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주- 시한부 환자 6개월새 111명 선택
▶ 한국- 말기암환자 첫 치료포기 자연사

지난 2015년 뉴멕시코주 대법원 앞에서 존엄사 권리 옹호 단체 관계자들이 존엄사를 인정해달라며 시위를 벌이고 있는 모습. [AP]
“환자가 원한다고 사망하도록 하는 게 옳은가”
말기 시한부 환자들이 스스로 죽음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이른바‘존엄사’의 문제에는 이같은 근본적 질문이 자리하고 있지만, 의학 발달과 초고령화 사회 속에 존엄사 허용은 이제‘논란’이 아닌‘현실’로 다가와 있다. 캘리포니아주에서는 지난해부터 존엄사 허용법이 시행에 들어가 이미 수백명의 말기 환자들이 이를 선택했고, 한국에서도 이를 허용하는 이른바‘웰다잉법’이 내년 2월 본격 시행을 앞두고 현재 시범사업이 진행되면서 이를 선택한 말기 암 환자가 지난주 사망해 최초의 합법적 존엄사 사례가 나온 것이다.
■존엄사 규정은
캘리포니아와 한국의 존엄사 규정은 조금 다르다. 캘리포니아의 경우 시한부 환자가 합법적으로 의사로부터 약물을 처방받아 생을 마감할 수 있도록 하는 적극적인 의미의 존엄사인 반면, 한국의 경우는 말기 환자가 연명치료를 받지 않겠다는 선택을 할 수 있다는 상대적으로 소극적 의미의 존엄사 규정이다.
지난해 6월9일부터 시행에 들어간 캘리포니아 존엄사법은 ▲환자의 기대 생존기간이 6개월 이하이고 ▲스스로 건전한 판단을 내리고 약물 섭취를 결정할 정신적 능력이 있어야 하며 ▲이같은 존엄사 판정을 최소한 의사 2명이 내려야 가능하도록 하고 있다. 또 약물을 처방하는 의사에게 존엄사와 관련한 진료와 처방을 거부할 수 있는 예외조항도 뒀다.
현재 미국에서 존엄사법을 시행하고 있는 주는 오리건을 필두로 캘리포니아까지 모두 5개 주다.
한국의 경우는 무의미한 연명치료 대신 존엄한 죽음을 선택할 수 있게 하는 ‘연명의료결정법’(일명 웰다잉법)이 내년 2월 발효를 앞두고 지난달부터 3개월간의 시범 사업이 시작됐다.
한국에서 존엄사는 두 가지 방식으로 선택할 수 있다. 첫 번째는 말기 또는 임종기 환자가 항암제 투여나 인공호흡기 착용 등 연명 치료를 받지 않겠다는 ‘연명의료계획서’를 작성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무의미한 연명 의료를 거부하겠다는 의사를 본인이 건강할 때 ‘사전연명의료의향서’에 담아 의료기관에 제출하는 것이다.
■시행 상황은
캘리포니아주 공공보건국이 올해 6월 발표한 존엄사법 시행 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법이 발효된 지난해 6월부터 12월 말까지 첫 6개월여 동안 존엄사 절차를 선택한 말기 환자는 총 258명으로 집계됐으며, 이중 실제 약물 처방을 통해 죽음에 이른 환자의 수는 111명이었던 것으로 집계됐다.
올해 들어 얼마나 많은 존엄사 케이스가 주내에서 나왔는지는 아직 집계되지 않았지만 비공식적으로는 시행 1주년이던 지난 6월을 기준으로 당시까지 약 500명이 존엄사 절차를 선택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에서는 서울의 한 종합병원에서 한 달 전 연명의료계획서에 서명했던 50대 암 환자가 임종기에 인공호흡기 착용과 항암제 투여 등을 시행하지 않고 지난주 숨지면서 한국의 첫 합법적 존엄사 사례로 기록됐고,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제출한 건강한 사람이 37명으로 집계됐다.
■시행 배경은
캘리포니아 주의 존엄사 허용은 지난 2014년 여성 말기 암 환자 브리트니 메이너드(당시 29세)가 존엄사가 합법인 오리건 주로 이사해 의사의 도움을 받아 스스로 생을 마감한 게 계기가 됐다.
메이너드는 죽기 전에 존엄사 허용을 촉구하는 녹화 영상을 남겼고, 이 영상은 지난해 초 캘리포니아 주 의회가 존엄사 허용 법안을 논의할 때 상영되기도 했다. 주 의회는 당시 격론 끝에 10년 한시법으로 존엄사법을 가결한 바 있다.
한국에서는 대법원이 지난 2009년 식물인간 상태의 환자 가족이 인공호흡기를 떼 달라며 소송을 제기한 ‘세브란스 병원 김 할머니 사건’에서 본인 의사를 직·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을 땐 생명 연장 치료를 중단해도 된다고 판결함으로써 존엄사 인정을 위한 단초가 마련됐다.
이후 2013년 국가생명윤리위원회가 존엄사 제도화를 권고하면서 사회적 논의가 활발해졌고, 지난해 1월 관련 법안이 국회를 통과해 1년6개월의 유예기간을 거쳐 내년 2월 ‘연명의료결정법’이 발효를 앞두고 있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반대 목소리도 많았지만, 한 해 사망자의 약 20%가 항암치료를 받거나 식물인간 상태에서 인공호흡기에 의존하다가 세상을 떠나는 현실이 존엄사에 대한 사회적 인식 전환의 배경이 됐다는 분석이다.
■부작용 우려도 여전
말기 환자 개인의 선택의 자유를 존중한다는 취지에서 존엄사법이 시행되고 있지만, 이 법이 ‘가족들에 의한 죽음의 강요’로 악용되어서는 안 된다는 문제제기는 여전히 유효하다.
저소득층과 건강보험 혜택을 충분히 받지 못하는 환자들은 병원비가 천문학적으로 늘어나면 가족들로부터 안락사의 압력을 받을 가능성을 우려하는 것이다.
한국에서도 상속 목적이나 치료비 부담 등 경제적 이유로 존엄사가 악용될 소지를 완벽히 차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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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혜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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