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냥 즐기던 스위스인 도메스트랄, 개 털에 붙어 잘 안떨어지는 열매
▶ 가시 갈고리 모양에서 벨크로 착안

서천 국립생태원을 찾은 어린이들이 벨크로 체험을 하고 있다. 도꼬마리 가시를 본뜬 벨크로는 어린이가 벽에 매달릴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접착력을 자랑한다. <국립생태원 제공>

도꼬마리 열매를 촘촘히 뒤덮은 가시는 끝이 갈고리모양으로 돼 있어 섬유나 동물의 털에 잘 붙는다. <국립생태원 제공>
올해 4살인 꼬맹이 조카는 아직 손가락으로 꼼꼼하게 끈을 묶을 수 없어 찍찍이 신발을 신고 다닙니다. 벨크로 테이프라고도 부르는 찍찍이는 한번 붙으면 여간해서는 잘 떨어지지 않지만 또 손으로 한쪽을 들어올리면 쉽게 뗄 수 있기 때문에 발을 고정시키는 데 제격이죠. 어린이도 사용하기 쉬운 벨크로 테이프는 과연 어떻게 만들어졌을까요. 바로 길가를 걷다가 옷이나 털에 찰싹 달라붙으면 떨어지지 않는 도꼬마리라는 식물의 성질을 이용한 것입니다. 자연계의 많은 생물들의 특성을 연구하다 보면 이처럼 인류에게 도움이 되는 기술을 만들어낼 수 있는데요. 연구자들은 이런 연구를‘생물 모방’이라고 합니다.
■도꼬마리에서 벨크로를 떠올린 비결은 ‘관찰력’
벨크로는 20세기 초 스위스의 조르주 도메스트랄이라는 사람이 처음 만들었다고 하는데요. 그는 사냥을 나갔다가 사냥개의 털에 도꼬마리가 잔뜩 붙어있는 것을 발견했죠. 털에 붙은 도꼬마리 열매는 아무리 털어도 떨어지지 않았지만 손으로 하나하나 떼 낼 수는 있었다고 하네요.
도꼬마리를 자세히 보면 가시의 끝이 갈고리처럼 굽어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갈고리를 부드러운 천이나 털에 붙이면 잘 붙는데 억지로 뜯으려 하면 옷감이 상할 정도입니다. 도메스트랄은 이런 성질을 이용해 까끌까끌한 갈고리 모양이 촘촘히 박힌 천과 부드러운 천을 딱 붙여 벨크로를 만들 수 있었습니다.
도꼬마리는 사람들이 자신의 특징을 이런 식으로 사용할 줄 알고 가시 끝 부분을 갈고리처럼 굽히지는 않았을 겁니다. 열매를 여러 동물의 몸에 붙여 널리 번식하기 위한 것은 아니었을까요.
벨크로가 탄생할 수 있었던 것은 도메스트랄이 도꼬마리의 작은 특성 하나를 놓치지 않고 세심하게 관찰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둥근 도꼬마리 열매를 보고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벨크로를 바로 떠올리기란 쉽지 않으니까요. 확대경으로 한참을 들여다 보고서야 도꼬마리 가시 끝의 갈고리를 발견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연잎이 항상 깨끗한 이유는
탁한 연못에서도 연꽃(Nelumbo nucifera)은 예쁜 꽃을 피우고 깨끗하기까지 합니다. 비 오는 날 연잎을 쳐다보고 있으면 둥그런 물방울이 그대로 맺혀 있다가 바람이 불기라도 하면 맺혀 있던 물방울이 쪼르륵 움직이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물이 떨어져도 잎사귀가 젖지 않고 먼지를 머금은 바람이 불어와도 연잎이 항상 깨끗한 상태를 유지하는 이유는 표면을 자세히 살펴보면 알 수 있습니다.
연잎 표면을 전자현미경으로 살펴 보면 원통 형태의 작은 돌기들이 돋아 있는데요. 이 돌기 때문에 물방울이 연잎에 스며들지 않고 아래로 흘러내린다고 하네요. 물방울과 함께 잎 표면의 더러운 물질도 함께 씻겨 내려가는거죠.
빗물만으로도 더러워진 유리를 깨끗하게 하는 자가 세정 유리나 코팅을 해 놓은 뒤 물을 뿌리기만 해도 자연스레 오염물질을 씻어내 주는 자가 세정 도료 등의 아이디어를 생각해볼 수 있는데요. 이 유리와 도료를 활용한다면 사람들이 고층 건물에 매달려 힘들게 외벽과 유리를 청소하는 모습을 더 이상 보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요.
■물총새를 본 따 만든 고속열차
자동차나 비행기 같은 운송수단을 만들 때는 저항을 적게 받을 수 있도록 겉을 각지지 않고 둥근 곡선형태로 만들죠. 우리나라에서 운행되는 고속열차인 KTX 중에는 토종 물고기인 산천어를 모티브로 만든 KTX-산천이라는 열차가 있습니다.
일본의 고속열차인 신칸센 중에는 물총새를 모방해 속도를 빠르게 하면서도 소음 문제까지 해결한 열차가 있습니다.
물총새는 물가 근처 나뭇가지에 앉아 있다가 먹이가 되는 물고기나 곤충을 보면 눈 깜짝할 사이에 물 속에 들어가 먹이를 낚아챕니다. 저항이 약한 공기에서 저항이 강한 물 속으로 순식간에 들어가는데 물이 거의 튀지도 않는다고 하네요.
물총새가 수시로 물 속으로 들어가는 것은 먹고 살기 위해 하는 일상적인 행동이지만 사실 여기에는 굉장한 과학 원리가 있습니다. 물이 튀지 않는 이유가 바로 부리와 머리의 형태에 있거든요. 길고 뾰족한 부리와 날렵한 머리가 저항을 최소화 해 물 속에서도 빠르게 먹이를 잡을 수 있게 해 주죠.
이를 모방한 것이 일본의 신칸센 중에서도 간사이 지방에 다니는 ‘신칸센 500계’입니다. 이 열차를 잘 살펴 보면 다른 고속열차보다도 앞부분이 긴 것을 알 수 있는데요. 열차를 디자인 하면서 앞부분을 길게 하기 전에는 소음 문제가 매우 심했지만 물총새의 부리처럼 길고 뾰족하게 디자인하자 소음이 획기적으로 줄고 속도도 빨라지게 되었다고 하네요.
■고대부터 인류에게 아이디어 준 생물들
벨크로 테이프는 정말 인류 최대의 ‘히트 상품’이 아닐까 합니다. 운동화가 벗겨지지 않게 하거나 장갑에서 손이 빠지지 않게 꼭 잡아주는 역할을 하기도 하고 테이프나 끈을 대신해 물건을 고정시키기도 하는 등 여러 곳에서 전 인류가 유용하게 사용하고 있으니까요.
벨크로의 원리나 연잎 효과를 발견하기 이전에도 이 같은 생물 모방은 사람들의 생활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아주 먼 옛날의 고대인들이 사용하던 돌도끼나 화살촉은 맹수의 날카로운 이빨을 모방해 만들었습니다.
최근의 생물모방 연구는 공학과 만나 유용한 발명품을 만드는 것뿐 아니라 디자인, 건축 등에도 활용되고 있습니다. 아프리카 짐바브웨의 이스트게이트 센터라는 건물은 초원의 흰개미집을 본 따서 만들었는데 한여름에 냉방을 하지 않아도 시원함이 유지된다고 합니다.
이렇듯 생물모방연구는 여러 분야가 한데 모이는 융합 학문으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서로 조화를 이뤄야 결과를 낼 수 있는 분야죠. 생태를 잘 관찰하고 잘 이해하면 사람들에게 이로운 새로운 아이디어를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어쩌면 생물모방은 자연을 깊게 탐구하는 사람들에게만 주어지는 뜻밖의 선물일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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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옥 국립생태원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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