했다. 산업화 대통령 박정희는 최측근의 흉탄에 스러졌다. 전두환·노태우는 헌정파괴범이다. 민주화의 화신인 김영삼·김대중조차 재임 중 아들이 부패혐의로 구속되었다. 노무현은 자진했고, 이명박·박근혜는 수감되었다. 문재인은 가족이 수사대상에 올랐다. 윤석열은 부부가 함께 수갑을 찬 영어의 몸이다. 특히 박근혜와 윤석열은 헌법재판소 탄핵으로 파면되었다. 유사 이래 온전한 대통령이 없는 데에는 대통령 본인들의 잘못이 가장 크지만, 동시에 지금 제도로는 안 된다는 것을 웅변으로 증명한다.
대통령의 불행을 끝내고 경제적 번영에 이어 정치적 평화를 구현할 때가 되었다. 첫째, 대통령에 대한 지나친 기대는 금물이다. 대통령은 하늘에서 강림한 천자(天子)가 아니다. 대통령과 정부·여당 잘잘못에 대하여 시시비비가 제때 가려져야 한다. 탄핵과 대선 패배로 야당은 무기력증에 빠져 제 앞가림도 못한다. 정론직필을 하여야 할 언론조차 양극화되어 이전투구 상황이다. 이 와중에 정부·여당의 독주가 계속된다. 집권여당은 제1야당을 아예 대화상대로 인정하지 않는다.
둘째, 헌법상 대통령은 5년 단임이다. 한번하면 물러나야하는 대통령이 영원토록 권좌에 있을 것 같은 착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권력에 기생하는 부나방에 현혹되어서는 아니 된다. 대통령 스스로 퇴직 후를 그려보는 지혜가 필요하다. 무엇보다 국가원수로서 여야를 떠나 국민통합을 위한 방책을 강구해야 한다. 전 세계에서 유일한 분단국가인데 남남갈등까지 겹쳐서는 국태민안(國泰民安)이 구현될 수 없다.
셋째, 87년 체제에서 9명의 대통령을 배출하고, 5번의 평화적 정권교체를 이루었다. 그럼에도 헌정은 파행의 연속이다. 이제 새 헌법을 마련할 때가 되었다. 개헌 논의는 충분히 이뤄졌다. 그 방향은 대통령이 전횡하지 못하도록 권력의 합리적 제어장치의 마련이다. 이제 실행만 남았다. 개헌 논의가 자칫 블랙홀이 될 우려를 배제할 수 없기에 과거 정부는 집권 초기에는 개헌에 반대하다가 임기 말에 개헌을 들고 나와 번번이 실패했다. 이재명 정부 국정기획위원회는 제1호 국정과제로 ‘진짜 대한민국을 위한 헌법 개정’을 제시한다. 구체적 개헌 논의는 민의의 대변자인 국회에 맡겨야 한다. 정부가 개헌 논의에 직접 개입하지 않을수록 오히려 쉽게 합의에 도달할 수 있다.
새로 마련될 제7공화국 헌법은 더 이상 대통령의 무덤이 아닌 대통령의 영광스런 귀환을 자축하는 헌법으로 작동해야 한다. 그때 진정한 통합과 협치의 장이 마련될 것이다. 대통령이 군림하지 않고 낮은 자세로 국민을 섬길 때 비로소 온 국민이 염원하는 진정한 자유민주주의가 이 땅에 구현될 수 있다. 광복 80주년을 맞이하여 세계를 선도하는 K컬처와 더불어 자랑스러운 주권재민의 대한민국을 그려본다.
<
성낙인 전 서울대 총장>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